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JTBC가 보도한 "'일본 덕분에 한국 발전'…왜곡 가르치는 하버드"
JTBC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재에 담긴 역사 왜곡이 9월 들어 자주 보도됐다. 1910년 일본이 '합병'한 이래로 한국이 식민지배 덕분에 산업화됐고 교통·전력·교육·행정·금융 시스템 역시 근대화됐다는 하버드대 교재 내용이 한국인들을 불쾌하게 하고 있다.
객관적인 제3자가 외국 역사를 서술할 때는 'A나라가 B나라를 점령했다'거나 'A가 B를 식민지로 만들었다'라고 표현하기 마련이다. 그런 제3자가 'A가 B를 식민지배해서 B가 근대화됐다'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드물다.
식민지배의 아픔을 경험한 당사자이거나 그 후예라면 그런 표현을 더욱더 삼간다. 식민지배에 부역해 이익을 얻거나 아무 반성 없이 그 이익을 승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식민지배를 당한 나라의 대중은 그런 표현을 가급적 기피한다.
미국 대학 교재에 담긴 왜곡된 역사 서술이 미국인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어느 분야든 영어로 된 교재는 전 세계적으로 파급력을 갖기 마련이다.
일본 역사교과서의 한국사 서술이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듯, 미국 교과서의 한국사 서술은 한국에 대한 세계인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일본 및 중국 역사교과서 못지않게 미국 교과서의 한국사 서술 역시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대학 내의 한국사 교육환경이 중국사·일본사 교육환경에 비해 열악하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미국 대학에서는 한국사가 그 자체로 다뤄지기보다는 동아시아학의 일환으로 다뤄지는 일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 교육환경이 중국사·일본사에 비해 열악하기 때문에, 동아시아학인 한국사가 또 다른 동아시아학인 중국사·일본사에 의해 오염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한국사 박사과정을 밟았거나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은 유학생 일곱 명의 인터뷰에 기초한 역사학자 오상미의 논문 '북미 대학원의 한국사 교육과 연구'에 따르면, "한국사 전임교수가 없는 곳에서도 중국사나 일본사 교수의 지도하에 한국사 혹은 중국·일본·만주 등을 포함하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는 경우도 있으며"라고 설명한다. 일본사를 전공한 교수가 한국사 박사논문을 지도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2021년 <역사비평> 제134호에 실린 위 논문은 "(북미 지역의) 역사학과에서는 동아시아사를 전문적으로 가르칠 인력으로 대개 중국사나 일본사 교수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런 환경은 한국사가 미국 대학 내에서 중국사·일본사의 시각에 의해 재단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미국 대학에서 한국사가 올바로 가르쳐지지 않으면, 미국 대학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도 한국사가 올바로 전달되기 힘들다. 이는 영어 교재를 통해 한국사를 간접적으로 접하게 될 아시아·아프리카·남미·유럽인들의 한국사 인식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일본 식민지배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됐다'는 하버드대 교재를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필요성, 미국인의 한국사 인식에 영향
미국 교재에 나오는 그 같은 서술이 꼭 교육환경 문제 때문에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런 서술을 유도하는 요인이 1882년 조미수호조규(일명 한미수호통상조약) 이래의 한미관계에 내재해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에 대한 인식이 상대방을 바라보는 '나'의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일들이 자주 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나'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단하는 경우들이 있다. 상대방을 자신에게 종속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이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난다. 자기 이익에 맞춰 남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독립성 부족이나 의존성을 부각시키는 일들이 더 많다.
전범기업 미쓰비시와 일본 정부가 대만·중국·미국 피해자들에게는 사과하고 금전을 지급하면서도 한국 피해자들에게는 냉랭하게 대하는 것도 그와 관련이 있다. 종속적인 한일 경제 관계를 기반으로 이윤을 축적해온 일본 재벌기업으로서는, 일본이 한국에 머리를 숙이고 사죄하는 것이 장래의 이윤 축적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련 입장에서는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고 한국인의 의존성을 역사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1882년 이래로 한미관계는 한 번도 수평적인 적이 없었다. 한미수호통상조약은 미국을 우위에 두고 미국의 치외법권을 허용하는 불평등조약이었다. 이런 불평등을 합리화할 목적으로 미국이 내세운 것이 '한국은 미개하다'는 논리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인들이 강화도에서 한국 고서들을 집중적으로 수거한 일은 당시 서양인들이 내심으로는 동아시아 문명을 높게 평가했음을 의미한다. 야만족이라고 생각했다면 야만족의 책들을 현장에서 불태우지 그렇게 반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1882년 당시 미국이 한국을 미개민족으로 평가한 것은 불평등조약을 관철시킬 의도에서였다. 한국의 형사사법제도가 미개하다고 평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한국을 불평등조약으로 묶어둬야 할 정치적 필요성은 미국인들의 한국사 인식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도를 갖고 한국사를 대하게 되면, 한국사 속에서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을 찾게 되고 한국인의 우수성보다는 대외 의존성을 포착하기 마련이다.
1900년대 들어 미국은 일본과의 공조하에 서태평양 정책을 펼쳤다. 필리핀은 미국이 갖기로 하고 한국은 일본이 갖기로 하는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도 그런 배경하에서 출현했다. 1905년 이후의 미국은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에 협력해주는 대가로 서태평양에 대한 영향력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행사했다. 이런 상황 역시 미국인들의 한국사 인식을 오도된 방향으로 유도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세계전략적 필요에 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