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17 15:40최종 업데이트 24.04.1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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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부터 주 2회 경기도 파주의 어느 물류센터에서 일한다. 이전 연재에서 썼듯이 택배사에서 필요할 때만 일하는 것으로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사회 운동하며 알게 된 지인이 자기 회사 물류센터 일을 해 보겠냐는 제안을 해서,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수락했다.

주 2회 출근이지만 정식 근로계약을 맺고 4대 보험도 되고 시급도 넉넉히 계산되어 만족스러웠다. 아침 9시에 출근하여 오후 5시 퇴근할 때까지 오전에는 2종류의 종이상자를 꾸준히 만들고, 오후에는 그날 주문 물량을 넣고 포장하여 택배로 실어 보내고, 물건을 정리하는 일을 매일 반복한다. 점심시간을 빼곤 따로 쉬는 시간이 없이 계속 서서 하는 일이라 쉬운 일도 아니지만, 예전 택배하던 때와 비교해 보면 수월하게 느껴진다.

출퇴근의 고단함
     

일터 앞까지 운행하는 마을버스 ⓒ 구교형

 
사실 내게 더 힘든 것은 노동이 아니라 출퇴근이다. 경기도 광명 집에서 오전 6시 반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홍대입구역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파주 헤이리로 가서, 거기서 다시 마을버스로 10분쯤 더 들어가야 작업장에 도달할 수 있다. 거의 민통선 근처다.

첫날 검색해 보니 집에서 직장까지 대중교통으로 2시간 반 안팎이 걸리니 하루 왕복 5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어려서부터 대중교통이 익숙했기 때문에 내게는 큰 부담은 아니었다. 어차피 오가는 동안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잘 수도 있으니 무엇이 문제랴?


그러나 첫 주간 이틀을 나가보고, 현실이 생각이나 지도 검색과는 다르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됐다. 출퇴근 시간에 광역버스를 타 본 일이 없으니 좌석이 없으면 버스가 정차하지 않고 그냥 가버린다는 사실을 몰랐다. 문제는 시내버스와 달리 한 대를 놓치면 다시 15분, 20분, 30분을 기다려야 하고 그렇게 몇 대만 보내고 나면 1시간이 쉽게 흘러버린다는 것이다.

일부러 집에서 일찍 출발했지만 아직 서울도 벗어나지 못한 채 출근 시간이 임박했다. 입이 마르고 발을 동동 굴렀지만, 보통 수도권처럼 버스든 지하철이든 하나가 막히면 다른 경로를 이용하는 방법도 없었다. 오전 9시가 거의 되어서 겨우 광역버스의 좌석이 생겨 올라타고, 50분 후 헤이리에 도착했지만, 이번에는 배차시간조차 검색되지 않는 마을버스를 또 타야 한다.

첫날은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마을버스로 직장에 도착하니 무려 4시간이 걸렸고, 둘째 날은 헤이리에서 택시를 탔다. 모두에게 걱정을 끼치고서 며칠 만에야 드디어 해법을 발견했다. 검색에서 나오는 최단코스는 합정역에서 광역버스를 타야 하지만, 좌석이 없으면 무정차 통과한다는 현실을 감안하니 버스가 처음 출발하는 회차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해법이었다.

그래서 홍대입구역 회차 지점에 거슬러 올라가니 예상대로 바로 버스를 탈 수 있었고, 헤이리에 도착한 시간에서 20여 분 기다리면 항상 비슷한 시간에 마을버스가 와서 대개 8시 40~50분이면 직장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해결! 그래서 이제는 2시간 반을 마음 편하게 다닌다.

여유가 생기니 안 보이던 것도 보인다. 먹고사니즘은 힘겹다. 말로만 듣던 광역 출퇴근 인구가 제법 많았다. 내가 움직이는 출퇴근 동선으로만 봐도 크게 세 부류의 직장인이 보인다. 버스나 지하철로 서울과 수도권 도시를 1시간 안팎에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지하철이 닿지 않는 주로 경기 북부 지역에 광역버스로 오가는 직장인도 있다. 내가 오가는 파주권 동선에는 출판단지와 거기서 더 들어가 헤이리에서 일하는 주로 20~40대 젊은이들이 매일 버스를 가득 채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나처럼 거기서도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시골이라 할 만한 곳의 물류센터로 더 들어가는 사람도 몇몇 있다. 나처럼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급여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당연히 외지까지 들어와 일할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 이름에서 드러나는 '욕망'
 

지난 14일 남산에서 본 서울 시내 모습. 아파트로 빼곡하다. ⓒ 연합뉴스


그러나 사연이나 사정, 하는 일은 조금씩 달라도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생활과 형편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길고 힘겨운 출퇴근 시간,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업무, 짧은 휴식과 다시 시작되는 일의 반복, 크게 개선되지 않는 보수와 불안한 일자리.

그러다 보니 평범한 사람들도 답 없는 형편과 일상을 단번에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자기 나름의 대박을 꿈꾸는 것이 더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평범한 서민도 꾸게 되는 대박의 꿈은 로또에서 어느새 주식까지 넓어졌다.

특히 한국경제 성장기로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꺼지지 않는 대박의 꿈은 역시 부동산 대박, 그중에서도 아파트에 대한 욕망일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의 꿈은 기성세대가 아닌 2030 세대에게는 이미 이번 생에서는 도무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희망 고문일 뿐이다.

사실 한국의 아파트 붐은 경제와 인구 성장을 전제한 20세기 '중산층 시대'를 대변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저성장과 인구축소가 일반화된 시대이기에, 고밀도 아파트가 앞으로도 대규모로 지어져야 할 주거 형태인지에 대해선 매우 회의적이다.

서울조차 폐교가 생겨나고 곳곳에 빈집이 늘어나고 있지만, 눈앞의 성장률에 급급한 정부도, 정치권도 아랑곳없이 언제고 터질 폭탄 돌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는 모두 다음 시대를 살아야 할 젊은 세대의 미래를 담보 잡아 지금의 파티를 더 즐기려는 기성세대의 욕심이다.

아파트는 80~90년대 '나도 이제 중산층'이라는 자부심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나는 너와는 품격이 다른 곳에 산다'는 차별성으로 경쟁하고 있다. 그것은 최근 10~20년 사이에 지은 아파트 이름들에서 잘 드러난다. 일단 하나같이 외국어다. 영어는 물론 불어, 스페인어, 심지어 어디서 찾아냈는지 라틴어까지 가지각색이다.

게다가 길기는 왜 그리 긴가? 최근에 지은 것일수록 10자는 기본이고 전국적으로 20자가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검색해 보니 전국에서 가장 긴 아파트 이름은 '****공동혁신도시********로얄카운티1차'로 모두 25자다. 또 '***마을6단지*****역******센트럴파크'도 역시 25자다.

다른 곳과 차별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이름을 몇 개씩 겹쳐서 붙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왜 그럴까? 당연히 이름이 더 고급스러워 보여야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실제 나는 이렇게 긴 아파트 이름 때문에 적잖은 곤욕을 치렀다. 대리운전하던 당시 서울 근교 신도시로 운행할 때마다 고객이 말하는 아파트 이름이 하도 길고 복잡해서 늘 여러 번 되물어야 했다. 사람들은 시골에서 부모님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사실은 조금이라도 더 있어 보이고 싶은 자본에 대한 욕망과 허세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죽하면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10여 개 공공·민간 건설사와 함께 '공동주택 명칭 개선 토론회'를 열어 아파트작명 가이드라인을 수립했다고 한다. 명칭 개선 동참 선언문에는 '어려운 외국어 사용을 자제하고 한글 이름을 발굴해 사용하며, 지역의 유래와 옛 지명을 활용하고, 법정동·행정동을 준수하며, 팻네임은 복잡하고 의미도 없으므로 자제하고, 긴 글자 수는 불편하니 최대 10자 내외를 준수하겠다'는 것을 담고 있다. 뒤늦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박이 꼭 행복은 아니다
 

새해 첫 날인 1월 1일 서울 노원구 한 복권판매점 앞에서 한 시민이 구매한 로또를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쓸데없는 생각 같지만, 서민에게 정말 천문학적인 대박이 터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터지기 전에는 희망만 부풀지만 정말 대박이 터지면 분명 예전처럼은 살기 힘들 것이다. 이혼을 하든지, 가까운 친족부터 평소 친하지도 않던 회사 동료나 이웃까지 '좀 안 도와주나?' 쫓아다니는 것 같아 모든 인연을 끊고 해외로 도피하는 경우도 생긴단다.

아무튼 이전처럼 살아가긴 힘들다. 그래도 대박만 터진다면 좋겠지만, 대박과 행복은 꼭 같은 의미는 아닐 수도 있다. 경제 이야기를 마감하며, 다시 한번 경제의 사전적 의미를 기억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본다. 

경제는 '(...)재화와 용역(서비스)을 생산·분배·소비하는 활동과(...)사회관계의 총체'다. 우리에게 경제는 보통 내가 얼마 벌고 얼마를 손해 본 숫자놀음일 뿐이지만, 경제의 진짜 정체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 곧 사회적 관계다. 그러므로 경제에서 사람의 도리와 관계가 사라지면 대박이 터져도 행복에서는 더 멀어질 수도 있다. 경제는 그저 숫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경제가 더 인간답고 건강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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