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17 11:53최종 업데이트 24.04.1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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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인근 택시 정류장에 승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 ⓒ 연합뉴스


택시회사의 기준금은 2020년 폐지되어 불법화된 '사납금'의 변종이다. 서울 소재 A택시회사의 기준금은 월 564만 원이다. 일 평균 21만 7천 원을 회사에 줘야 한다. 26일 만근기준 기본 월급은 세후로 181만원이다. 564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한 배분비율은 노동자에게 60%을 주고 사용자는 40%를 가진다.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사납금제다.
 
이 조건을 기준으로 택시노동자의 월 실수령액을 추산해보자. 2023년 3월 10일자 <뉴스핌>에 따르면 택시 한 대당 일평균 매출은 20만 6608원이다. 만근 26일을 곱하면 557만1808원. 기준금 564만 원에서 26만 8192원이 모자란다. 월급을 받고 일부를 다시 회사에 내줘야 한다. 빼고 남은 실수령액은 154만 원. 참고로 2023년 최저임금은 주 40시간 기준 201만 원이다.
 
놀라운 건 택시노동자가 154만 원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일 12시간 주 72시간을 채워야 한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예외없이 적용되는 40시간 소정근무 201만 원 최저임금이 택시노동자에겐 예외다.
 
SBS <모닝와이드>(2023.9)를 보면 1인가구 월평균 소비지출액은 155만 1천 원(통계청기준)이다. 모든 통계를 종합하면 A회사에 근무하는 택시노동자는 하루 밤 낮 없이 12시간 운전해서 벌 수 있는 돈이 겨우 혼자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택시기사 월 수입, 최저임금보다 낮은 154만 원

2024년 1월 기준 서울시 법인택시 기사 수는 2만여 명, 평균 연령은 63.1세다(서울시 통계). 이 사람들이 모두 독거노인이라 해도 문제지만 대부분은 가정이 있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루 12시간 노동을 해서 154만 원을 번다면 아무도 이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2만여 명의 노동자가 택시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마법이 따로 있다. 알고나면 다소 참담할 수 있는. 그 비법은 일 매출 20만 6608원의 평균을 만드는 높은 값과 낮은 값의 시차와 기준 초과금 배분비율 60%안에 있다.
 
서울에서 택시매출은 낮과 밤의 차이가 크다. 낮에는 평균 1만 5천 원에서 2만 원 사이지만 정체가 사라지고 심야할증까지 더해지는 10시 이후에는 3만 원 많게는 시간당 4만 원도 벌 수 있다.
 
전통적으로 12시간 맞교대를 해왔던 택시회사가 코로나 이후로 돌아오지 않은 택시기사들로 인해 운행률이 30%까지 주저 않았다. 택시는 남고 기사가 부족하니 맞교대가 아닌 아예 차 한대를 내주는 1인1차제가 가능해졌다.
 
해서 근무시간을 노동자가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기준금도 채우지 못하는 오전이나 낮시간을 피해 여러가지로 위험요소가 많은 밤근무로 내몰리는 것이다. 게다가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154만 원 월급으로 가족들과 서울에서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때문에 기준금에서 요구하는 일 매출 20만 6608원을 넘어서는 매출을 반드시 올려야 한다. 거기에서 40%를 뗀 60%의 초과금 만이 가정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매일 10만 원의 초과금을 벌었다고 가정하자. 26일 만근을 기준하면 260만 원이다. 여기서 40%인 104만 원을 떼주고 남은 돈은 156만 원. 월급 포함하면 337만 원이다.  
 
복기하면 택시노동자가 월 26일 동안 밤샘 운전해서 일 30만 원 매출을 올리면 월급 포함 780만 원인데 회사는 이 중 56%가 넘는 443만 원을 가져가고 노동자는 절반도 안되는 337만 원을 지급 받는다.
 
그런데 3백만 원이 겨우 넘는 이 돈마저도 대부분의 택시노동자에겐 먼나라 얘기다. 국토교통부의 '법인택시 월급제 도입성과 분석 및 확대방안 마련 연구(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법인택시 기사들의 평균 소득은 220만 4869원이다. 이런 저임금 구조 속에 밤샘 근무와 함께 승차거부 과속 난폭운전 등이 일상화 되고 택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왜곡된다.
 
주 하루 휴일에 16시간 노동이 일상이었던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나 볼 수 있던 전근대적인 노동착취가 2024년 택시 현장에서는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야만적인 풍경이다. 이는 평균 나이 63세의 택시노동자가 일상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노동이 아니다.
 
그나마 월 200만 원대 벌이라도 하기 위해 택시노동자는 아침출근 저녁퇴근은 물론 친구를 만나고 산책을 하고 가족들과 여가시간을 보내는 등의 평범한 일상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오로지 운전하고 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법인택시의 생존비법은 전적으로 택시노동자의 희생을 먹잇감 삼은 전근대적인 노동착취 방식이다.  
 

서울의 한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사납금 중심의 수탈구조... 택시산업 머잖아 공멸

택시회사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차량 보험, 가스값, 정비, 사고처리, 신차 교체, 4대보험 등 제반 관리비와 경상비도 해결해야 하고 영업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로서는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이다.
 
2019년 10월 13일 자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준공영제에 따라 서울시는 버스회사의 평균 이익률 3.6%를 보장해왔"으나, 2019년 1월 31일 자 <서울앤> 기사에서 서울시 택시물류과 이태경 주무관이 밝힌 바에 따르면 "서울의 법인택시 원가 분석을 살펴보면, 택시 한 대당 수익률은 1.6%"였다. 
 
그 많고 적음의 문제를 떠나 택시업계는 종사자 감소와 함께 노령화되어가고 법인회사는 기사를 구하지 못해 매일 망하는 업체들이 생겨난다. 근본은 우리나라의 택시산업이 수십 년 동안 사납금 중심의 노동자 수탈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택시산업은 머지 않은 시기에 공멸할 운명이다.
 
택시는 운송가격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는 공적 운송체계 안에 있다. 운수종사자의 자격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고 사업면허도 철저한 통제와 관리 속에 있다. 그런데 택시는 법적으로 지하철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수단이 아닌 고급교통수단이다. 말하자면 공적 관리는 철저하게 받지만 공적 책임은 없다.  
 
고급교통수단인 우리나라 택시비는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38% 수준이다. 풀어 설명하면 다른 나라에서 만 원을 받는 택시비가 우리나라에 오면 3800원이라는 얘기다. 이런 퇴행적 비용구조를 유지하고 지탱해 온 방식이 택시노동자의 강도높은 노동과 공적 책임 바깥에서 구조화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탈법적인 임금체계다.

이렇게 기형적인 체계를 희생양 삼아 서민들은 값싼 택시를 이용해서 좋고 정부와 지자체는 재정지출 없이 고급교통수단이라고 이름 지은 대중교통수단을 유지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언제까지 마냥 그럴 수는 없다. 정상성을 벗어난 기형적 체계는 반드시 도태된다.
 
도산하는 택시회사가 속출하고 신규종사자 유입은 멈추고 기존 종사자는 노령화 되는 각종 지표들은 법인택시 산업이 이미 공멸의 길에 들어섰음을 경고하고 있다.
 
해법이 없지는 않다
 

2023년 11월 15일 오전 10시 분신 사망한 택시기사 방영환씨의 유족과 동료들이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인근 도로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 박수림

 
해법은 있다. 고급택시수단에 맞게 택시비를 OECD 수준으로 현실화 하거나 택시를 고급교통수단에서 대중교통수단으로 변경하여 공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경우 버스와 같이 준공영제를 통해 택시노동자의 법적 노동시간과 적정임금을 국가와 지자체가 보장해줄 수 있게 된다. 
 
정치권에서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이를 위해 2013년 1월 1일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법(택시법)'이 국회에서 통과 됐다. 이는 버스와 더불어 택시를 준공영제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였다. 이를 통해 대표적으로 버스와 택시 환승 할인 등이 가능해지고 운전자에게는 법적 노동시간과 적정임금을 보장하는 길이 열리는 줄 알았다.
 
택시노동자의 강도높은 밤샘 운전과 최저임금도 안되는 수입을 보상받기 위해 고질적으로 행해졌던 승차 거부 과속 난폭 운전 등이 사라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 정부는 국가와 지자체에 과도한 재정부담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개정안을 거부했다.
 
그로부터 십 년 뒤인 2023년 4월 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포함하는 법안을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으로 대표 발의했다. '택시업계를 중심으로 택시운송업의 경영 여건이 악화되고 택시 서비스의 질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고 언론을 통해 전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여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양경숙 의원의 임기와 더불어 폐기될 운명이다.
 
2023년 9월 26일 오전 택시노동자 방영환씨가 임금체불을 규탄하고 완전월급제 시행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227일째 이어오다 회사 앞 도로에서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그는 전신 화상을 입고 입원한 지 열흘 만에 사망했다.  
 
방영환씨의 분신을 계기로 서울시에서 작년 11월 불법화된 사납금제와 현행 법으로 운영되어야 할 전액관리제의 시행 실태를 21개 업체를 대상으로 시범 조사했다. 그 결과 21개 업체 모두가 사납금제의 변종인 기준금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사실상 조사 대상 택시회사 모두 2020년 이후 불법화된 사납금제를 버젓이 유지하고 있는, 이미 만연해있고 누구나 알고 있는 현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데 한 목숨이 사라져야 했다.
 
1970년 분신한 전태일은 사문화된 근로기준법과 함께 부활되어 아직도 청계천 다리 위에 서 있다. 2023년 택시노동자 방영환의 죽음이 헛되지 않는 길은 서울시로부터 공식 확인 된, 택시생태계에 만연한 불법사납금제가 불가능한 법적 환경을 만드는 것부터다. 
 
4월 10일 선거가 끝났다. 윤석열 정부는 시민들의 엄중한 심판을 받았고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승리했다. 여야가 합의한 택시법이 2013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사라졌고 2023년 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발의한 택시법은 21대 국회와 함께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2024년 5월 30일 22대 국회가 새로 열린다. 택시노동자 방영환의 죽음을 다시 생각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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