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11 19:59최종 업데이트 24.04.1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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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23년 11월 22일 런던의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에서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4.10 총선은 여당인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났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겼고 조국혁신당이 이겼다. 그러나 이런 도식은 협소하다. 분노가 폭정을 막아 세웠고, 국민이 오만한 권력을 이겼다. 축하의 인사를 받아야 하는 건 국민들이다.

대통령이 전국에 1000조 원에 육박하는 약속어음을 발행해 가며 직접 선수로 뛰어든 총선이었다. 검찰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의 기관들도 중립의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그런 선거에서 국민은 이겼고 윤석열 정부는 졌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승리했다. 그러나 승리의 요인은 그들의 선전만이라고 할 수 없다. 선거는 상대평가다. 상대보다 표를 많이 받아야 당선되고, 상대보다 나아 보여야 표를 얻는다. 정권 심판론과 이재명·조국 심판론이 맞붙었다. 좋은 정책을 펼쳐 놓고 지지를 호소하기보다는, 상대가 이렇게 나쁘니 심판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운동권 심판론', '이·조 심판론'으로 네거티브 수위를 끌어 올린 것은, 역설적으로 '정권 심판론'의 당위성만 키웠다.

국민이 이겼고 윤석열 대통령이 졌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와 당선자들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과 명품 백 수수 의혹에 대한 김 여사 소환 및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386 운동권의 전횡을 강조할수록 검찰 권력의 횡포가 떠올랐고, 이재명·조국 대표의 부도덕을 규탄할 때마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과 디올백 수수는 왜 수사조차 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게 했다.

유권자인 국민들은 386 운동권이나 이재명·조국 대표보다 대통령의 부인과 측근들의 감춰진 잘못을 은폐하려는 '검찰 권력'이 더 나쁘고, 심판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를 합쳐 108석. 여당의 완패는 김건희 여사 관련 각종 의혹을 이대로 덮고 갈 수 없다는 민심의 투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정권 심판론'은 선거가 끝났다고 해서 마무리된 것이 아니다. 국민들을 대신해 야당이 끝까지 진실을 규명하고, 잘못에 대한 법의 심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야권에 190여 석을 몰아준 것이다. 180석 야당이 무엇을 했느냐는 평가에도 또다시 야당에 압승을 안겨준 건 윤석열 정부의 불공정·불의·민생파탄을 야당이 국회에서 죽을힘을 다해서라도 막아내고 바로 잡아 달라는 뜻이라 할 수 있다.

거대야당이 국민들과 약속을 저버리고 전투력을 상실해서, 윤석열 정부의 폭정을 막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패자가 된 국민의힘의 모습은 3년 뒤 대선에서 민주당의 모습일 수 있다. 야당이 수권 정당이 되기 위해선, 위임받은 국민 주권을 헌신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국민 판단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대파 한단 875원이 합리적'이라는 지난 3월 18일 대통령의 발언은 선거기간 가장 큰 이야깃거리가 됐다. 한 단이 아니라 한 뿌리라는 이수정 후보의 두둔과 투표장에 대파 반입이 안된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은 논란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대파값을 몰랐다는 해명과 사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과 하나에 만원에 육박하는 고물가에 이반된 민심은 '왜 거기만 875원?' '총선을 의식한 전시행정' '우리 동네 대파 한단 7000원이 넘는다' 등의 여론으로 확대됐다. 고물가에 고통받는 민심은 터진 수도관처럼 걷잡을 수 없이 분출되었고 4.10 총선에서 여당에 가장 큰 악재가 됐다.

'대파'가 선거의 주된 화두가 된 것은 그만큼 '먹고 살기 힘든 상황'을 말해준다. 물가는 자고 일어나면 오른다. 공공요금 인상과 국제 유가 인상, 고환율은 가득이나 높은 물가를 더 부채질하고 있다. 국민들이 '대파한단 875원' 발언에 화가 난 건 물가관리, 내수경기, 가계와 기업경제마저 끝없이 추락하는 현실에서도 정부가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국민고통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장에 대파 반입을 불허한 조치에 맞서 디올백 모형, 대파 사진을 든 유권자가 나타난 것은 분노이고 항거였다. 물가폭등에 술렁이는 민심을 대형마트 할인 매대에서 사진 찍는 쇼로 달래려 했던, 무능하고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모습에 4.10 총선은 일명 '대파혁명'이 된 것이다.

200석 탄핵 의석보다 무서운 건 민심 이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대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들이 야당에 표를 몰아준 이유에는 정권 비리를 바로 잡아달라는 뜻만 담겨있는 게 아니다. 윤석열 정부 집권 2년 동안 가계, 기업, 나라 살림 모두 엉망이 됐다. 부자감세와 긴축재정의 경제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부자와 대기업에는 혜택을 몰아주고 있다.

민생 경제를 살린다는 이름으로 24차례 있었던 민생토론회에서 약속한 사업만 240개, 소요예산만 1000조 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나라 살림 1년 예산을 넘는 규모다. 민생 없는 민생 경제, 계획 없는 주먹구구식 선심정책,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은 내수도 수출도 물가안정도 기대하기 힘들다. 행정부의 견제 기능이 있는 국회가 제 기능을 해야 한다. 국민들은 정부의 얼빠진 민생 살리기를 막아달라는 당부를 야당에게 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민주당이 얻은 175석(더불어민주연합 포함)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받은 180석보다 적기 때문에 압승으로 보기 어렵다고 한다. 또 조국혁신당 등을 합쳐도 총 의석이 200석이 되지 않기에 지금의 정치구도와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일면 일리 있는 지적이다. 대통령 탄핵은 논외로 치더라도 대통령 거부권을 무력화시키려면 200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김건희 특검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등에 대해 민심을 거스르고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힘을 원하는 국민이라면 아쉬운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민심의 반영이고 번복할 수 없는 결과다. 그리고 대통령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하여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무력화한다? 그건 야당의 반발을 넘어 국민과 대척점에 서는 일이며,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존립 위기에 놓을 수 있는 도박이다. 탄핵은 대통령직을 정지시키는 강제적 수단이다. 그러나 탄핵보다 더 무서워해야 할 건 민심 이반이다. 민심을 역행해 승리할 수 있는 선거가 없듯이 국민과 맞서 거부권을 남용한다면 정권의 안녕과 재집권도 기약할 수 없는 일이다.

총선 결과를 두고 대통령실과 여야 모두 민심의 두려움을 알았다고 한다. 당선자, 낙선자 모두 겸허해지겠다고 한다. 그렇게 했으면 한다. 국민들의 삶은 여전히 힘들다. 지난해 나라살림 적자 규모가 87조 원으로, 예산을 세울 때 내놓은 계획보다 29조원 늘었다. 그런데도 24차례 민생토론회에서 1000조 원이 넘는 사업을 약속하고 있다.

무능과 오만, 독선에 빠져있는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야당이 강제하고 견제해야 한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옐로카드를 줬다. 레드카드는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심이 두렵다면 옐로카드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한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국민 명령의 무게를 잘 가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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