23.07.15 19:55최종 업데이트 23.07.1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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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히토(德仁) 일왕이 2019년 10월 22일 거처인 도쿄 아카사카 고쇼(赤坂御所)를 나서 즉위식이 열리는 왕궁으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나루히토 일왕(천황)과 마사코 왕비의 방한을 추진 중이라는 수상관저 및 궁내청 관계자의 발언이 보도됐다. 1945년에 창립된 출판사 고분샤(光文社)가 운영하는 <조세지신(女性自身)>에서 보도가 나왔다.

1958년부터 발행된 이 여성지는 '마사코님 2년 뒤 한국 방문 계획이 정부 내에서 급부상(雅子さま 2年後に韓国ご訪問計画が政府内で急浮上)'이라는 13일 자 기사에서 "기시다 총리는 요즘 급속히 개선되고 있는 일한관계의 최종 마무리로 천황·황후 양 폐하의 한국 방문을 실현시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라는 수상관저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외무대신 시절인 2015년에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이 문제를 봉합했다. 금년 3월에는 양측 합의가 아닌 한국 정부의 일방적 선언으로 강제징용 문제까지 봉합했다. 한국 정부가 굴욕외교를 감내하게 만드는 외교술로 자국의 외교적 난제들을 8년 간격으로 풀어온 것이다.

<조세지신>은 일왕 방한 카드가 기시다 총리의 외교적 의욕과 관련된다고 보도했다. 전례가 없는 이 일을 성사시켜 역사에 족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총리는 '최초'라는 실적에 집념을 붙태워 왔습니다"라며 "전례 없는 천황·황후 양 폐하의 한국 방문이 실현되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라는 수상관저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가 한국인 강제징용(강제동원)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한국 정부가 책임을 대신 떠안는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에 대해 한국인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점은 일본 왕실과 정부도 당연히 잘 알고 있다.

역사 문제 봉합한 후, 일왕 방한까지... 기시다의 계획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리투아니아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빌뉴스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지금 추진 중인 일왕 방한은 한국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역사 문제가 봉합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이벤트의 성격이 강하다. 윤석열 정부를 움직여 역사 문제를 봉합한 기시다 내각이 이 사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그런 성격이 드러난다.

일본 정부는 일왕의 방한과 역사 문제가 엮이는 것을 싫어한다. 일왕이 방한할 때 한국인 시위대가 공항에 나타나거나 한국 언론들이 차갑게 보도할 가능성을 경계한다. 그래서 역사 문제가 다 봉합된 뒤에 일왕이 방한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어 한다. 이런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 노무현 정부 때의 사례다.

2005년 1월 13일 신년기자회견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일관계를 한 단계 올리기 위해서 대통령께서 임기 중에 일본 천황 방한 문제를 추진하실 생각이 있으신지"라는 질문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입장은 이미 초청 상태일 것"이라며 "언제나 환영한다는 입장"이라고 답변했다.

그런데 단서를 달았다. "우리 정부는 방한은 방한이고 또 처리할 문제는 처리할 문제로 병행해 나가겠다, 그런 입장이다"이라며 "언제든지 방한하신다면 최고의 예우를 다해서 환영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처리할 문제'가 무엇인지는, 보름 전인 2004년 12월 28일에 노무현 정부가 대일 청구권 문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일제강점기 역사 문제가 다시 불거진 사실에서 확인된다. "언제든지 최고의 예우로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처리할 문제'를 그냥 덮지는 않겠다는 원칙적 입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일왕의 방한은 일본 왕실과 정부가 항상 희망했던 것이다. 지금은 상왕이 된 아키히토 일왕이 "일본 왕실은 백제의 후손"이란 말로 한국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했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일왕 방한에 대한 한국 내 거부감을 불식시키려는 의중이었다.

그런 일본을 상대로 한국 대통령이 "언제든지 방한하신다면 최고의 예우를 다해서 환영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날 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관저 기자회견에서 "아직 단계가 아닌 것 같다"며 사실상 거절의 뜻을 표시했다. 정부 대변인인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은 "노 대통령의 뜻은 우리에게 충분히 전달됐다"라고 발언했다. 초청은 감사하지만 지금은 갈 수 없다고 답한 것이다.

일본 언론의 반응도 비슷했다. 한국 대통령의 발언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한국 언론보도나 <교도통신> 보도를 옮겨 싣는 정도였다. <요미우리신문>은 아예 다루지도 않았다.

고이즈미 총리는 노 대통령의 초청을 사실상 거절하면서 "왕실의 일정이 쌓여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다. 당장 오라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오라는 노무현의 초청과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었다. 한국 정부가 청구권 문서를 공개해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 박차를 가한 것과, 노 대통령이 일왕 초청과 '처리할 문제'는 별개라고 답한 것이 일본의 태도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일한 관계의 최종 마무리"... 일본의 속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20일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외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와 왕실이 역사 문제가 적당히 봉합된 상태에서 일왕 방한을 성사시키고 싶어 한다는 점은 또 다른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기시다 내각이 희망하는 일왕의 방한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세지신> 기사에서 궁내청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2년 후인 2025년은 일·한 국교정상화 60주년에 해당합니다. 이 대목에서 천황 폐하와 마사코님의 한국 방문을 실현시키려는 움직임이 정부 내에 있습니다."

한일기본조약과 부속협정(통칭 한일협정)이 체결된 1965년은 일본 입장에서 보면 외교적 쾌거를 거둔 해다.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배상 없이 과거사 문제를 봉합한 해이자, 한국 경제를 해방 20년 만에 일본 경제에 도로 종속시킨 결정적 계기를 만든 해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협정 60주년을 기념해 일왕의 방한을 추진한다는 것은 1965년식 한일관계를 영구히 고착시키겠다는 의중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관점에서 과거의 죄과를 봉합한 상태에서 역사적인 일왕의 방한을 성사시키겠다는 기획도 함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025년은 한일협정 60주년인 동시에 을사늑약 120주년이다. 한일협정이 한국 경제를 일본 경제에 도로 예속시키는 계기가 됐다면, 을사늑약은 한국 외교를 일본 외교에 예속시키는 계기가 됐다.

1905년 을사늑약의 충격을 지금의 한국인들보다 훨씬 생생히 기억했던 1965년 당시의 한국인들은 하필이면 을사년에 한일협정을 성사시키려는 박정희 정권의 의도에 분노를 표시했다. "하필이면 금년이 을사년이라서"라며 난처함을 표하는 외무부 관리도 있었다는 점을 1965년 1월 10일 자 <조선일보> 2면 좌상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로 전환된 1870년대 이후로 두 번의 을사년이 지나갔다. 그 두 번 모두 한국인들에게는 치욕스럽게 기억되고 있지만, 일본인들에게는 당연히 정반대다.

기시다 내각은 다가오는 세번째 을사년에 마침표를 찍고 싶어한다. <조세지신> 기사에는 "일한관계의 최종 마무리"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2025년에 일왕 방한을 성사시켜 자신과 윤석열 대통령의 합작품을 영구히 고착시키려는 기시다 총리의 의지가 그 계획에 반영돼 있다.

'일왕 방한과 역사 청산을 별개로 처리하되 일왕을 최고로 예우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 발언에 대한 반응에서 나타나듯이, 일본 정부는 한국인들이 과거사 해결을 요구하는 가운데 일왕이 한국에 발을 디디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방한 이전에 역사 문제가 말끔히 봉합되기를 원한다. 과거사 문제가 완전히 종식되고 한일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기억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2년 내에 역사 문제를 모두 봉합해 주기를 희망할 수밖에 없다. 일왕 방한 이전에 위안부·강제징용 같은 문제들을 좀 더 명확히 해결할 뿐 아니라, 역사 문제와 얽힌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서도 만족할 만한 해답을 제시해달라고 주문할 가능성이 높다.

일왕의 해외 방문은 헌법 제7조에 규정된 '국사(國事) 행위'가 아니라 내각의 책임하에 수행되는 '공적 행위'다. 이 일은 왕실과 정부 양쪽에 다 관련된다. 이런 사안와 관련해, 총리를 보좌하는 수상관저 관계자와 일왕을 보조하는 궁내청 관계자가 동일한 언론보도를 통해 입장을 표시했다. 일왕의 한국 방문이 나루히토 일왕과 기시다 총리의 교감하에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금 일본인들은 천재일우 같은 이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양국 현안들을 모두 마무리 짓고 싶어 한다. 2025년 일왕 방문에 관한 보도는 한일 두 정부가 역사 문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했던 것 이상의 대대적 공세를 펼치리라는 전망을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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