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당 노태우 후보 광주유세에서 경호원들이 '신종장비'인 투명 플라스틱 방패로 날아오는 돌멩이, 각목. 쇠붙이 등을 막아 내는 가운데 노 후보가 시위 군중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1987.11.3
연합뉴스
첫째 장면은 11월 29일 광주 유세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달 30일 자 <경향신문> 1면 톱기사는 "노태우 민정당 후보의 유세가 열린 29일 하오 광주역전광장에서 김대중 평민당 후보를 지지하는 일부 청년들이 최루탄·화염병·각목·빈병·돌멩이들을 던지고 피킷과 유인물 수기 등을 불태우는 등 집단 폭력으로 유세를 방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 뒤 "노 후보의 연설이 계속되는 동안 수백 개의 돌과 빈병·최루탄 등이 연단 쪽으로 날라들었다"며 이렇게 보도했다.
노 후보는 경호원들이 플래스틱 방패로 주위를 둘러싼 가운데 군중들의 자제를 호소하며 애국가와 만세삼창 등으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뒤 연설을 강행했으나, 예정된 40분의 행사 일정은 채우지 못하고 10분 만에 유세를 종료했다.
둘째 장면은 11월 29일 상황에 대한 노태우와 민정당과 보수 언론의 해석이다. 의도적인 폭력 유발의 여지도 생각해볼 수 있는 위 상황이 발생한 뒤에, 노태우는 5·18 학살에 대해 참회해야 할 책임을 무시한 채 도리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태도를 보였다.
위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유세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그의 말은 "오늘 사태를 통해 직선제의 가장 큰 폐단인 지역감정 문제를 국민들이 또 한 번 실감했을 것"이었다. 광주 유세 이후에 잡혀 있는 영남권 유세를 겨냥한 발언이었다고 해석될 여지도 없지 않았다.
12월 1일 자 <조선일보> 3면 기사에 따르면, 민정당 역시 "지역감정의 발로"로 몰아갔다. 이 같은 해석은 순식간에 대세를 이뤘다. 이 점은 "광주학살 책임자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는 정대철 평화민주당(평민당) 대변인의 논평을 놓고 이 <조선일보> 기사가 "유세 폭력에 대한 다른 해석"이라고 정의를 내린 데서도 알 수 있다. 지역감정의 발로가 아닌 5·18에 대한 분노 표시로 해석하는 일각의 견해도 있다는 식으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11월 29일 유세 뒤에 여론은 광주를 포위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 점은 12월 1일 자 <조선일보> 사설 '한을 푸는 최선책'이란 논평에서도 알 수 있다.
이 글은 "광주 시민들의 한과 응어리"를 이해해줄 필요성을 인정하는 듯하다가 "그 한을 풀기는 꼭 풀어야 하겠는데, 그 방법으로서 돌과 각목과 난폭한 유세 방해가 과연 최상의 것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물음"을 던진다.
그런 뒤 "가장 확실하고 가장 완벽한 최상의 길은 오직 하나 - 그 한을 선거를 통해서 투표로 풀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다가 '광주의 한은 민주화로 해결돼야 하므로 민주적 절차인 선거로 풀어야 한다'는 황당한 궤변까지 덧붙인다.
1992년 대선 직전에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부산 초원복집에서 했던 '우리가 남이가?'라는 발언이 지역감정을 폭발시켜 김영삼 민주자유당(민자당) 후보 당선에 기여했던 것과 비슷하게, 광주 유세를 근거로 지역감정을 확산시키는 노태우·민정당·조선일보의 접근법 역시 대선 결과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2월 16일 선거에서 노태우가 승리한 뒤에 나온 분석 기사인 그달 19일 자 <조선일보> '지역감정-폭력에 반대표 많았다'는 "승패의 기본 배경은 결국 야권 후보의 단일화 실패와 그에 따른 지역감정 격화, 일련의 폭력 사태 속에서 더욱 유발된 안정 기대심리 때문이라는 분석들이 상당하다"고 말한다.
이 기사에 언급된 야권 단일화 실패 및 지역감정 조장에 더해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과 폭파범 김현희의 선거 전날 입국 역시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
민정당 의원마저 '호남 소외' 거론했는데
시민혁명에 눌려 직선제 개헌에 동의하고 정권 상실 위기에 내몰렸던 34년 전 보수정당은 5·18 학살범 노태우의 11월 광주 유세를 빌미로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나는 광주 유세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라는 노태우의 예언은 그렇게 성취됐다.
1980년에 광주를 학살한 것도 모자라 7년 뒤 대선에까지 이용한 민정당 정권의 모습은 '호남에서도 전두환이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는 윤석열의 발언이 얼마나 황당한가를 알려준다.
전두환이 퇴임한 지 2년 뒤이자 민정당 주도의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탄생한 직후인 1990년 2월 28일, 오유방 민자당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거대 여당이 호남에 단 한 석의 지역구 의석을 갖지 못해 국민정당이라고 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그 원인을 민정당 정권이 호남을 소외시킨 데서 찾았다. 그러면서 "정부는 호남 소외 문제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건의했다.
오유방 의원은 청주 출신으로 서울 서대문구·은평구·용산구에서 당선됐다. 박정희 때는 민주공화당, 전두환 때는 민정당에 몸을 담았다. 그런 그의 입에서도 호남 소외 문제가 거론됐다. 5·18 학살 뒤에 광주를 소외시킨 전두환을 두고 '그래도 정치는 잘했지'라고 추억할 호남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회의적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7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2021.7.17
연합뉴스
호남 사람들이 그러더라며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고 발언하는 사람이 전두환을 부정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런 말은 전두환을 찬양하는 사람의 입에서나 나올 만한 것이다
그런 윤석열이 5·18 망언에 대해 사과하고자 11월 중에 광주를 방문하게 된다. 그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기는커녕 노태우처럼 광주를 도리어 이용하려 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그런 우려를 떨치려면 정치적 효과에 신경 쓰지 말고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