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21 18:37최종 업데이트 23.04.0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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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는 정태인 전 청와대비서관. ⓒ 권우성

 
21일 새벽녘, 책상에 앉아 뒤척거리고 있었다. 바로 옆 케이블 채널 BBC에선 연신 '브레이킹 뉴스(Breaking News)'라는 큼지막한 글자와 '영국 총리 리즈 트러스, 사임하다'라는 자막이 선명했다. 

"와우? 이렇게 빨리?"라는 생각에, '총리 취임한 지 44일만' '영국 역대총리 가운데 최단 기간'이라는 소리에, 컴퓨터를 다시 켰다. 다음주 오마이TV '찐경제' 방송자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페이스북도 열었다. 


여느때처럼 빠르게 화면을 이동하면서 스쳐 올라간 그의 부고 소식. 정태인 전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아래 '정 선배'라 쓴다). 최근 그의 건강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과 함께,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올라오던 근황이 뜸 하던 차였다. 

머릿 속은 하얘졌고, '트러스'는 사라졌다. 가슴이 먹먹했고, 나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대신 '어딘가 그를 다시 볼 수 있는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 속에... 그리고 20년 전 서울 광화문 뒷골목 삼거리에서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트러스' 날린 그의 부고... 20년전 한 통의 전화 그리고 인연

아마도 2003년 3월 중순 정도였을 것이다. 휴대전화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고, 수화기 너머로 나즈막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북한 선제폭격 타진했다는 장관 이야기 좀 들어보자"고 했다. 

그가 말한 '장관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부시 행정부 고위급 인사가 당시 갓 출범하는 노무현 정부에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타격을 타진했다"는 기사를 썼다(관련기사 : "북, 영변 기습폭격하면 어떻겠나?"... 부시 행정부, 노무현 정권에 타진). 기사 후폭풍은 거셌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북한 선제타격론은 국내외 정치경제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보도 이후, 당시 외교부와 통일부 장관 등은 앞다퉈 "<오마이뉴스>를 만난 적 없다"면서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그 장관'은 초대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었던 김진표 의원(현 국회의장)이었다. 국내외 정치외교적 파장이 커지고, 남북관계는 더 악화되면서 국제 신용평가사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았다. 김 장관은 뒤늦게 별도 회견을 열고, 스스로 '커밍아웃'했다.

정 선배는 얼추 짐작하는 듯 했다. 내게 광화문의 어느 가게 이름을 알려줬다. 좁은 골목 사이에 조그마한 선술집이었다. 저녁 마감 후 찾아 갔을때, 그는 이미 취해 있었다. 그는 정부에 대한 언론보도에 불신이 컸었고, 특히 인수위 시절부터 진보 언론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그날 정작 '장관 이야기'도 없었다. 아니, 그날 제대로 대화가 이뤄질 수 없었다. 선배와의 첫 만남이 유쾌할 리 없었다. 

훗날 정 선배는 "그 장관이 누군지 얼추 짐작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미 나의 경력을 파악했고, 당시 경제 쪽 장관 인사들 가운데 그같은 정보를 접할만한 인물을 추정했다는 것. 결국 나를 통해서 확인받고 싶었고, 자신의 관심 분야인 남북관계와 동북아정세 그리고 한국 경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들이 너무 무식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많이 알려달라"고 했고, 그 핑계로 독서모임을 가장한(?) 술 친구가 됐다.   

질곡의 한미FTA... "노무현이 그렇게 싫어요?"
 

2013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는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 유성호

 
참여정부 역시 초기 경제 위기와 싸워야 했다. 북핵 위기와 함께 신용카드 대란, 에스케이(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에 이어 이라크 전쟁까지. 마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 고금리와 경기침체 등과 사뭇 비슷하다.

정 선배와 가끔 만날 때마다 물었다. "비에치(BH)에서 도대체 무슨 일 해요?"라고 (당시 그의 공식 직책은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었다). 그의 답은 한결같았다. "일은 무슨... 만날 자료 읽고, 토론하고..."라고. 그러면서도 소주 몇잔 들어가면, 금세 속내를 드러냈다. 참여정부 초기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등에 상대적으로 속도를 못냈던 것에 대한 아쉬움, 관료들과의 논쟁. 하나같이 기삿거리였지만, "이런 걸로 (기사를) 쓰지 말고, 근본적인 문제를 봐"라고 했다.

'행담도 사건'으로 청와대서 나왔을 때  "억울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는 특유의 냉소적인 웃음으로 "됐어. 미련없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기나긴 재판과정으로 마음고생이 컸다. 또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도 맨앞에 나서 반대했다. 특히 그는 청와대서 한일, 한중FTA 등을 연구하고 준비했던 당사자였다. 

하지만 한미FTA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돌아갔다. 2006년 갑작스러운 한미FTA 추진에 대부분 언론들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향후대미 수출시장 확보를 위한 교두보가 될 것이라며 찬양론 일색이었다. 

반대로 그는 미국이 과거 멕시코, 캐나다 등과 맺었던 협정과의 차이를 찾아 내고 철저하게 미국 주도의 일방적인 협상방식과 독소조항 등 내용을 꼼꼼하게 챙겨 공개했다. 대표적인 것이 투자자-국가소송제(ISDS)였다. 최근 미국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한국정부를 상대로 40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받아내는 데 일조한 바로 그 조항이다. 

정 선배는 술자리에서 "정말 말도 안되는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약간의 오버스러운 표현까지 써가며, "대통령이 친미 보수세력에 포위됐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했다. 나는 선배에게 "노무현이 그렇게 싫으세요"라고 묻기도 했다. 

지금 기억을 떠올려보면, "내가? 왜? 노무현 한 사람을?... 에이, 그나마 저기(BH)서 말 통하는 몇 사람 중에 한 명인데..."라고 했다. 이어 "그 옆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인간들이 싫지. 뻔히 속보이는 일을 스스럼 없이 해대니까..."라고 답했다. 그때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인사로 돌아왔다. 

"경제학 책 버려"... 새로운 대안 경제를 모색하자
 

2013년 <협동의 경제학>을 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정태인 원장과 이수연 연구원. ⓒ 유성호

 
이명박 정부 들어서, 미국 소고기 수입 파문부터 한미FTA 재협상 등 그에게 의견을 묻고, 들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실제로 만남은 전보다 줄었다. 그 스스로 술자리를 줄였다고 했지만…(훗날 들어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2010년께 그를 다시 찾았다. 2008년 미국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2009년까지 글로벌 금융위기는 우리의 삶에도 큰 타격이었다. 이명박 정부 역시 민간주도 성장중심의 경제정책에서 동반성장으로 바꿀 정도로, 민생경제는 어려웠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 때 세워놓은 경제안전망 덕분에 2010년에 경제는 안정을 찾아갔다.

때 맞춰 <오마이뉴스>는 반복되는 경제위기속에 새로운 정치와 경제사회를 위한 대안모델을 고민해보는 기획을 추진 중이었다. '유러피언 드림, 현장을 가다'라는 연중기획은 그렇게 시작됐고, 나는 경제 대안모델을 찾아야 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 있던 정 선배는 대뜸 "협동조합 어때"라며,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모델을 제안했다. 경제위기와 불황으로 한때 빈민도시였던 볼로냐가 유럽최고의 부자도시로 계속 유지되고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 그들의 경험을 직접 듣고, 배워보자는 것이었다. 정 선배는 "자본주의 새로운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오로지 효율과 경쟁위주의 자본주의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연대와 협력을 기반에 둔 새로운 방식만이 살 길이라고 했다. 그는 '협동과 평등의 경제'에 꽂혀 있었다. 볼로냐 취재는 그 첫단추였다. 현지에서 그는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뜬금없이 "경제학 책 어디까지 봤나"라고 물었다.

사실 나는 경제부 기자를 오래하긴 했지만, 학부 시절 교양과목으로 배운 원론수준 이상으로 깊이있게 본 적이 없었다. 정 선배는 "차라리 잘됐네. 이제 경제학 책은 버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를 떠나 보내며
 

지난 2012년 캐나다 퀘벡의 사회경제모델 취재 당시의 정태인 전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맨 오른쪽) 모습. 김현대 당시 한겨레기자 등과 동행 취재 했다. ⓒ 김종철

 
그와의 새로운 경제를 찾는 여정은 볼로냐를 시작으로 2012년 캐나다 퀘벡으로 이어졌다. 정 선배 스스로 "볼로냐에서 시작해서 퀘벡과 몬드라곤(스페인)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자"면서, 새로운 경제사회모델을 제시하자고 했다. 

또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유럽발 재정 위기가 부각되고,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이슈가 떠올랐다. 경제 위기에도 견고한 성장과 복지를 통해 자신들의 삶과 생활을 이어가는 사례들. 볼로냐에 이어 퀘벡에서 가능성을 찾아 나섰다. 

정 선배는 우리가 함께 취재한 결과물을 바탕으로 책 <협동의 경제학>을 냈다. 그리고 그는 책에서 "경제학은 이미 죽었다"고 썼다(관련 기사: "수첩공주의 창조경제로는 경제 못 살려 …개성공단 문제? 삼성공장 입주하면 해결").

2013년 또 다른 보수정권 속에서도 그는 꿋꿋이 연대와 협동에 기반한 경제모델 연구에 집중했다. 그나마 박원순 서울시장의 '협동조합 도시, 서울'은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후 촛불시민에 의한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 그리고 다시 찾아온 경제 위기 등. 

그 과정에서 정 선배는 여전히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서울에 처음으로 유치한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에서 내려와서, 독립연구자로서 대북관계와 기후위기 등에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할애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정책과 586에 대한 쓴소리 등은 정태인다운 비판이었다. 20여 년에 걸쳐 그는 내게 때때로 매서운 경제 교사였고,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취재원이었다. 또 어떤 사물과 현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깨우치는 데 그의 시니컬한 비평은 큰 도움이었다. 

소주잔을 기울이고 나면, 곧 이어 "노래방 가자"라며 손을 이끌던 그가 그립다. 지금 이 시각, 우리 삶 전반에 걸쳐 또다시 찾아온 경제 위기, 다시 그의 실랄한 말들이 그립다. 그의 영면 소식에 아직 가슴 한 켠이 휑하다. 

"선배, 시간되세요? 뭐 좀 물어보려고…"
"뭘, 또 아직도 물어볼게 있어?" 


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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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인을 추모하며 

다시보는 <오마이뉴스> 사회적경제 시리즈 [볼로냐와 퀘벡의 조용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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