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4 06:37최종 업데이트 23.07.24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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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가이자 풍수가인 백재권 사이버한국외국어대 교수. ⓒ 박재권 제공

 
지난해 3월 대통령 관저 이전 과정에서 풍수전문가이자 관상가인 백재권 사이버한국외대 겸임교수가 육군총장 공관을 답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실이 그동안 이를 숨긴 이유에 관심이 쏠립니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지난 2월 천공 개입 의혹을 제기한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까지 했습니다. 현재 대통령실은 지난 21일 KBS 보도로 이런 내용이 전해졌지만 이틀이 지나도록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백씨 관여 사실이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지난 2월 부 전 대변인이 자신의 책을 출간하며 천공이 윤석열 대통령 관저 결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실은 "대통령실 및 관저 이전은 국민과의 약속인 대선공약을 이행한 것으로 수많은 공무원의 면밀한 검토를 거쳐 실행한 것"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했습니다. 이어 '떠도는 풍문' 수준의 천공 의혹을 책으로 발간한 부 전 대변인과 이를 보도한 일부 언론사 기자들을 신속하게 형사고발하면서 CCTV 영상도 제출했습니다.


문제는 당시 고발을 주도한 김용현 경호처장과 청와대 용산 이전 TF 팀장이던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백씨와 동행했다는 점입니다. 고발 당시에 이미 부 전 대변인 등이 제기한 의혹의 당사자가 천공이 아니라 백씨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도 고발을 감행한 것은 경찰이 CCTV 영상을 확인해도 천공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 테니 문제될 게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권력의 최상층부인 대통령실이라 거리낄 게 없다는 오만함과 천공이 아니면 다른 풍수지리가가 관련돼도 괜찮다는 안이한 판단이 화를 자초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대통령실의 침묵과 여당의 적극 변호 

대통령실의 대담한 고발에는 경찰이 엄정하게 수사하지 않을 거라는 잘못된 기대도 있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듭니다. 대통령실의 이런 판단은 한동안 맞아떨어지는 듯 보였습니다. 경찰은 지난 4월 중간발표를 통해 관련 CCTV를 확보해 분석한 결과, 천공이 등장하는 영상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나 경찰은 백씨의 존재를 밝혀냈습니다. 경찰이 백씨를 찾아낸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각에선 경찰의 태도 변화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덮고 넘어갈 경우 나중에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입니다.

대통령실이 침묵하는 대신 여당은 적극 변호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풍수전문가에게 무속인 프레임을 씌우려 한다"는 주장과 함께 대선 기간 중 백씨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만났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풍수지리가이자 관상가가 대선 주자들을 만나 관상을 보는 것과 국가의 공적인 판단에 개입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대통령 관저 선정에 풍수지리가가 개입한 사실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게 상당수 국민의 인식입니다.

대통령실은 일부 언론에 백씨의 방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대통령 관저 결정은 그의 의견대로 정해지지는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집니다. 백씨 개입 사실을 숨긴 데 대해서는 "천공이 이슈가 됐기 때문에 그 부분만 아니라고 한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합니다. 이런 답변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나 다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백씨의 견해 반영 여부가 아니라 국가 중대사에 풍수지리가가 관여했다는 점입니다. 천공이 개입하지 않아서 고발했다는 해명은 거꾸로 천공이라는 인물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대통령실은 관저 선정 과정에서 백씨 개입 여부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아야 합니다. 민간인인 백씨가 어떤 경위로 관저 후보지 답사에 참여했는지, 자문료를 지급했는지 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찰도 백씨의 존재를 뒤늦게 인지했거나 공개한 배경에 대해서 소상히 밝혀야 합니다. 현재 경찰은 백씨의 직접 조사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도 의혹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진상을 있는 그대로 규명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충재의 인사이트>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매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을 지냈던 이충재 기자는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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