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2일 당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와 싸우다 순교자로 죽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이 연설은 리비아 국영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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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북아프리카를 휘몰았던 민주화 열풍은 리비아의 42년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를 끌어내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하지만 '아랍의 봄'이 수십 년 동토의 땅 리비아를 쉽게 녹이지는 못했고 카다피의 반격은 오히려 시민군을 수세에 몰기까지 했다. 결국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무력 개입하면서 카다피 정권은 막을 내린다.
한 나라의 주권 영역에 국제사회가 개입하는 문제는 도덕적으로 선명한 명분과 함께 현실적으로 더 나은 안정을 보장할 때 정당화될 수 있다. 특히 도덕적 명분이 정치적 이해충돌로 상이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을 경우 더더욱 그렇다. 외세에 의해 무너진 '권위적' 질서가 오히려 더 극심한 사회의 혼란과 피폐한 민중의 삶으로 이어진다면, 과연 외세에 의한 체제 전복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실체'로서 독재는 본질적으로 미화될 수 없다. 소수에 의해 권력과 이익이 전용됨으로써 다수가 누려야 할 공리가 현저하게 침해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으로서의 독재는 조금 복잡하다.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특정 시간과 장소, 상황과 맥락을 가지며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다.
카다피의 독재는 나쁜 것이고 제거되는 것이 더 옳다. 하지만 2011년 리비아의 정치적 상황과 국제사회의 현실적 거버넌스 능력을 고려할 때 과연 나토군이 꼭 '그때' 리비아에 개입해 '그 방식으로' 카다피를 제거하고 (카다피 사살을 둘러싼 여러 의혹은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다) 나라를 혼란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하는 문제는 다르다.
교과서적, 원론적인 판단과 현실 정치에서 구체적 행동을 취하는 상황에서의 판단은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국제관계의 복잡성과 국제정치에서 요구되는 신중함, 용의주도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좁은 범위의 정치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국제관계에서의 역학관계는 현시대 최대 지상권(至上權)을 가진 유일한 집단인 국가에 관여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그 외 나토 회원국들은 그들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거슬리는 카다피를 독재자 프레임으로 제거했지만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에는 서구 국가들이 비호하는 독재자들이 수없이 있어 왔다. 다만 카다피는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 제거'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리비아는 아프리카 최대, 세계 9위의 가채(可採) 석유매장량 국가이다.
그렇게 독재자가 제거된 땅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내전과 혼란, 무질서와 무정부 상태가 무려 12년 동안 계속돼 왔다. 그 사이 리비아는 무려 140여 부족이 공권력 부재 속에서 서로 대립했고 그 혼란을 틈타 러시아의 바그너그룹, 서아시아의 IS 등이 이권을 챙겨 나갔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은 자신들의 이익 관계에 따라 특정 정치세력의 뒤 봐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국가 단위의 정부 구성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일정부를 구성하려는 노력은 내전으로 비화되고 지역 간 갈등, 종교 갈등만 확인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결국 국민통합정부(GNA)를 표방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서부지역 트리폴리에 단독 정부를, 리비아국민군(LNA)을 자칭하는 세속주의 군부세력이 동쪽 지역 투브루크에 단독 정부를 세우게 된다.
2015년 유엔은 트리폴리의 국민통합정부를 리비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했지만 모든 국가가 동의하지는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그리스 등은 카다피를 암묵적으로 추종하는 동부의 리비아국민군을 지지하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의 경우,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당시 외무부는 트리폴리 정부를, 국방부는 투브루크 정부를 지지하는 모순적 태도까지 보였다.
서구의 '위험한 장난'... 대홍수는 필연적 인재다

▲9월 15일 금요일 리비아 데르나시에서 구조대원들이 홍수 피해자들의 시신을 찾고 있다. 폭우로 댐 두 곳이 붕괴되면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로 인해 수색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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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2016년 4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자신의 재임 중 최악의 실수로 리비아 사태 처리를 꼽았다. 카다피 제거 후 벌어진 리비아 사태에 대한 책임을 말한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8년 2월 튀니지 방문 중 국회 연설에서 2011년 나토의 리비아 개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리비아를 혼란과 극단주의의 희생자로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후속 대책 없이 일단 붕괴시키고 보는 서구의 위험한 장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련 붕괴에 진심을 담았던 서구는 이후 러시아의 건전한 자본주의 정착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를 그들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보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제거에 혈안이 됐던 그들은 이라크의 안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무책임은 10년 넘는 이라크 내전과 IS 확산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리비아 개입 또한 그 패턴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카다피의 제거에만 관심을 가졌던 그들은 이후의 리비아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었다. 현재 무정부 상태의 리비아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거점이 되어 유럽으로 향하는 대부분 난민 항로의 출발지가 되고 있다. 유럽이 그토록 싫어하는 불법 난민에 대해 공권력을 가진 리비아 정부가 없으니 대응도 대책도 요구할 곳이 없다.
2023년 9월 리비아 대홍수는 이러한 카오스 속에서 어쩌면 필연적 인재였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12년의 내전 기간 동안 댐,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재해에 대비하는 경보 시스템은 먼 나라 얘기였다. 피해 지역 데르나시의 부시장 아흐메드마드루드는 외신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두 개의 댐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정치가 사라진 무정부의 땅을 자비 없이 할퀴고 지나간 대홍수, 이제 리비아 국민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정말 비참한 것은 세계의 구호물자가 하나둘 도착하고 있지만 이를 관리할 정부가 없고, 여기 저기서 무장세력들이 하나 둘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데르나시를 접수하고 있는 이들은 IS계열의 지하디스트 안사르 알 샤리아(Ansar al Charia), 그리고 알카에다와 가까운 한 연합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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