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규(오른쪽), 김봉룡과 박람회 수상 작품.
동아일보
1924년 전성규는 겨울 느닷없는 소식에 가슴 설렌다. 이듬해인 1925년 5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만국미술공예박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당시 새로운 기술로 압도적인 작품을 만들던 전성규에게 작품을 출품할 것을 권유한다.
전성규는 제자 김봉룡과 함께 밤낮을 잊고 작업에 몰두하여, 화병 한 점과 작은 서랍 그리고 합 등 모두 세 점을 만든다. 작품의 제작이 끝나자 전성규는 이 작품들을 직접 들고, 도쿄에 있는 농상무성으로 출품을 위해 떠난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파리공예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작품은 김봉룡의 작품이 '은상', 전성규의 작품은 '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는다. 한국인의 공에 작품이 세계적인 대회에서 수상하는 첫 쾌거였다.
전성규, 김복룡의 수상은 전적으로 전성규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출품을 따낸 것, 출품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것 모두 오로지 전성규의 몫이었다. 돈을 마련한 것도 그요, 작품을 제작한 것도 그의 공방에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작품 중 한 종류는 그의 이름으로, 한 종류는 아끼는 제자인 김봉룡의 이름으로 출품하도록 하였다. 그만큼 전성규의 가슴은 열려 있었다.
작품의 세계화를 위해 제자를 양성하다
파리 만국공예미술박람회에서 수상하여 유명해진 전성규는 이후 작품 제작과 함께 후진 양성에 힘을 쏟는다. 1927년 장곡천동(長谷川町, 현 중구 소공동) 106번지에 4년제의 나전실업소(螺鈿實業所)라는 나전기술 교육기관을 설립한다. 이곳의 과정을 보면 나전칠기를 배우는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3년여였다. 3년 정도는 해야 겨우 도안을 이해하고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전실업소는 훌륭한 나전칠기 장인을 양성하고 제품 제작에 힘썼으나 쌓여가는 재정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세계에 드날렸던 전성규의 나전칠기에 대한 꿈은 이렇게 사라지는 아픔을 맞는 듯하였다. 한동안 상심하고 있던 전성규는 삼청동 작업실로 돌아와 다시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후 그는 1934년과 1937년 조선미술전람회에 나전칠기 작품을 출품한다. 1934년에는 '나전 벼루집(螺鈿硯筥)'을 출품하였으며, 1937년에는'산수 책상(山水机)'을 출품한다. 그가 작품을 출품한 것은 상을 받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그는 조선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을 할 만한 자격이 있었지만, 일본인들의 폐쇄적 운영 때문에 심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1937년 옷 칠로 유명한 평안북도 태천군에 '태천칠공예소(泰川漆工藝所)'가 설립되자 전성규는 교장으로 부임한다. 그는 이곳에서 나전칠기의 후진 양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더욱이 개인적으로 창설했던 '나전실업소'의 실패를 거울삼아 훌륭한 칠공예소를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일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후진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고 애쓰던 전성규는 1940년도 칠공예소의 발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만다.
아쉽게 세상을 떠난 전성규는 고려, 조선을 거치며 전통적인 방식을 답습하던 나전칠기를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도구를 받아들여 더 한층 발전시킨 인물이었다. 그는 시계 공장에서 사용하는 서구식 실톱을 사용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자개를 여러 장 포개어 여러 개의 동일한 무늬를 단번에 썰어 내거나, 무늬 복사용지를 사용하는 등 작업능률을 향상시킴으로써 전통기법을 개선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현재 전하는 전성규의 작품에 대하여

▲전성규 ‘산수문 책상’ 1920년대
황정수
전성규는 나전칠기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제작한 최초의 근대 공예가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2012년 이전까지는 공식적으로 그의 작품으로 전하는 실물 작품이 없었다. 그동안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되었던 그의 작품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 하였을 당시 도록에 실었던 두 점의 작품을 확인하는 길 밖에 없었다.
다행히 근래에 일부 연구자들의 노력에 의해 여러 점이 발견되어 현재 세상에 알려진 것이 대여섯 점 정도가 있다. 커다란 대궐반 형태의 것이 두 개 있고, 화병을 올려놓는 화대가 두어 점 되며, 합 종류가 또 두어 점 있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연구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전성규에 대해 새로운 연구가 진척되고 있는 만큼 더 많은 작품이 발굴될 가능성이 많다.
현재 전하는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산수문 책상(山水机)'이다. 개인 소장의 이 작품의 상판에는 전통적인 남종화풍의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 전성규는 나전칠기의 문양을 연구하기 위해 수묵화를 배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에서 입선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 작품에 사용된 그림의 솜씨는 어느 화가의 그림 못지않게 뛰어나다.
또한 2018년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한제국의 미술'전에 출품된 '난초문 화대' 또한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화병을 올려놓는 화대로 제작된 것인데, 상판에 김정희 등 조선의 문인화가들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뛰어난 난초 그림이 새겨져 있다. 게다가 일본의 '조선나전사'에 있을 때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어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이밖에 도판으로 전하는 작품들도 모두 매우 뛰어난 솜씨를 보여, 전성규의 솜씨가 다른 이들이 따를 수 없을 정도의 매우 수준 높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근대화시기에 답보 상태에 있던 전통 나전칠기를 새로운 기술로 더 한층 발전시킨 전성규의 작품이 더 많이 발굴되어 그의 작품 세계가 온전히 복원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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