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05 13:27최종 업데이트 23.12.0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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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가 났던 날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함께 울었고, 분노했고, 행동했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날 뒤로 많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10년의 시간 동안 여전히 기억의 장소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도 긴 시간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기억 속의 그 장소들을 가보고, 그곳을 지켜온 이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울러 피해자들의 견뎌온 이야기들도 풀어냅니다. 이 이야기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시민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길 바랍니다.[기자말]
내년이면 10주기가 되는 4·16세월호참사는 우리 마음 어디쯤 자리해 기억되고 있을까. 2024년 4월이 오기 전 참사의 진실이 규명되고 책임자처벌이 이루어질까? 재발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법으로 마련될까? 진실규명, 책임자처벌, 재발방지에 대한 사회적 약속은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자가 일상에 복귀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다.

9년이 지난 지금,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던 우리의 약속이 희미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다.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일상에서 기억과 추모, 연대를 통해 약속을 지켜가는 사람이 있다. 지난 10월 11일 경기도 안산에서 '기억과 약속'을 실천하는 고명선씨를 만났다.

기억과 약속의 길
 

단원고 희생학생들이 많이 살았던 고잔동 골목길 ⓒ 변정윤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올 거라고, 그때만 해도 구조할 거라고 믿었어요. 아이들이 어딘가에 모여서 잘 있다가 기적처럼 올 거라고... 촛불을 들고 간절하게 마음을 모으면 아이들이 모두 돌아올 줄 알았어요. 단원고에 모인 촛불이 화랑유원지로 모이고 그다음에 안산문화광장으로 이어졌어요."

전 국민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비극은 현실이 됐다. 고명선씨는 당장 팽목항으로 달려가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을 수 없어 깜깜한 절망을 느꼈다. 그것이 참사에 대한 첫 기억이었다. 그는 "대단히 큰 슬픔"이라고 표현했다.


"'이제 그만해야지. 저렇게 계속 떼를 쓰면 어떡해. 도대체 몇 년을 우려먹어'라는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올봄에 그 소리 들으면서 너무 속상해서 울고 싶었어요. 예전에 피케팅 하러 청와대나 광화문에 갈 때 저희 앞에서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입에 담지 못할 말을하는 사람들을 유가족들이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걸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가족들 옆에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고명선씨는 2017년 4.16기억저장소에서 진행하는 4.16민주시민교육 1기 수료생이다. 강의를 통해 기록의 중요성, 세월호 참사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신대광 선생님이 들려주는 아이들의 이야기(중학교 제자들이 단원고로 입학했는데 그중에 많은 아이들이 희생됐다)를 들었다.

마지막 강의는 '기억과 약속의 길'이었다. 교육생들과 유가족들은 화랑유원지에 있는 합동분향소에 모여서 단원고를 거쳐 4.16기억전시관, 4.16기억교실까지 '기억과 약속의 길'을 걸었다. 분향소가 사라진 후에는 4.16기억교실에서 시작해 단원고, 4.16기억전시관, 생명안전공원 부지인 화랑유원지를 지나서 다시 4.16기억교실까지 걸었다.

일 년에 두 번 진행되던 '기억과 약속의 길'은 지금도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열린다.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과 희생 학생의 부모님이 함께 걷는다. 한 명이 오든 두 명이 오든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노란 우산을 쓰고 '기억과 약속의 길'을 걸으며 희생된 아이들을 만난다.

"같이 들었던 수료생들이 '아, 이거 너무 의미 있다. 우리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을까? 조금 욕심을 내서 한 달에 한 번씩 그냥 걷자'고 했어요. 희생된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알아가는 시간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희생 아이들의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곁을 지키는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용기가 났던 것 같아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4.16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어야겠다."
 

고명선씨는 안산지역단체 함께크는여성울림 소모임 '별을 품은 사람들' 구성원들과 <단원고약전>을 함께 읽었다. <단원고 약전>은 세월호 희생 학생들(250명 중 231명)과 교사들(11명) , 아르바이트 청년들(3명)의 간략한 전기를 엮은 책이다. 한 권을 4~5명이 나눠서 읽은 후 희생된 아이 한 명 한 명을 소개했다. 아이가 좋아했던 음악이나 책이 있다면 찾아보고 들려주기도 했다. 그날은 항상 손수건과 휴지를 가득 가져와서 같이 울면서 읽었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도 함께 읽었다. 지금은 재난 참사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있다.

추모, 기억, 약속의 공간
 

소생길 담벼락에 걸린 나무액자 ⓒ 변정윤

 

단원고 내 추모 조형물 '노란 고래의 꿈' ⓒ 변정윤

 
지난 2015년 4월, 4.16기억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416기억전시관은 동네 상가 3층에 있고 그 건물 2층에는 아이들이 자주 갔던 PC방이 있다. 지금은 간판만 덩그러니 걸려있다. 416기억전시관 로비에는 원통으로 만든 지관함이 한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옆 벽에는 김관홍 잠수사와 아직 돌아오지 못한 희생 학생 두 명의 얼굴이 목판에 그림으로 새겨져 있다.

로비를 지나 4.16기억전시관으로 들어가면 천장에 304개의 기억등(燈)이 별처럼 반짝인다. 도예가들의 재능기부로 탄생한 기억등 안에는 희생자들의 사진이나 팝아트, 그리고 명찰, 도장, 고무줄, 돈, 각종 악세서리 등 생전에 지니고 다녔던 소지품이 들어있다. 잊지 않고 해마다 오시는 선생님도 있고, 4월이면 학생회장단과 직원들과 함께 4.16기억전시관을 찾는 교육감도 있다.

4.16기억전시관은 2014년부터 현재까지 추모주기에 맞춰 참사 프로젝트 전시를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기획전시도 병행한다. '하늘로 간 수학여행' 동영상 제작, 세월호 참사 거리사진전(서울광장 잊지 말아요 4.16)개최, 동영상 제작 배포 등이 진행됐다.

'기억시 낭송제'는 2016년 9월부터 2017년 4월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진행됐다. 작가, 시인, 부모, 친구들, 형제자매, 활동가들이 금요일마다 돌아가면서 낭송을 이어갔다. 기억시(詩)는 <단원고약전>을 토대로 '교육문예창작회' 소속 교사들이 단원고 희생 학생 한 명 한 명을 기리는 내용을 시(詩)로 담은 것이다.

이후 국회를 시작으로 경기, 충남, 충북, 세종, 강원, 광주, 부산교육청을 돌며 '기억시 전국 순회 전시회'를 열었다. 기억시(詩)에는 희생된 아이들이 생전에 바라고 희망했던 꿈이 들어있다. 현재 416기억전시관에서는 앵콜 '기억시전시회'가 열리는데, 올해 12월까지 진행된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기억공간이 존재한다. 단원고 운동장을 지나 작은 언덕 위에 세월호 참사 추모 조형물인 '노란 고래의 꿈'이다. 단원고 희생자 261인을 등에 지고 수면 위로 승천하는 노란 고래를 형상화했다. 햇볕을 양껏 받아 겨울을 제외하고 항상 꽃이 피는 언덕.

'노란 고래의 꿈' 앞에 희생 학생들과 선생님의 이름이 적힌 명단석이 있다. 명단석 앞에서 선생님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아이들은 고래 등에 앉아 손을 흔들지 않았을까. 못다 한 수학여행의 아쉬움도 달래지 않았을까 상상해보았다. 교실 존치가 물거품이 된 후 학교에서 아이들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노란 고래의 꿈' 조형물이 유일하다.

흔적과 기억
 

고명선씨 ⓒ 4.16재단

 
우리는 언제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잘 보내드릴 수 있을까. 잘 보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무엇을 하면 잘 보내드릴 수 있는 건지는 우리가 찾아야 할 해답이다. 잘 보내드리기 위해 추모공간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역할은 무엇일까.

"기억교실에 오신 분들이 남기고 간 글을 보면, '미안하다. 미안하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이런 글이 많아요. 그런 분들에게 저는 지금 왔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요. 잊지 않고 있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거라고.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하지 마시고 또 오시라고 해요."

강변북로 옆에 성수대교 참사 희생자 위령비가 있고, 시민의 숲에는 삼풍백화점 참사 희생자 추모비가 있다. 두 곳 모두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추모비는 사람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하며, 희생자의 삶과 꿈을 담아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다. 지난 참사는 국민 모두에게 잊혔다. 참사가 되풀이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요즘 고명선씨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아이들 유류품 목록을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든다. '다시 컴퓨터 게임하지 않을게요'라고 휘갈겨 쓴 메모지가 아이 흔적의 전부인 경우도 있다. 아이의 유일한 흔적을 부모님은 소중히 간직하고 계신다. 물품을 분류 기록하면서 아이들이 꿈꾸었던 미래를 보게 되고 무엇을 소중하게 여겼는지도 읽게 된다. 생명안전공원에 보관될 물건과 전시될 물건들이다. 고명선씨는 희생자와 피해자, 생존자들과 연대하면서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많은 이들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었다.

"근데 기억해야 될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아이들, 가족분들, 형제자매들... 잠수사분들과 어민들이 하신 역할도 너무 컸어요.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했는데 국가는 너네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었잖아요. 몸이 다 망가지시고 정말 다른 걸 하실 수 없는 상황까지 갔는데... 그리고 많은 생존자분들과 친구들이 힘들게 또 계시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2023년 4월 단원고 고래조형물 앞에서 설명하는 고명선씨 ⓒ 4.16재단

 
사회적 참사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비극이다. 우리는 공동의 비극을 개인이 짊어지는 부끄러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도 공감하고 연대하며 함께 한 이들이 만들어 낸 추모의 공간들.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반영한다. 4.16기억저장소와 4.16기억교실, 4.16기억전시관, 단원고 추모조형물(노란 고래의 꿈), 건축 예정인 생명안전공원은 시민들에게 열려있는 공간으로 서로 연결되고 이야기가 이어지는 거점이 될 것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약속에는 나와 사랑하는 내 가족의 안전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참사를 공간화하고 형상화하는 것은 희생된 아이들의 비극과 고통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아픔에 공감함으로써 공동체의 안전한 미래를 약속하는 의미를 가진다.

"가장 큰 거는 연대의 힘인 것 같아요. 나는 울고만 있었지만 글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표현한 이들, 그리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팽목에서 다양한 종교인들이 마음을 모았고, 교사들, 주민들 나름대로 문제를 같이 해결하고자 했었던 모습들을 참사를 통해서 보게 되었던 것 같고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서로 도우려고 하고, 기꺼이 마음을 내주려고 하고, 또 달려가려고 하고, 달려가지 못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함께하려고 하고, 이런 것들이 계속 이어져 나가는 것 같아요."

피해자들을 버티게 한 것은 희망이었다. 그 희망이 한 시간을, 하루를, 일주일을, 그리고 한 달, 일 년, 9년을 버티게 했다. 힘들 때는 눈앞에 닥친 역경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 공감과 연대의 힘은 희망의 가능성을 확장시킨다. 피해자들은 암울하고 힘든 시간에도 기억공간을 만들면서 위대한 승리의 돌파구를 마련해 나갔다. 연대하고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 만들어 낸 결과다.

희생자, 생존자, 피해자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와 같다. 생명안전사회 구축은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는 사회 상위개념으로 존재해야 한다. 고명선씨의 간절한 바람대로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바다에 묻힌 진실을 건져 올리고 안전한 사회로 가는 기틀을 마련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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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글쓴이 변정윤 작가는 <밀양을 살다>, <기록되지 않은 노동>, <얼굴들>, <숨을 참다>의 공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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