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12 16:56최종 업데이트 24.04.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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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4월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무부 오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4·10 총선은 일본에도 첨예한 관심사다. 이번 총선은 좁게는 일본의 동아시아 정책, 넓게는 세계정책과 맞닿아 있다.

미일정상회담과 미·일·필리핀 정상회의를 위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이번 미국 방문은 미일동맹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기회로 주목받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 시각 11일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 때 기시다는 "세계가 미국과 미국의 리더십을 바라보고 있지만 미국이 모든 것을 도움 없이 혼자 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한 뒤 "미국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함께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세계 경찰 역할을 보조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미국과 거의 대등한 관계에서 함께 그 역할을 하고자 하는 일본의 야망을 드러내는 발언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미·일·한 군사협력과 미·일·필리핀 군사협력이라는 양 날개를 달고 동아시아 대륙 쪽에 군사적 영향력을 투사하고 있다. 동북아에서는 한국을 끌어들이고 동남아에서는 필리핀을 끌어들여 일본군 자위대의 군사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

그런 계획에 시동이 막 걸리고 있는 상태에서 이번 총선이 치러졌다. 자국이 원하는 국제질서가 확실히 정착된 뒤라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한국 총선이 자국의 대외전략에 미칠 영향을 특히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게 일본의 입장이다.

산케이 신문의 걱정, 하야시 장관의 의지
 

한일친선협회중앙회 주최로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일 협력 세미나'에서 국회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를 가장 크게 환영하는 극우 언론인 <산케이신문>은 11일 자 기사 '일한관계 지지한 중진 낙선'에서 윤 정부의 한일관계를 추동해 온 두 후보에게 관심을 표했다. 11일 오전 상황에 근거한 이 기사는 "일본과의 의원 외교를 담당해온 한일의원연맹의 정진석 회장은 충청남도 공주시 선거구에서 낙선이 확실해졌다", "서울시 서대문구에서는 박진 전 외상이 낙선했다"라고 보도했다.

그런 뒤 "윤석열 정권하의 대일관계 개선을 지탱해 온 중진들이 의석을 잃었다"라고 평했다. 한국 총선이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에 관한 일본 측의 관심도를 반영하는 기사다.

그런 관심은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내각관방장관의 공식 발언에도 묻어 있다. 11일 기자회견 때 그는 "타국의 내정에 관한 사항"이라며 직접적 논평을 피하면서도 향후 대응 방안을 슬며시 내비쳤다. "관계 개선을 지속적으로 실감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한국 측과 긴밀하게 의사소통한다"는 게 그의 발언이다.

하야시의 발언은 윤석열 정권하에서 한일관계가 개선됐음을 전제로 한다. 그런 개선의 결과물이 '지속적으로 실감'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그의 발언에 들어 있다. 총선으로 인해 그런 결과물이 영향을 받지 않게 해야 한다는 주문을 부드러운 어조로 윤석열 정권에 전한 셈이다.

그러면서 하야시는 두 가지를 환기시켰다. 그는 "국제사회의 제반 과제의 대처에 파트너로 협력해 가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 동지"라고 한국과 윤 대통령을 규정한 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인 2025년을 위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내년의 일한 국교정상화 60주년도 응시하며 협력을 진행한다는 생각을 나타냈다"고 위 기사는 덧붙였다.

일본은 2025년이 한일협정 60주년임을 강조하지만, 내년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부터 3번째 을사년이 되는 해다. 1905년에 한국 외교권을 빼앗는 외교적 성과를 거둔 일본은 1965년에는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 없이 한국의 문호를 개방시키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

일본은 2025년에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업그레이드'라는 명목하에 한일 외교관계를 한 단계 더 격상시키려 한다. 궁내청과 총리실에서 나온 발언들을 종합하면, 양국 현안들을 내년까지 마무리한 뒤 '나루히토 일왕의 방한'이라는 상징적 이벤트를 통해 한일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이끈다는 게 일본 정부의 희망이다.

그런 단계로 양국관계가 나아가려면 윤석열 정권이 강제징용·위안부나 독도·역사교과서 등과 관련해 일본의 입장을 더욱 더 지지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하야시 장관의 발언은 총선 참패로 수렁에 빠진 윤 대통령에게 '낙담할 시간이 없다'고 촉구하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조국 '양파남'으로 비하... 윤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여전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주한 일본대사가 9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 라마다호텔에서 열린 한일 경제교류심포지엄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12.10.9 ⓒ 연합뉴스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혐한 서적을 쓴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일본대사는 '재팬 비즈니스 프레스'가 발행하는 <JBpress>의 11일 자 기고문에서 이번 선거와 관련해 '대파'를 거론했다. '친일파 윤석열 대통령은 어디서 잘못됐을까'라는 기고문에서 그는 대파와 더불어 양파(다마네기)도 함께 언급했다.

기고문에 나오는 양파는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까도 까도 계속 문제가 나온다는 뜻으로 이 단어를 거론했다. 무토 전 대사는 3월 초순까지만 해도 국민의힘의 선거 전망이 좋았다고 한 뒤 "양파남이라고 불리는 조국 씨가 조국혁신당을 세우고 비례 후보자를 내세웠을 때부터 혁신계 야당에서 힘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조국혁신당의 기세가 윤석열 정권의 참패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그는 여당의 참패가 한일관계 전반은 아닐지라도 한일 역사전쟁에는 영향을 주리라는 판단을 드러냈다. 그는 "외교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일한관계의 개선은 윤석열 정권의 성과다"라며 "이것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번 총선이 한일 군사협력 같은 데는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 본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문제와 관련된 한일관계에서는 윤석열 정권의 태도를 바꾸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강제징용·위안부·독도·역사교과서 같은 사안에 대한 한국 국내의 반발이 상당하므로 윤 대통령이 이런 문제들과 관련해 일본 측의 양보를 기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 대변인의 공식 발언이나 전 주한대사의 기고문에서 느껴지는 것은 일본 측이 불안감을 품고 있으면서도 윤 대통령에게 여전한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한일관계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고, 그가 이룩한 결과물도 있으므로 그가 지금 상황을 계속 유지해 나가리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그 같은 낙관론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는 윤석열 대통령 개인에 대한 믿음이다. 그가 쉽사리 변치 않으리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명확해졌듯이, 진보진영은 물론이고 중도층도 윤 대통령을 비토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공세가 강해지면 보수진영이 단결하게 되지만, 중도층의 비토가 거세지면 보수진영도 동요하기 마련이다. 이번 총선 결과는 국민의힘 내부의 정세 판단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윤 대통령은 상대 진영의 세 확장보다는 자기 진영의 내부 단속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일본이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에 대한 윤 대통령의 태도가 아니라 앞으로 그가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범주라고 할 수 있다.
  
무토 전 대사는 양파남의 등장이 윤석열 정권을 어렵게 만들었다며 이것이 한일 역사문제에 영향을 주게 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한일관계에서 일본을 어렵게 만든 장본인은 '양파남'이 아니라 '대파남'이다. 자신에 대한 찬성을 일본에 대한 찬성과 일체화시킨 상태에서 국정 혼란을 자초해 민심이반을 초래한 윤 대통령이 한일관계의 진정한 장애물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한일관계에 영향이 생기면 미·일·한 협력과 미·일·필리핀 협력의 양 날개로 동아시아 전략을 수행하는 일본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지금 일본 정부는 4·10 총선이 자국에 줄 영향을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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