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1 07:08최종 업데이트 23.11.0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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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18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나기 위해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방문했다. ⓒ AFP=연합뉴스

 
"우리는 역사적 변곡점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내리는 결정들이 앞으로 수십 년간의 미래를 결정짓는 그런 순간입니다."

지난 10월 20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한 후 행한 귀국 연설의 첫 대목이다. 그는 집권 후 이 "변곡점"이란 표현을 자주 써왔다. 일종의 수사적 표현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스라엘-하마스 간 현 분쟁 상황이 악화될 경우, 본인의 재선과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대규모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고 세계 경제도 악영향을 받고 있다. 중동 전쟁으로 비화하면 더 장기적인 고인플레이션, 고금리, 저성장의 위기에 빠져들 것이라는 사실도 명약관화하다. 이런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정부나 주변 아랍국들의 상호 자제가 필요하며, 평화를 중재해 낼 나라나 세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 상징적 장면 중 하나가 이집트, 요르단 등 아랍국들이 바이든과의 만남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격이 구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이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과잉 무력 사용을 눈감아주는 등 불공정하게 편향적 자세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는 반 유대계와 반이슬람 세력 간의 반목과 대립이 격화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자행되고 있다. 특히 공화당 중심 보수층은 하마스 등 테러 집단에 대해 바이든 정부가 유약하게 보인 것이 문제라며 거세게 비판한다. 그러면서 2년 전 여름,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공항을 허겁지겁 탈출하던 미군 철수 장면도 소환하며 군사적 강경 대응을 촉구한다.

전면적인 군사개입은 정치적 자살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절대다수의 미국 국민들이 다시 중동의 늪에 빠져들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이라크 침공,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테러와의 전쟁'에 8조 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이런 천문학적인 군비 지출에도 해당 지역은 오히려 더 불안정해졌고 이슬람 지하드 세력의 규모는 9.11 때보다 최소 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반미 정서가 누그러진 것도 아니다.

게다가 미 정부부채도 문제다. 달러가 아무리 막강한 기축통화라 하더라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연방부채를 계속 떠받칠 수는 없다. 이미 이번 회계연도 9월 말까지, 미 재무부가 채권에 대한 이자로 지급한 금액(8793억 달러)이 국방비(7759억 달러)보다 많다. 향후 이자 부담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미 의회가 하원의장 재선출, 연방부채 상한선 재조정 등 예산 문제로 몸살을 앓는 이유다. 이런 재정 상황에서 전면적인 군사개입은 정치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물론 미국 및 세계 경제에도 악재다. 미 국채시장이 블랙홀처럼 더 많은 자금을 빨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민들은 이제 남의 나라 일에 개입하는 걸 반대하는 추세다. 세계 질서 유지 군사부담을 줄여 국내 재건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경제 고통과 피로감도 큰 원인이지만 점점 더 강화되는 '미국 우선주의'의 결과다. 트럼프가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단 24시간 이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하고, 그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유다.

군사 개입만으로는 현 상황을 수습할 수 없으니,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양국 해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만시지탄의 느낌이다. 미국은 줄곧 팔레스타인을 정식 국가로 인정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38개 유엔 회원국들이 팔레스타인을 독립 국가로 정식 인정하며 '양국 해법'을 지지해 왔는데도 말이다. 미 정치권이 금융권, 언론, 방송 등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이스라엘 유대계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바뀐 건 없다. 이 '양국 해법'은 의회 문턱도 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뭘까? 그나마 시도해 볼 수 있는 대안은 중국, 나아가 시리아 등에 영향력을 갖는 러시아와 서로 협력해 휴전과 평화를 중재해 내는 것이다. 물론 현재로선 비현실적인 얘기다. 이들이 서로를 체제 도전 및 현상 변경 세력으로 규정하며 갈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동 지역, 나아가 세계 질서의 중장기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유럽연합 포함 이 3국의 전략적 협력과 조율이 필요하다.

사실 미중 전략경쟁은 중동에서도 격렬하게 진행돼 왔다. 중국은 대부분의 중동 국가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확대해 왔는데, 특히 2021년 3월엔 이란과 25년간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었다. 미국과 이란의 핵문제 재협상이 교착된 상황에서다. 지난 3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중재해 냈다. 또한 브릭스(BRICS) 회원국을 확대하면서 사우디와 이란, UAE 및 이집트를 새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안정적 에너지 수급체계 확보를 넘어 미국 주도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세력 규합이라는 중동판 '일대일로'의 결과다.

좋든 싫든, 미중 간 전략적 협력과 조율은 양국의 이익을 넘어 세계 질서 안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번 분쟁 초기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란의 자제를 촉구한 장면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쟁은 하되, 세계 질서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서로 전략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11월에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이 주목되는 이유다.

일방적으로 끝나지 않을 미중 패권경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부대행사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들 느끼듯, 이런 일련의 사태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전쟁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스라엘이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에도 불구하고 하마스의 공격을 완벽히 차단할 수 없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군사력 못지않게 주변국과의 신뢰 구축에 노력해야 한다. 개인이나 국가나 신뢰를 잃으면 모두를 잃는다.

또한 이번 분쟁은 미중 패권경쟁이 단기간에 어느 일방의 압도적 승리로 귀결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미국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점증하는 반중 정서에 편승해 이념 및 진영으로 나눠 갈라치기 외교를 하는 것은 그래서 중장기 국익에 해롭다. 한미동맹을 기본 축으로 국익에 최우선을 두되, 전략적 자율성 확보에 늘 주안점을 두며 상생의 외교를 펼쳐야 한다.

향후 미국의 중동 문제 재개입은 불가피해 보인다. 중동에서 손을 떼고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는 의미다. 당연히 한국에도 비용 및 역할 분담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그 증가하는 부담에 상응하는 권리와 발언권을 확보하는 외교가 필요하다.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와 의견을 외교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기를 바란다. 다양성은 외교의 짐이 아니라 민주 정부의 가장 강력한 전략자산이다.    

강명구 / 뉴욕시립대 정치경제학 교수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강명구 교수는 뉴욕시립대에서 국제정치경제 및 미국과 아시아 국제관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경제안보와 금융위기에 대한 정부의 정책 대응 문제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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