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0 07:06최종 업데이트 24.05.1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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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위기 보고서 2024' 가운데 2년과 10년간 인류가 겪을 10대 위기 ⓒ 세계경제포럼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은 전문가 1500명이 참여한 '글로벌 위기 보고서 2024'를 통해 향후 10년간 인류가 겪을 10대 위기를 발표했다. 그중 1~3위가 기후행동 실패로 발생하는 위기다. 기후행동 실패가 만든 극단적 날씨와 지구 시스템의 중대한 변화가 경제, 산업, 정치, 일상생활, 생태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후행동은 어떨까? 한 국가의 기후행동을 살피려면 지구기온 1.5℃ 상승을 막기 위해 각 나라들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점검해야 한다. 한국 정부도 2021년 유엔에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40%'를 약속했다.

2022년 등장한 윤석열 정부는 감축목표 40%를 무리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미 국제사회에 약속한 40% 목표를 바꿀 수 없었던 윤석열 정부는 2023년 4월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 계획안'을 통해 연도별 감축목표 조정을 하면서 당면한 무리함을 해결했다. 어떻게 해결했을까?
 

'온실가스 목표 감축률', 윤석열 정부-차기 정부 대조표 ⓒ 김성환 의원실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40%를 달성하려면 2023년 6억 3390만 톤에서 2030년 4억 3660만 톤으로 8년간 약 2억 톤을 줄여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자신의 임기 5년 동안 목표치인 2억 톤 중 25%에 해당하는 약 5000만 톤만을 줄이겠다고 했다.

나머지 75%에 해당하는 1억 5000만 톤은 어떻게 될까? 차기 정부가 3년 동안 해결하라고 넘긴 것이다. 윤 정부는 작은 부담만 지고 차기 정부는 실현 불가능한 부담을 떠안는 결정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기후정책과 기후행동의 실패를 예고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기후정책 실종 연쇄반응
     
윤 정부의 기후정책 실종은 그에 따른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그중 하나가 태양광 등 청정에너지 산업의 해외 이전이다. 윤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차기 정부로 넘긴 그해 12월 17일에 태양광 모듈 기업인 '한화큐셀' 음성 공장이 문을 닫았다. 2015년에 문을 연 이 공장은 연간 3.5기가와트(GW)의 생산 능력과 1800명의 직원이 근무했다.

이 공장이 문을 닫은 이유는 국내 태양광 수요가 갑자기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2024년 2월 한국수출입은행이 발간한 '2023년 하반기 태양광 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설치규모 4.6GW 태양광이 2023년에는 2.7GW 내외로 확 줄어들었다.

한화큐셀은 한국 대신 미국 조지아주 '카터스빌'과 '달톤'에 25억 달러(약 3조 4000억 원) 투자를 진행했다. 연간 8.4GW 생산능력을 갖추고, 2027년이 되면 미국 태양광 수요의 30%를 공급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고용 규모도 2500명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자리와 청정에너지를 만들어야 할 제조업들이 해외로 이동하는,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2023년 4월 6일(현지시간)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미국 조지아주 달튼의 한화솔루션 큐셀부문(한화큐셀) 공장에서 한화가 생산한 태양광 모듈을 배경으로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불행하게도 기후행동 실패는 전통적인 한국 제조업 기업들의 해외 이전도 촉진할 것이다. 철강산업이 대표적이다. 한국 산업의 근간을 일구어 왔던 포스코(포항제철, 광양제철)도 한국을 떠날 수 있다. 5년 뒤 포스코가 여전히 우리나라에 있을까? 포스코가 떠나면 포항과 광양 시민들은 어떻게 될까?

지난 4월 18일 포항에서는 '포항환경연대'라는 시민단체 출범식이 있었다. 이 단체는 "수소환원제철과 탄소중립 달성이 포스코가 포항에 존치할지 떠날지를 결정하게 하는 문제이고, 이는 시민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라고 했다. 아울러 포스코의 탄소중립은 포항 시민 전체가 나서서 해결할 숙제라고 호소했다. 이는 포스코의 해외 이전 가능성을 포항 시민들이 드러낸 사건이다. 문제는 국가의 기후정책이 없는데, 시민들이 나선다고 해결될까 하는 것이다.

포스코의 삼중고
   
기후위기와 온실가스 문제가 포스코에 중대한 걸림돌이 되는 이유는 뭘까? 다음 세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포항제철의 기후위기 취약성이다. 2022년 9월 6일 우리나라 동남부에 불어온 슈퍼태풍급 '힌남노'로 하천이 넘쳐 포항제철은 1968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물에 잠겼다. 2023년 1월 19일까지 135일간 조업중단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2년 11월 중간보고에서 추산한 매출손실은 포항제철 3조 400억 원, 포항제철 납품기업 2500억 원이었다. 기후피해로 하루에 550억 원씩 손실을 본 셈이다.
 

2022년 9월 6일 경북 포항의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태풍 한남노의 여파로 추정되는 화재로 인해 공장 일부가 침수됐다. ⓒ 금속노조

 
이 사건은 과연 우연한 재해였을까? 앞으로 조심하면 안전할까? 기후위기와 해수면 상승으로 포항제철은 앞으로 수시로 위기에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가 처한 기후위기는 곧 투자위기로 연결된다.

우리나라의 '금융위원회'와 유사한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는 올 3월 6일 새 규칙을 만들었는데, 미국에 상장된 기업들은 '기후영향공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6년부터 기업들은 심각한 날씨로 인한 영향과 비용을 공개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취약한 기업들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안기기 때문이다. 이는 SEC만이 아니라 전 세계 다수의 투자기관들이 기후영향 공시를 원하는 이유다. 포스코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도 상장돼있기 때문에 기후영향을 공시해야 한다. 그런데 기후위기로 인해 위험에 처한 기업에 누가 투자를 할까?


둘째, 포스코의 고탄소 철강은 무역위기로 이어진다. 포스코는 온실가스 과다 배출량으로 악명이 높다. 포스코는 2021년 7849만 톤을 배출해 국가온실가스 배출량 6억 8000만 톤 중 11.6%를 차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철강산업의 온실가스 직접 배출량을 2019년 기준으로 2030년 30% 감축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포스코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2017~2019년 평균의 10%로, 국제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

이러한 포스코의 고탄소 철강은 무역장벽 대상이다. 유럽연합은 철강, 알루미늄 등 6대 품목에 대해 2026년 1월 1일부터 탄소국경세를 적용할 것이다. 2022년 한국무역협회의 무역통계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가 유럽연합에 수출하는 철강 수출액은 48억 유로(약 7조 원)로, 한국이 수출하는 탄소국경세 6대 품목 중 88.9%를 차지한다.

탄소국경세를 1톤당 100달러로 적용할 경우, 선철(銑鐵) 기준으로 우리나라 철강기업들은 2030년에 수출대금 30% 이상을 국경세로 내야 한다. 2024년 포스코 1분기 영업이익이 3.1%라는 점에서 보면, 영업이익 10배의 국경세를 내고 수출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철강 관련 기업이 2525개라는 점에서 그 영향은 일파만파로 번질 것이다. 탄소국경세 쓰나미가 고탄소 철강기업들을 덮치고 있다.

셋째, 집단 소송 가능성이다. 힌남노로 물난리를 겪은 포항제철은 2023년 외곽 1.9km에 2m의 차수벽을 쌓았다. 포항시와 전문가들은 다시 힌남노처럼 비가 많이 오면 포항제철소 차수벽에 막힌 물이 건너편 저지대 산업단지와 마을을 덮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포항제철이 만든 차수벽으로 인근지역에 피해가 발생하면 집단 소송 대상이 된다.

두고만 볼 것인가
 

서울 강남구 서울 포스코센터 ⓒ 이희훈


포스코는 현재 기후위기와 온실가스, 집단 소송이라는 삼중고에 걸려 있다. 포스코가 위험자산이 된 것이다. 포스코에 대한 이런 평가는 포스코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의 외국인 지분율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3년 3월 49.79%였던 외국인 지분율이 2024년 5월 5일 27.75%로 22%포인트나 감소했다.

2023년 9월 24일 <블룸버그>는 당시 포스코 탄소중립 담당인 김희 상무의 인터뷰를 실었다. 김 상무는 "포스코가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370만 톤의 그린수소가 필요한데, 한국에서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린수소를 제공할 나라로 이전하는 것을 최후의 수단으로 숙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정부의 기후행동 실패가 계속된다면 포스코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5년 뒤 포스코는 더 이상 한국 기업이 아닐 수 있다. 포스코가 떠난 뒤 남은 노동자와 가족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포항과 광양의 지역 공동체는 어떻게 될까?

2023년 11월 16일 백악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바이든 정부 이후 한국이 미국에 직접 투자한 규모가 555억 달러(약 75조 원)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부(富)의 이동이 이렇게 빠르게 진행된 것은 유사 이래 처음이다. 미국으로 이동한 전기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청정에너지는 한국이 기후위기 해결에 꼭 필요한 첨단 산업이고 기술이다.

한국 정부는 기후위기를 맞이해 제조업들이 해외로 이동하는 것을 두고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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