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임시 국회가 끝난 지난 13일 도쿄 총리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눈을 질끈 감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여당인 자민당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당의 신뢰 회복을 위해 선두에 서서 임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미래는 더 암울하다. 내각제 정치의 '퇴진 신호'인 20% 지지율은 이미 무너진 상태다. 지지통신이 지난 8일부터 11일 사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17.1%를 기록했다.
이처럼 낮은 지지율은 기시다 내각은 물론이고 2012년 이후 자민당 연속 집권 역사상 최저치에 해당한다. 자민당이 2009년 민주당에 정권을 내놓기 직전 아소 다로 당시 총리가 이끌던 내각이 받아 든 지지율은 13.4%였다. 14년 시간차를 두고 3.7%포인트까지 접근했지만 이 간격이 더 좁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민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일본 검찰의 본격적 수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첫 번째 요인은 당내 정치인들의 비자금 의혹이다. 당내 최대 계파인 세이와정책연구회(아베파)는 정치자금 모금 행사(파티)를 주최하면서 수익금에 대한 장부 기재를 고의로 누락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 정치자금 수입을 위해 파티 초대권을 매매하는 것은 합법적인 행위다. 다만 판매 수익을 기재하는 과정에서 소속 의원들에게 할당된 초대권의 수입만 정상 기재하고, 초과분은 기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이 주목하는 부분이다. 아베파는 이런 방식으로 소속 의원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했으며 총액은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약 5억 엔(약 4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검찰은 관련 의원이 10명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계파와 내각의 핵심 인물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파 이외도 지수회(니카이파) 등 다른 계파도 검찰 수사망에 포함돼 있어 조사 결과에 따라 일본 정계에 큰 파장이 일 수도 있다. 심지어 최대 계파인 아베파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의혹 대상인 마쓰노 관방장관을 포함 아베파 각료 4명을 경질했지만 무너지는 둑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특히 의혹 대상인 니카이파 소속 고이즈미 류지 법무상의 경우 검찰을 지휘 감독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공정한 수사를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질의 대상을 어디까지 이어갈지 기시다 총리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기시다 총리 본인 역시 위기의 중심에 서있다. 최근까지 거듭 부인하고 있던 통일교와의 연계설 관련 거짓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이후 불거지고 있는 통일교와 일본 정계의 깊은 연루설에 기시다 총리는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해 왔다.
심지어 자민당 의원 전원에게 통일교와의 유관 여부를 밝히라고 압박하던 기시다 총리였다. 하지만 통일교가 세운 천주평화연합(UPF)의 가지쿠리 마사요시 의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 최근 공개되면서 도덕성과 리더십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됐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17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를 "우리의 공통점은 맛있는 식사와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라고 우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작년까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일·미·한이 연대해 세계를 바꿔나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도 말했다.
기시다 내각의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기시다 총리 본인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올 한 해 세 정상이 다져온 한미일 공조가 2024년에도 굳건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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