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무일 작가가 펴낸 6권의 책권 작가가 제주로 이주한 후 그의 나이 67세에서 78세 사이에 펴낸 책들이다.
황의봉
글을 쓰게 된 연유를 물었더니 '외로워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20년 전 제주로 와서 8년간 가족과 떨어져 살 무렵, 외로우니까 글을 쓰게 됐고, 쓰다 보니 자신에게 글솜씨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을 쓰면 외롭지 않아요. 소설은 혼자서도 즐길 수 있습니다. 상상 속에서 많은 사람과 대화하고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으니까."
제주에 온 지 4년이 지난 2008년 계간지 <문학과 의식>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하게 되자, 친구가 이왕이면 소설을 써보라고 권했다. 그는 이왕이면 제주 혹은 제주 사람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소설을 쓰기로 하고 제주에 관해 공부해 보니, 육지에서 보던 잣대로 제주를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제주 고대사부터 공부한 배경이다. 이런 그에게 제주 역사에 등장하는 '의녀 김만덕', '헌마공신 김만일', '표류인 이방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훌륭한 사람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널리 알려야겠다는 심정으로 각종 자료를 섭렵하고 글로 엮어나가는 작업에 깊이 빠져들어 갔다.
소설로 되살아난 김만일과 이방익
권무일 작가의 역사 소설 중에서도 기자의 관심을 끈 작품은 김만일과 이방익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김만덕은 제주에 흉년이 들자 사업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재산을 털어 빈민을 구휼한 여성으로, 드라마로도 방영돼 제주는 물론 육지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남이 장군 역시 유명한 인물인 데다가 제주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이에 반해 김만일과 이방익은 어렴풋이 이름 정도를 알고 있던 터여서 흥미를 끌었다.
헌마공신 김만일(1550∼1632)은 누구인가. 작가는 말한다.
"김만일은 제주의 산야에서 무려 1만여 마리의 말을 키운 사람입니다. 전투에 나갈 수 있는, 몽골 초원을 누볐던 크고 튼튼한 말에 못지않은 우수한 혈통의 전마(戰馬)를 키웠어요. 이 말들을 임진왜란 때 500마리, 광해군 때 500마리, 정묘호란 때 240마리, 병자호란 때 500마리 국가에 바친 기록이 나옵니다. 김만일이 키운 말을 산에서 키웠다고 해서 산마(山馬)라고도 하는데, 수천 마리의 산마를 나라에 헌납해 헌마공신이라고 한 겁니다."
김만일이 키우는 말들은 한때 제주의 국영 목장 전체에서 키우는 말의 숫자에 버금가거나 능가할 정도로 많았다. 권 작가는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는 물론 제주도 문헌과 말 관련 자료를 샅샅이 뒤지고, 문학적 상상력을 입혀 헌마공신을 비로소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다.
김만일 사후 효종 임금은 김만일의 후손을 종6품의 산마감독관에 임명해 세습하도록 했다. 고종 때까지 240년간 총 83명의 후손이 산마감독관을 세습하면서 제주도의 말 사육을 주도한 것이다. 김만일이라는 제주의 영웅이 육지에서 온 소설가의 힘으로 화려하게 되살아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