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2 07:04최종 업데이트 23.06.2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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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24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난이도 발언의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자 정부·여당이 진화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킬러 문항' 제외 지시가 지켜지지 않아 바로잡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수능을 불과 5개월 남겨둔 터라 혼란이 큰 상황입니다. 여권에선 대학 입시의 폭발력이 워낙 커 자칫 이 문제가 뇌관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입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물론 수능 결과에 따라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후폭풍이 얼마나 클지를 판단하려면 세 가지 고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첫 번째 고비는 6월 모의평가 결과입니다.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발언은 6월 모의평가가 발단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윤 대통령이 누군가로부터 이 평가에서 킬러 문항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난이도 조절 실패'로 단정지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은 발단이 된 모의평가 난이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그동안 철저한 분석을 안 했는데 (이후에) 소상하게 말씀드리겠다"고만 했습니다.


문제는 28일 발표되는 6월 모의평가 결과에서 난이도가 평소 수준으로 나타날 경우입니다. 특별한 킬러 문항도 없고 난이도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공연히 평지풍파를 일으킨 윤 대통령에게 화살이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EBS나 입시업체들이 일부 표본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6월 모의평가 난이도는 예년과 비교할 때 평이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공교육 밖에서 제출됐다는 얘기는 전혀 없었다"거나 "킬러 문항의 난이도가 현저하게 낮았다"는 말도 나옵니다. 지난 19일 사임한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도 킬러 문항에 대해 "교육부와 긴밀하게 협의를 진행해왔다"고 밝혔습니다.

두 번째는 9월 모의평가 난이도 수준입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처음 치러지는 9월 모의평가에서도 난이도에 말썽이 생길 경우 수험생과 학교현장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습니다. 교육당국으로선 킬러 문항 배제와 변별력 확보라는 '두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런 묘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입시 전문가의 지적입니다. "출제기법을 고도화하면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당국의 말은 비현실적이라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입시 현장에서는 초고난도 문제 바로 아래 단계에 있는 '준 킬러 문항'이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 많습니다. 입시업계에서는 통상 정답률 5∼10% 이내의 문항을 킬러 문항, 20∼30%의 문항을 준 킬러 문항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킬러 문항이 줄고 준 킬러 문항이 다수 출제될 경우 등급 분류에서 큰 혼란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만점자가 대폭 늘어나면서 1등급은 과다 발생하고, 나머지 등급은 촘촘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세 번째 고비는 11월 치러지는 수능 본시험에서의 난이도입니다. 교육당국은 통상 6월 모의평가는 어렵게, 9월 모의평가는 다소 쉽게 출제해 이를 기초로 수능 난이도를 조절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9월 모의평가 기준이 흔들려 수능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큽니다. 입시 전문가들은 정부의 쉬운 출제 기조로 '물수능'이 예상되는 가운데, 준 킬러 문항이 많아지면 체감 난이도는 '불수능'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결국 올해 수능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혼란이 우려된다는 게 공통적인 시각입니다.

만약 이번 수능에서 난이도 실패로 인해 대입에 혼란이 야기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능 성적이 12월에 발표되는 점을 감안하면 그 여파가 총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칫 내년 총선이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분노 투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여권 일각에서 나옵니다. 대통령이 수능 등 입시 문제는 가급적 건드리지 않는다는 게 정치권의 불문율입니다. 교육개혁 등 큰 방향이 아니라 세부적인 내용을 언급했을 때 어떤 파장을 낳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문률을 깬 결과가 어떨지 주목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충재의 인사이트>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매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을 지냈던 이충재 기자는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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