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철·지운영 ‘절필산수’
국립중앙박물관
지운영은 후배 서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김용진, 황철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평안도 지역의 화가인 반돈식, 송기근, 여성화가인 김석범 등 여럿이 지운영의 제자이다. 아들 지성채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거의 같은 그림을 그렸다. 이들은 대부분 지운영 특유의 습윤한 산수화를 본받아 그렸다.
제자들 중 특히 황철과 가까웠는데,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데다 배포가 맞아 친구처럼 지냈다. 이들 사이엔 만나서 죽어 헤어질 때까지 하늘이 내린 특별한 인연이 있다. 황철은 지운영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지운영은 황철의 본명 '준성(濬性)'을 '철(鐵)'로 바꾸어주고, 자를 '야조(冶祖)'라 지어주었다.
두 사람은 늘 가까이 하였는데, 황철이 아관파천에 연루되어 일본에 망명 갔을 때에도 지운영이 자주 들러 함께 하였다. 황철과 지운영이 일본에 있을 때에는 주로 일본인 스나가 하지메(須永元, 1868-1942)의 집에 머물렀다. 스나가 하지메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한국인과 많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스나가 하지메는 당시 서구 문명의 도입을 주장한 유명한 계몽 사상가였던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개화된 인물이었다. 그는 한국인 유학생들과 교류를 하며 한국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일본에 망명해 있던 김옥균과 박영효를 시작으로 많은 한국인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스나가 하지메는 한국을 자주 드나들기도 하였는데, 한국에 건너왔을 때에 주로 박영효의 집에 머물렀다.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에 갈 경우 스나가 하지메의 집에 머물며 교분을 나누고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김옥균, 박영효, 황철, 우범선뿐만 아니라 오세창, 김응원, 이한복 등도 스나가 하지메의 도움을 받은 인물들이었다.
황철은 말년까지 스나가 하지메의 집에 머물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죽기 전에 스나가 하지메 집안의 선영이 있는 곳에 자신을 안치해 달라고 마지막 부탁을 한다. 그만큼 황철과 스나가 하지메의 우정은 남달랐다. 이러한 스나가 하지메와 황철의 우정은 황철이 죽고 난 이후에까지도 이어지는데,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비장한 이야기가 전한다.
스나가 하지메는 황철이 망명하자 경제적 후원을 하고 마음껏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런데 마침 황철이 대작 산수화를 그리던 중 완성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이를 안타까워 한 스나가 하지메는 서울을 방문할 때 미완성의 이 작품을 가지고 와 지운영을 찾아가 작품을 마무리해 주기를 부탁한다. 지운영은 흔쾌히 받아들여 황철이 죽은 지 두 돌 되는 날에 맞추어 작품을 완성하고, 1248자에 이르는 장문의 화제를 써 넣는다.
이 작품은 황철이 그리기 시작하였으나 완성은 지운영이 하였다. 그러나 어느 부분이 누가 그렸는지 도저히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는 두 사람이 서로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만치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까지 헤아릴 만큼 한 몸이었다. 지운영이 쓴 화제 속에는 두 사람 간의 절절한 인간관계가 눈물 날 정도로 절절하게 적혀 있다. 이는 그림뿐만 아니라 시에도 능한 지운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미술사에서는 '지운영'이란 서화가에 대해 그리 큰 비중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저 옛 그림들을 임모하면서 기량을 길렀으며, 산수 인물을 잘 그렸다는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중국풍이 짙은 화풍은 독창적인 화풍을 형성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완성도 면에선 다른 전문 화가들에 못지않았으며,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단지 서화에만 충실했던 다른 서화가와 달리, 시에 뛰어났으며 사진술과 도교∙무술 등 다른 방계 활동에도 뛰어난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이런 면에서 지운영은 새롭게 관심을 가져 볼 만한 뛰어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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