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0 14:32최종 업데이트 24.04.2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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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을 아시나요? 다이렉트 메시지(Direct Message)의 약자인 디엠은 인스타그램 등에서 유저들이 1대 1로 보내는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4월 10일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대변하기 위해 국회로 가겠다는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DM 보내듯 원하는 바를 '다이렉트로' 전달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오마이뉴스>는 시민들이 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을 진솔하게 담은 DM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편집자말]

서민의 마음으로 물가 잡아줄 후보 원하는 건 사치일까요. ⓒ 오마이뉴스

 
If you are born poor it's not your mistake, but if you die poor it's your mistake.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죄다.
- 빌 게이츠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때,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참을 곱씹어보니 참으로 모진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주의 사회 속에 사느라 '능력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와 같은 신화를 나도 모르게 내면화하고 있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사회복지활동가로 현장에서 많은 어르신과 부대끼면서 격하게 느끼는 건 가난하게 죽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점이다.

고물가에 허리띠 졸라매는 어르신들

요새 물가가 올랐다는 소식은 어르신 사이에서도 뜨거운 주제다. 그래서 장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여쭤보면 항상 장 보기가 무섭다는 답이 돌아온다. '장 보기 포비아(Phobia)'라고 할 정도로 장 보는 것에 두려움이 커졌다.


장바구니에 얼마 담지 않아 무게가 가벼운데 비해 가격은 많이 무거운 시대. 사과 몇 알에 만 원이 넘어가는 시대(지난 2월엔 제수용 사과가 한 개 만원이란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에 어르신들은 놀라고 있다.

어르신들은 보행 보조기를 끌고 장을 보러 갔다가 산책만 하고 돌아오기만 반복한다. 사실 어르신들의 말처럼 "사과 하나 안 먹는다고 큰일"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과만 오른 게 아니라서 문제다.
 

어르신과 함께 7만 원으로 장을 봤다. 몇 개 사지 않았는데 정해진 금액을 금방 넘어버렸다. ⓒ 백세준


얼마 전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가구의 가처분소득은 1년 전에 비해 겨우 1.8% 올랐지만 먹거리 물가 상승률은 무려 6%로 대폭 상승했다. 이렇다 보니 식료품 등에 쓰는 실질소비지출은 3.4% 감소했다. 즉 쓸 수 있는 소득은 아주 약간 늘어난 것에 비해 먹거리 물가가 크게 상승해서 실제 먹거리에 쓴 비용은 줄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어르신들의 상황에 대입해 보자면 더욱 심각하다. 내가 만나는 어르신들은 이렇다 할 수입이 없다. 노인복지정책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초연금과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아래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여 받는 활동비가 거의 전부이다. 둘 다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상황을 나아지게 할 정도는 아니다. 더군다나 노인 일자리는 확대를 한다고는 하지만 경쟁률도 그만큼 높아져 참여하지 못하는 어르신들도 많다. 이럴 경우 기초연금으로만 생활해야 하는 것이다.

"사과가 비싸지면 안 먹으면 그만이에요. 근데 밥이나 반찬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어떨 때는 김치랑 밥만 먹어요. 김치는 연말에 복지관 같은 곳에서 많이 주니까요. 그러다 그냥 굶어버리기도 해요. 어차피 몇 끼 안 먹는다고 안 죽어요."

수입이 줄어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나같은 경우 한달 수입과 지출을 다시 파악해 본다. 그리고 '불필요한' 지출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줄이려고 다짐한다.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이다. 줄일 수 있는 비용이 무엇인지 종이에 손수 적어가며 계산한다. 그리고는 답을 내린다. '식비를 줄이자'.

인생은 다 먹고 사는 일인데, 이제는 식비가 불필요한 지출이 되버리고 만다. 당장 한 끼 안 먹는다고, 하루 안 먹는다고 사람이 어떻게 되는 게 아니므로. 저소득층일수록 식비에 지출하는 비용이 높아진다는 통계학적 개념인 엥겔지수는 현장과 동떨어졌다. 식비 지출 비용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아예 지출을 하지 않고 있어 이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최근 고물가로 끼니를 거르고 있는 어르신들을 위해 나는 일하는 곳에서 1인당 7만 원으로 장을 보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진행한 적이 있다. 집에 홀로 있을 저소득 어르신들을 위해 정서적 지지와 함께 평소 비싸서 먹지 못했던 것을 이번 기회에 드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어르신 댁과 가까운 마트에 방문해 먹거리를 구입했는데, 이게 웬걸? 떡국 떡, 배, 불고기, 달걀, 쌀 4kg을 사니 금방 7만원이 넘어버렸다.

한 달은커녕 몇 끼만 먹으면 동날 양이었다. 그래서 진열대를 몇 바퀴 계속 돌며 먹거리를 신중하게 고를 수밖에 없었다. 사회복지 총 예산은 해마다 늘어나긴 하지만, 물가상승률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예산이 편성되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는 체감하기가 어렵다.

진짜 장을 보는 정치인이 필요해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과일 매장에서 농림축산식품부 할인 지원 사과를 살피며 과일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2024.3.1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물가가 심각하게 올라 여론이 동요하면, 정부는 물가점검을 위해 농수산물 시장이나 마트를 찾는다. 또 선거를 앞두고도 후보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 시장이다. 최근 여당 대표도 선거 운동을 위해 서민의 삶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런데 검은 봉지에 담긴 생닭을 일부러 꺼내 보여주는 여당 대표를 보며, '소탈하네'란 생각보다 '그 생닭의 가격이 얼마인지 알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 중 정치적 의도를 빼고 소탈하게 자신의 가정을 위해 장을 보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민과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그들이 과연 허리띠를 졸라매며 식비를 줄여야만 하는 이들의 마음을 반영하는 물가 관련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앞다퉈 물가를 잡겠다고 선포하지만, 믿음직스럽지 않은 이유다. 

나도 현장에서 일하면서, 또 가정 내에서 장을 보면서 물가가 이렇게 올라 심각성을 느낀 적은 거의 처음이다. 정말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쩔 수 없이 가난해 질 수밖에 없다. 가난은 먹고 싶은 게 있지만 참고, 하고 싶은 게 있으나 단념하는 것이다. 즉 가난은 단념이다. 포기하게 하는 자가 죄인이다.

맨 처음 인용한 빌 게이츠의 말에 딱 한 단어를 더 추가하고 싶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국가의' 죄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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