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2 07:01최종 업데이트 23.09.1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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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모습. ⓒ 연합뉴스

 
검찰이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인터뷰' 보도에서 비롯된 이른바 '가짜뉴스' 의혹 수사에 착수했지만 주요 혐의인 명예훼손죄 적용은 쉽지 않다는 관측이 법조계에서 나옵니다. 현재 검찰의 1차 수사 대상은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외에 해당 내용을 보도했던 뉴스타파와 MBC 등 기자 6명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혐의는 국민의힘이 고발한 대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 될 공산이 큽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공직수행과 관련한 언론 보도의 경우 면책 범위가 폭넓게 적용되는 판례에 비춰 사법처리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법조계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검찰이 혐의 입증을 위해 해결해야 할 관건은 언론이 허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보도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즉 뉴스타파 등 고발된 기자들이 김씨의 인터뷰가 거짓인 줄 알면서도 윤석열 대통령 후보자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를 갖고 보도했는지를 입증해야 합니다. 또 다른 조건은 이들 기자가 인터뷰 내용의 허위 여부 검증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도 규명해야 합니다. 결국 취재기자들이 '오보'라는 점을 알고도 보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재판부가 명예훼손죄를 인정할 가능성이 적다는 얘깁니다.

명예훼손죄의 두 가지 원칙, 진실 오신의 상당성과 악의성 

이런 판단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법원이 명예훼손죄에 적용하는 두 가지 원칙입니다. 언론이 보도할 당시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진실로 인정해 주는 '진실 오신의 상당성 원칙'과 공인과 관련한 보도가 악의적으로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게 아니라면 언론 자유를 우선적으로 보장하는 '악의성 원칙'이 판례로 정립돼 있습니다. 실제 법원은 취재의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에는 일부 허위사실이 있더라도 명예훼손죄를 인정하지 않은 게 관례였습니다.


2008년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 당시 검찰은 제작진은 기소했지만 대법원은 "언론 보도 내용이 객관적으로 최종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공직 수행과 관련해 의혹을 품을 만한 이유가 있고,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엔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같은 해 발생한 '이명박 대통령 쥐코동영상 사건'과 관련해서도 헌법재판소는 2013년 "동영상이 대통령의 공적인 활동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표현을 담고 있지만 악의적인 공격이 아니라고 보아 명예훼손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라고 판단했습니다.

뉴스타파 보도의 경우 일부 편집 논란은 있지만 '오보'의 의도성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게 중론입니다. 당시 취재 기자는 "분량 문제로 필요한 부분은 편집했지만 김만배씨 발언 취지를 훼손한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만배씨가 '내가 왜 박영수를 조우형에게 소개시켜줬는지를 얘기하면서 거기에 윤석열이 있다'라는 걸 전제로 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인터뷰 검증에 대해선 "녹음파일 등장 인물들의 입장을 받아 보도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이에 따라 박영수 변호사로부턴 답을 받았고 나머지는 반응이 없어 편집회의를 거쳐 보도했다"고 밝혔습니다.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경우는 형사책임이 인정되기가 더욱 쉽지 않습니다. MBC는 당시 뉴스타파에 나온 김씨의 인터뷰내용을 소개하며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의 반론을 배치했습니다. 부산저축은행 사건 봐주기 수사 의혹에 대한 자체 취재내용도 별도 꼭지로 보도했습니다. 언론계에선 검찰이 인용 보도로까지 수사대상을 확대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비판언론 길들이기용 수사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국무부가 지난 3월 펴낸 한국 인권 상황에 관한 연례 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는 공공의 토론을 제한하고 개인과 언론의 표현을 검열하는 데에 명예훼손법을 사용했다"고 비판했는데, '바이든-날리면' 보도에 대해 여당이 MBC를 윤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것을 사례로 들었습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5월 발표한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한국은 47위로 1년 전에 비해 네 계단 하락했습니다. 이 단체는 "한국의 언론사들은 정치인과 정부 관료, 대기업의 압력에 직면해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의 상황이 이어진다면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는 더욱 위축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충재의 인사이트>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매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을 지냈던 이충재 기자는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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