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7 06:37최종 업데이트 23.10.2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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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건강을 기원하는 정재호 민족중흥회 회장의 안내말에 박수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중동 순방에서 귀국하자마자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난 이유는 분명하다. 최근 지지율 낙폭이 큰 TK(대구경북) 지역의 민심을 붙잡기 위해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총선 승리가 절실한 윤 대통령에게는 박 전 대통령의 손을 부여잡은 사진 한 장이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다. 보수진영의 텃밭을 단단이 묶어둬야 한다는 생각이 4박 6일 출장의 여독을 풀 시간도 허용하지 않은 셈이다.

따지고보면 윤 대통령의 이번 중동 국빈방문도 지지율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 대통령실에서는 순방 기간 중 연일 '제2중동 붐' '역대 최대 성과'라는 자화자찬성 홍보에 열을 올렸다. "내 얼굴로 총선을 치르겠다"고 공언한 윤 대통령에게 30%대 지지율은 총선 패배의 예고다. 윤 대통령의 저조한 지지율은 정권심판론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를 강하게 작동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수도권 위기론'은 반윤세력의 음해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며 태연자약하던 윤 대통령 속이 까맣게 타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지지율 끌어올 수 있는 확실한 방법들 

사실 윤 대통령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당장 29일 열리는 '이태원참사 1주기 시민추도회'에 참석만 해도 지지율이 확실히 오를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국가의 무책임에 분노하는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것만으로도 불통의 이미지를 상당부분 덜 수 있어서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참석을 고민했으나 야4당 주최 행사여서 불참한다"는 핑계를 댔다. 참사 1년이 지나도록 정부도, 경찰도, 지자체도 책임지지 않는데 어느 국민이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한다고 응답하겠는가.


여야 대표 등 3자회동에 응하는 것도 윤 대통령이 지지율을 올리는 손쉬운 방법이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면 지지율이 3~5%는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눈 딱 감고 이 대표를 만나기만 하면 될 일을 못하니 여당도 답답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재개하거나 홍범도 흉상 철거를 중단시키거나 해병대 수사 외압 특검을 수용해도 지지율은 껑충 뛰어오를 게다.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이 이는 양평고속도로 노선 원상복구나 검찰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수사 협조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이럴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지지율을 올리고는 싶고, 방법도 알지만 실행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권 일각에선 윤 대통령의 반성과 소통 언급에 "특유의 위기본능이 발동한 것 같다"고 기대만발이다. 아닌게 아니라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위기 때마다 나름대로 승부수를 던졌다. 각종 실언과 강경발언으로 논란을 빚자 신년인사에서 "저부터 바꾸겠다"며 큰절을 올렸고, 이준석 당 대표와 갈등의 골이 깊게 패자 "모든 게 제 탓"이라며 포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윤 대통령 위상은 천양지차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은 뭐든지 하겠지만 막상 자리에 오른 후에는 아쉬울 게 없다. 어차피 단임제에, 임기는 3년 반이나 남았다. 굳이 눈에 가시같은 이준석에게 손을 내밀거나 '범죄자' 이재명을 만나 협조를 부탁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자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범위에서만 변하려는 게 최고권력자의 생리다.

윤 대통령은 현재의 국정운영 기조가 옳다는 생각이 강하다. 소통방식에 문제가 있을뿐 다른 잘못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를 '민생 행보'라고 둘러댔다. 여전히 그런 포장술이 먹혀들 걸로 여기는 모양이다. 윤 대통령의 변화를 국민이 실감하기에는 한참 멀었다.    
덧붙이는 글 <이충재의 인사이트>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매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을 지냈던 이충재 기자는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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