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9 11:17최종 업데이트 23.11.2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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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설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9년 초 청와대가 개편됐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다. 나도 그즈음 청와대를 나왔다. 청와대에서는 일이 싫다고 안 할 수 없고, 하고 싶다고 다할 수 없다. 장관급 실장부터 9급 행정요원까지 결국에는 비서다.

마지막 업무로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 모두 발언문을 썼다. 설을 앞두고 인사말을 골랐다. 귀향, 귀성길 교통안전 문제로 초를 잡았다. 다른 한 꼭지는 '온누리상품권, 지역사랑상품권'을 이용해달라는 당부다. 그냥 끝내면 밋밋할 듯했다. 대형 마트에 밀려 고전하는 재래시장과 골목 상점을 응원하면 어떨까. 감성을 반 숟가락쯤 넣어서.

"국민께서도 제사용품이나 설빔을 살 때 대형마트만이 아니라 우리 이웃들이 언 손을 녹여 가며 장사하는 전통시장이나 골목골목의 가게를 찾아 값싸고 신선한 물품을 사면서 따뜻한 정을 나눠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재래시장에는 난방이 안 된다. 겨울에 손이 시리다. 물이 계속 닿으면 빨갛게 튼다. 그곳에서 물건 구매는 정을 나누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1월 28일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이 인사말을 낭독했다. 청와대에서 내 일도 끝났다.

근무 마지막 날인 1월 31일 문재인 대통령이 불렀다. 점심을 함께했다. 수석·보좌관회의가 열리는 장소다. 내가 문 대통령에게 스트레스 해소법을 물었던 곳이다.

선물도 받았다. 푸른 색깔 '이니(문 대통령 애칭) 블루' 넥타이, 대통령 시계, 대통령 서명이 안쪽에 새겨진 가죽 명함 지갑. 함께 사진도 찍었다. 가져간 문 대통령 책에 사인도 받았다. 문 대통령은 "바깥에 나가면 더 잘 보일 테니 의견을 많이 달라"라고 말했다. '힘껏 해보겠다'라고 답했다. 이날 나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사무실로 와서 짐을 챙겼다. 겉장이 닳은 수첩, 텀블러, 버려도 그만인 기념품, 문방구. A4 용지 상자와 배낭 가방 하나 분량. 20개월 청와대 흔적이다. 기자들이 상주하는 춘추관에 갔다. 객쩍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앞으로 뭐 먹고 사느냐, 출마하느냐, 나중에 소주 한잔하자.' 걱정 어린 질문에 "일단 쉬고"라고 답했다.

삼청동 총리공관 옆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나왔다. 광화문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집에 갔다. 해가 아직 중천에 떠 있었다. 몸 관절 몇 개는 빠진 느낌이었다. 한바탕 푸닥거리한 듯. '있는 동안 의견을 더 낼 걸'이라는 약간의 회한은 남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요청을 들어 드리지 못했다. 바깥에서 봐도 기자 시절만큼 잘 보이지 않았다. 당사자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훈수하다가 대국자가 되면 잘 안 보인다.

이런저런 코멘트하기도 힘들었다. 메커니즘을 알게 되니, 오히려 입이 잘 안 떨어졌다. 챙기지 못한 이슈나, 바로 내야 할 메시지가 이따금 보였다. 함께 근무했던 이들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그 정도에 그쳤다.

경험치가 좀 있다고 이래라저래라하는 건 스스로 탐탁지 않다. 물어보면 알려줘도 된다.

참여했던 미세한 국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

이 글 성격은 앞서 밝힌 바와 같다. 헌법기관 대통령 문재인의 말과 글을 기록했다. 그를 칭송하려는 의도도, 부인하려는 의도도 없다. 그때 일을 가능한 한 그대로 옮기려고 했다.

국정은 빈 종이 위에 새로 쓰는 콩트가 아니다. 경험과 서사가 이어 내려가는 대하소설이다. 굽이와 반전, 심지어 반동이 있지만 한국만의 맥락을 품고 미래를 향해 유유히 흘러간다. 국정을 맡은 이는 이전 국정의 좋은 점을 잇고 나쁜 점을 끊으며 내 것을 보태 후대로 넘겨야 한다. 말직이나마 참여했던 미세한 국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다.

스스로 경계하는 뜻에서, 형용사와 부사 사용은 자제했다. 대체할 단어를 구하지 못할 때는 썼다. 그마저 분위기 묘사를 위해서지 그의 업적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다루지 못한 내용도 있다. 부동산 정책이나 경제 정책, 인사 문제 등이다. 아는 바가 적다. 홍보·연설 기획비서관 시절 접하지 못한 이슈다. 무엇보다 내가 청와대를 떠난 이후 변곡점을 돈 게 많다. 변명으로 들릴 것이라는 걸 안다. 하는 수 없다. 실제가 그러니.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성경 구절처럼 해당 분야를 맡았던 이들의 기록, 전문가 평가와 분석이 있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마지막 주간 직무 긍정률은 45%로 직선제 부활 이후 가장 높았다. ⓒ 한국갤럽

 
단, 이런 팩트가 있다. 대통령 임기 5년 마지막 주간 직무 수행 평가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직선제 부활 이후 가장 성적이 높았다.

한국갤럽이 2022년 5월 첫째 주(3~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잘못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물었다. 45%가 긍정 평가했고, 51%는 부정 평가했다(전화조사원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은 11.3%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같은 조사에서 다른 대통령 긍정 평가는 노태우 12%(1992년 5월), 김영삼 6%(1997년 12월), 김대중 24%(2002년 12월), 노무현 27%(2007년 12월), 이명박 24%(2012년 10~12월 평균)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던 2016년 12월 둘째 주 긍정 평가가 5%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끊임없이 현실정치에 소환된다. 이런 일을 예견했던 듯하다. 2018년 12월 28일 신임 대법관 임명식에서 고충을 토로했다. 문 대통령은 "개혁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다"라며 "개혁하면 할수록 그 이상의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원래 상황에 비춰보면 많이 개혁한 것이고 차근차근 가면 되는데 더 많은 개혁 요구가 쌓인다"라며 "이미 한 것(개혁)은 당연하게 생각하고"라고 말했다. 힘들어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모든 세력으로부터 개혁 요구를 받는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요구한 개혁이 평가 기준이다. 기준은 각자 하나씩 있다. 수천만 개다. 그러니 불만이 만족을 압도한다.

한 동창은 문 대통령을 지지했다. 요즘 소셜미디어에 문 대통령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탁란(托卵,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음) 정치'의 둥지 역할을 했다고, 정권을 넘겨줬다고, 그러고는 홀로 유유자적(悠悠自適)한다고. 그런 비난의 과녁이 되는 것 또한 선출직 공직자의 운명이다.

바람이 하나 있다. 내가 기록한 문 대통령의 언행이 사표(師表)나 반면교사(反面敎師) 역할을 했으면 한다. '반면교사가 될 대목이 뭐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 같다. 내가 나를 봐도 못마땅한 구석이 있는데, 하물며 남의 일이다.

마침표를 찍으니, 막걸리 한 되를 아껴 마시며 낡은 LP 몇 장을 들으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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