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5 11:59최종 업데이트 23.07.2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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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 해군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 내부를 시찰하고 있다. 2023.7.19. ⓒ 미국 해군 제공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 정상회담 자리에서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 정신으로 연대하겠다"는 의견을 표명했는데, 참 의아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연대하겠다는 건 전쟁 국면에서는 참전의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또한 아무리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고, 관용적인 표현이라지만 국민 생명을 두고 '사즉생'의 정신을 요구하는 건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 밖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침략을 규탄하고 평화 안착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지만,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연대의 약속은 과유불급의 처사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상대로 죽기를 각오해야 하는지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도 없었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했을 때는 언론들이 국민적 합의가 없었다며 일제히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연대하자는 윤석열 대통령, 같은 잣대라면 대통령의 독단이라는 비판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사즉생 연대? 문제 제기하지 않은 언론
 

윤석열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대통령 관저인 마린스키궁에서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 공동 언론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대다수의 언론은 묻지 않는다. 기껏 '물난리로 국민들이 죽고 주택과 농경지가 침수되는데, 대통령은 우크라이나행이 그리 급박한 일이었는가'와 같은 의문 정도가 전부다. 우크라이나 방문 시기의 적절성 여부보다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필요한 게 아니었나.

재건 사업 참여를 위한 1호 영업사원으로서 행보였다고 치켜세우는 언론도 있다. 하지만 전쟁 중인 나라의 재건 사업을 언급하는 것도 적절치 않거니와, 얼마의 성과를 낼지도 예측이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선진국으로서 할 만큼 했다. 1억 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했고 이를 1억 5000달러까지 늘리고 있으며, 비살상무기인 헬멧이나 전투복 전투식량도 지원해 왔다"라며 "굳이 전쟁터까지 대통령이 가야 재건 사업에 이니셔티브를 받는다고 볼 순 없다"라는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도 단지 정치 공방이라 할 수 없다.

교민 16만 명, 진출 기업만 140여 곳이 넘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사즉생의 정신으로 강력히 연대해 함께 싸워나가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호언. 우려는 당연하다. 물난리 중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행과 그곳에서의 발언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담벼락 낙서만큼의 공정성과 비판 의식도 담아내지 못하는 언론들. 날이 갈수록 비판은 점점 더 무뎌지는 것 같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해명... 그 말을 정말 믿는가?
 

리투아니아 매체 '주모네스'는 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한 옷 가게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 주모네스 홈페이지 갈무리

 
김건희 여사 리투아니아 빌뉴스 명품 쇼핑 의혹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도 비판 의식과 공정성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리투아니아 신문사 < 15min >은 지난 12일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50세의 스타일 아이콘 : 빌뉴스에서 일정 중 유명한 상점에 방문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경호·수행원 16명을 대동한 김 여사가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고 명품관 다섯 곳을 쇼핑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를 접한 국민들의 비난이 증폭되자 대통령실은 "가게 직원의 호객으로 방문했으며 물건은 사지 않았다"라는 해명을 내놨다. 가게 직원이 16명의 경호·수행원을 뚫고 호객행위를 했다는 것, 다섯 곳 매장을 구경만 했다는 것, 믿기에는 너무 어설픈 변명이다.

그러나 이를 심층 취재하거나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김병민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현지에 가게 되면 현지에 있는 상황들을 쭉 둘러볼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발언이나, 이용 국민의힘 의원의 "리투아니아 수출 2위가 섬유나 패션인데 그 부분을 알고서 문화 탐방을 했을 거라고 보기 때문에 이것도 하나의 외교"라는 낯 뜨거운 여당의 엄호를 사실인 양 전달하는 게 전부다. 과거 김정숙 여사의 옷차림과 브로치가 논란이 될 때 '국격을 옷으로 높이나'(2022.04.02.조선일보)라며 옷의 구입이 국비인지 사비인지 밝혀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던 언론들. 김건희 여사는 얼마의 물건을 어떤 돈으로 샀는지 궁금하지도 않나?

'물난리 중에 쇼핑은 부적절했다'는 지적 또한 제대로 된 비판이라 할 수도 없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 중 대통령 부인의 명품 쇼핑은 비가 오든 맑은 날이든 상관없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는 일이고, 부패 국가에서나 종종 회자 되는 일이다. 무슨 돈으로 얼마의 물건을 샀는지 대통령실이나 여당이 의해 가려지고 덮인 진실, 그것을 파헤칠 시도조차 하지 않는 우리 언론들. 사실 전달이라도 한 리투아니아 언론이 오히려 부럽다. 작년에 비해 4단계 떨어진 47위의 언론자유지수. 추락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절박하고 절실한 현실... 언론에 제 역할 바란다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지난 20일 오전 충북도청에 마련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합동분향소에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 시간이 아니면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기회가 다시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대통령이 서울로 뛰어간다고 해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다."
-대통령실 관계자


"주말에 테니스 치면 되고 골프 치면 안 된다는 그런 규정이 공직사회에 어디 있는가." - 홍준표 대구시장

"(내가) 거기(사고 현장)에 (일찍)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김영환 충북지사


재난을 대하는 고위 공직자들의 민낯이다. 대통령이 사과보다는 책임 모면에 급급하니, 광역자치단체장이 (수해 중에) 골프를 치면 뭐가 문제냐로 오히려 기자를 나무라고, 김영환 충북지사는 오송 지하차도 사망 사고를 조문하는 자리에서조차 책임 없다는 주장을 늘어놓는다. 대통령은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자치단체장은 책임을 부인하고 구청장도 해당 경찰서도 남 탓만 했던 '이태원 참사'의 책임 회피와 닮은 꼴이다.

정부의 책임회피와 변명, 언론의 비판 없는 보도의 조합은 국민들에게 '각자도생'하라는 강요처럼 와 닿는다. 정부도 지자체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지 않으니 알아서 목숨을 부지하고, 스스로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현실을 언론을 통해 몇 번이나 각인하게 되는 날들이다.

그러나 과거 정부에서 금기시되고 비판받는 일들이 윤석열 정부라서 당연시될 수는 없는 일이다. 우크라이나와 사즉생 연대 약속은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섰다. 값싼 브로치를 가지고 대통령 부인의 호화 옷차림을 돈의 출처까지 밝히자고 했던 언론이라면 16명의 경호·수행원을 대동하고 명품매장을 돈 김건희 여사의 명품 쇼핑 의혹도 검증하고자 해야 한다. 50여 명 인명피해가 발생한 수해 재난에 도의적 책임조차 인정하지 않는 대통령이라면, '그래 놓고도 엄정한 책임 추궁을 운운하면 영이 서겠냐'라고 나무라는 게 언론의 책무다.

윤석열 정권은 '무오류의 오류'에 빠져있다. 모든 가치 기준을 스스로 정하려는 무모함마저 보인다. 사법과 검찰, 정부의 전횡을 감시해야 할 대부분 조직들이 기능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언론에 제 역할을 바라는 건, 믿는다기보다는 그만큼 절박하고 절실한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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