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3 10:50최종 업데이트 24.03.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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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월 5일 당시 체신부에서는 '세계 도서의 해'를 맞아 온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우리나라의 도서출판이 크게 발전하기를 바라면서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 우정사업본부


1970년 유엔은 1972년을 '세계 도서의 해'로 선포하였다. '세계 도서의 해'를 선포한 목적은 인류 사회에서 책이 차지하는 역할에 더욱 관심을 갖자는 것이었다. 당시는 책이 의사소통의 핵심 수단이었다. 낮은 비용으로 높은 수준의 책들이 발간됨으로써 대중들이 쉽게 책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를 지향하고 있었다.

책으로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유엔은 '책 혁명'이라는 표현도 사용하였다. 세계적으로 책을 읽는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이를 뒷받침하듯 도서관 설립도 유행하였다. 비록 서구 선진국에 국한된 이야기였지만 급속한 경제성장을 시작한 우리나라 국민 사이에서도 책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었다.


'세계 도서의 해' 1972년은 우리나라의 문화사에서도 의미 있는 해였다. 이 해에 '직지'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았다. 직지는 1377년에 인쇄된 금속활자본으로 원래 제목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책으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72년 '세계 도서의 해'를 기념하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책 전시회에 등장하여 세계인의 관심을 받았고, 2001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기록유산 보유 아시아 1위, 세계 5위의 나라다. 책의 나라다운 모습이다.

반세기 전 커피에 관한 모든 정보 수록한 커피 교과서
 

동서식품의 커피와 커피 관련 품목들 ⓒ 연합뉴스


1972년 9월에는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에서도 주목할 만한, 매우 의미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커피에 관한 최초의 단행본일 것이다. <커피>라는 제목의 106쪽 분량의 책이다. 이 책을 기획하고 원고를 준비한 것은 맥스웰 커피를 생산하는 '동서식품'이었고, 편집과 발행을 맡은 것은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이었다. 인쇄는 서울 을지로에 있던 '웅선문화사'가 맡았다.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발간에 즈음하여'에서 동서식품 대표이사 신원희는 18세기 프랑스의 외교관 탈레랑의 커피 예찬, 즉 "커피는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같이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란 표현을 인용하였다. 책의 서문은 커피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지 백년, 이젠 현대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기호 음료로서 "우리 국민의 절대적인 총애를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런 때를 맞아 커피에 관한 올바를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이 책을 내놓게 되었음을 밝혔다.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커피의 역사'로 시작하여, 커피재배와 관리, 커피생산국과 소비국, 커피의 종류, 인스탄트 커피, 커피의 성분과 영향, 커피의 조리법, 전설과 일화, 그리고 마지막 장 '커피년표' 순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반세기 전 커피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록한 커피 교과서 내지는 백과사전이다.

참고문헌이 나와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어떤 자료를 활용하여 썼는지를 알 수는 없다. 내용에 일본 커피 이야기가 몇 군데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일본 서적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동서식품 임원에 미국 맥스웰하우스 일본법인 소속 일본인들이 다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책에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커피에 관한 세계 최초의 기록과 관련해서는 10세기의 이라크 의학자 라제스, 11세기 아라비아의 의학자 아비센나 이야기를 소개하였고, 커피에 관한 유럽 최초의 기록은 사학자이며 식물학자였던 찰스 구루시아스라는 인물이 1574년에 쓴 커피의 성분에 관한 글이라고 썼다. 아쉽게도 찰스 구루시아스라는 인물에 대해 혹은 그의 커피 글에 대해서는 더 이상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

1582년에 독일의 여행가 레온 라우볼프('레온 하드로 월프'로 표기)가 쓴 시리아여행기 속에서의 커피 음용 기록과 이탈리아의 식물학자 프로스페로 알피노의 커피 기록도 언급하였다. 라우볼프의 기록은 현재 유럽인 최초의 커피 관련 기록으로 거의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책은 인류 최초의 커피가 10세기 전후 에티오피아에서 음용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아라비아로 건너가 이슬람음료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서술하였다. 최초의 카페는 15세기 메카에 생겼고, 이후 16세기에 이집트 카이로와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도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후 커피에 대한 탄압이 예멘과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일화와 18세기 영국에서 벌어졌던 커피하우스 폐쇄령 등이 서술되었다.

흥미로운 내용 중 하나는 당시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커피를 두 종류로 구분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을 중심으로 당시 유행하고 있던 구분법이었다. 커피는 브라질 커피와 마일드 커피로 구분하였다. 브라질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향기나 맛에 있어서 부족함이 많지만 값이 싸다는 장점이 있고, 브라질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마일드 커피는 향미와 산미가 강하며 모양도 예쁜 특징이 있다. 물론 브라질 커피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브라질 커피는 가격의 커피, 마일드 커피는 질의 커피라고 부른다는 내용도 서술되어 있다.

이 책에는 1946년 기준 세계의 국가별 커피 소비량이 소개되어 있다. 미국이 전 세계 소비량의 무려 63%, 유럽이 19%, 기타 18%를 차지할 정도로 20세기 중반 미국이 커피 소비의 왕국이었던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미국인들은 하루에 평균 2.5잔을 마시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아시아 제1의 커피 소비국 일본의 모습이다. 일본은 1년에 1인당 0.1파운드(45그램)의 커피를 소비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120분의 1 수준이었다.

커피 전문가들이 지금도 마음에 담아야 할 내용
 

커피 ⓒ 픽사베이


이 책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 서술한 것은 인스턴트 커피의 제조 과정이다. 이 책이 간행되기 불과 2년 전인 1970년 12월에 인스턴트 커피 생산을 시작한 동서식품의 관심 사항을 반영한 것이다. 20여 단계에 이르는 인스턴트 커피 제조 공정뿐 아니라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찌꺼기 처리 문제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커피의 성분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이 책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커피를 둘러싼 유해론과 무해론을 소개하고 있으나 공정하지는 않다. 커피 음용을 지지하는 찬성론의 핵심 내용은 2쪽에 걸쳐 여섯 가지로 소개되고 있는 반면에, 반대론은 아홉 줄로 요약하였다. 게다가 반대론의 내용도 단순하다. 신경질적인 사람이 마시거나, 너무 많은 커피를 마시면 나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커피는 적당한 양을 마시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얘기였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부분은 커피를 제대로 끓이는 비결이다. 커피를 잘 끓이는 비결은 "기술적인 우열에 달려 있다기보다는 끓이는 사람의 마음, 다시 말해서 '애정'에 있다"는 주장이다. 커피에 대한 애정이란 말의 뜻은 첫째로, 커피 본래의 향미를 보존하겠다는 마음, 둘째로 쓰이는 기구를 청결하게 하려는 마음, 셋째로 컵을 미리 뜨겁게 하고 분량을 알맞게 하는 마음이라고 정리하였다. 커피 전문가들이 지금도 마음에 담아야 할 내용들이다.

미국식 파커레이터 방식을 소개하면서 이 방식에 의해 빼낸 커피의 질은 드립식이나 사이폰식에 의한 커피보다 못하지만 "질보다 양을 따지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가장 널리 보급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당시 미국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80%가 쓰는 방식에 대한 약간의 조롱이 담긴 표현이었다.

아이스 커피에 관한 서술도 매우 신기하다. 이 책에 따르면 커피는 본래 뜨겁게 마셔야 제격이며, 아무리 삼복더위에도 뜨겁게 마시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사람의 기호는 다르므로 아이스 커피를 즐기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이 책에는 벌꿀아이스커피, 트로피칼아이스커피, 커피넥타, 프로스티드커피하와이, 커피아이스크림소다, 모카프로스티드, 커피스페셜, 커피줄레프 등 8개의 아이스 커피 레시피가 나와 있고, 이외에도 비엔나 아이스 커피를 비롯하여 8종의 아이스 커피 이름이 소개되어 있다. 대단한 관심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커피 마시는 꿀팁 하나가 나와 있다. 쓴맛은 설탕을 넣으면 없어지고, 산미는 크림을 넣으면 중화된다. '세계 도서의 해' 1972년에 간행된 비매품 단행본 <커피>는 그 시대의 커피문화를 보여주는 좋은 거울이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 교수)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동서식품(1972). <커피>, 합동통신사광고기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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