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정애 후보자가 지명을 받은 4일, 권준 가문과 김원봉의 인연이 언론에 많이 보도됐다. 윤석열 정부가 인사 검증 과정에서 이 점을 검토하지 않았다면, 그런 인연이 그처럼 빨리 보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향후 강정애 후보자의 장관직 수행 과정에서 그 인연이 어떻게 작용할지와 관계없이, 윤석열 정권이 이번 인사조치와 그 인연이 함께 보도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지난 5월 22일 보훈처장 신분으로 보훈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박민식 처장은 김원봉의 독립투쟁을 '여러 가지 그런 활동'으로 표현하면서 "김원봉은 여러 가지로 그런 활동을 했습니다만, 북한 정권과 너무 직결되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말로 김원봉을 폄하했다.
김원봉의 아나키즘은 전체주의 국가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민식 장관의 인식은 달랐다. 지난 7월 6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우리 국민한테 자유를 주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해야 이야기가 되는 것인데, 전체주의 국가, 자유도 없는 그런 전체주의 국가를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면, 그래서 아까 말씀하신 김원봉 같은 경우가 어려운 거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와 같은 이유로 김원봉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없다는 게 박민식 장관의 주장이다.
이 자리에서 박 장관은 "백선엽과 김원봉을 비교할 때 이거는 사실 이야기가 안 되는 거거든요"라는 발언도 했다. 독립투사 김원봉과 친일파 백선엽을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박 장관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두 사람의 비교를 거부했다.
이 정도로 김원봉을 비판했던 윤석열 정권이 김원봉과 인연이 깊은 강정애 후보자를 다른 자리도 아닌 국가보훈부장관에 내정한 것이다.
지난 10월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한 뒤로 윤석열 정권은 역사전쟁과 이념전쟁의 강도를 낮추고 있다. 홍범도·정율성에 대한 공세도 누그러졌다. 강정애 후보자 건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윤석열 정권이 독립운동과 역사전쟁에 대한 기본 인식을 바꾼 것은 물론 아니다. 현재 윤석열 정권이 벌이는 역사전쟁의 핵심 키워드는 이승만이다. 이승만 동상을 서울 광화문광장 및 워싱턴 한국대사관에 설치하고 이승만기념관을 청와대 동남편에 건립하는 일은 10월 11일 이후로도 변함없이 추진되고 있다.
10월 18일에는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동상 광화문광장 건립추진위원회'가 출범했고, 11월 1일에는 윤 대통령이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500만 원을 기부했고, 11월 15일에는 이승만 토크 콘서트의 전국 순회 일정이 영남대에서 시작됐다. 독립운동이나 역사전쟁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기본 입장은 보궐선거 이후로도 바뀌지 않은 모양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권은 이번 인사조치를 통해 김원봉과 관련된 종전의 태도를 누그러트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권의 역사관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이 4월 총선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확고한 철학 없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역사에 관한 메시지를 임의로 바꾸고 있는 셈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