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9 16:55최종 업데이트 24.02.2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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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여성가족부의 복도가 한산한 모습이다. ⓒ 연합뉴스

  
"총선 때까진 (폐지) 안 될 거예요."

2022년 대선 이후, 여성가족부의 한 공무원에게 들었던 말이다. 밑도 끝도 없는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페이스북에 대문짝만하게 쓰고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이었기에, 폐지 수순이 급물살을 타리라는 전망이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지부진한 국면이 계속돼야 내년 총선 때 야당 탓을 하며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다. 툭하면 폐지 논의가 불거져 나오는, 여가부에서 여러 곡절을 겪은 구성원의 생각이었다.

여가부에 가해지는 '계획적인 린치'

그의 말처럼 여가부는 그로부터 1년이 훨씬 지난 지금껏 존속해 있다. 지난해 8월 '잼버리 파행' 이후론 비교적 잠잠하다가, 22대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갑자기 이슈화됐다. 윤 대통령은 반년째 내버려뒀던 김현숙 여가부 장관의 사표를 얼마 전 수리했다.


잼버리 파행에 따른 책임을 진즉 졌어야 할 김 장관이지만, 김행 후보자가 검증 과정에서 낙마한 후 그의 사표는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결국 총선을 50여 일, 그가 교수로 복직할 대학의 개강을 10여 일 앞둔 시점에서 느닷없이 수리됐다.

윤 대통령은 김 장관의 후임을 임명하지 않고, 여가부를 차관 체제로 운영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차관에는 공무원 조직개편 전문가라는 신영숙 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이 지난해 12월 임명된 터였다. 여가부는 대변인 명의의 브리핑에서 대놓고 "타 부처 실‧국장급 인사를 임명해 폐지를 준비하겠다"더니 지난 27일 정말로 보건복지부 출신 인사가 기획조정실장으로 왔다. "업무 이관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면서, 부처 내 서열 2, 3위를 모두 타 부처 출신으로 임명한 것이다.

여가부의 현 상황을 두고 흔히들 '식물 부처'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는, 정확히 말하면 식물에 대한 모독이다. 식물은 인간 눈에 띌 만큼 역동적이지는 않을지언정 나름으로 드라마틱한 신진대사를 통해 생명을 영위해 간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여가부에 가하는 행동은, 계획적인 린치다. 대놓고 '고사'(枯死)하라는 '고사'(告祀)에 가까운 행위다.

박민수 차관 성차별 발언이야말로 여가부 존재의 이유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보건복지부

 
물론,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여가부가 마뜩지는 않다. 그렇다고 여가부의 실정을 논하는 기사를 쓸 때마다 달리는 댓글 '여가부 폐지'에 찬성하냐 하면 '아니올시다'다. 여가부가 영위하는 '성평등'이라는 관점이, 곧 여가부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가부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폐지를 주장하는 현 정권이 역설적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일례로 최근 논란이 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의 여성 의사들을 향한 성차별적 발언이 그렇다. 박 차관은 지난 20일 브리핑에서 의대 증원 규모 결정의 근거 자료를 설명하면서 "여성 의사 비율의 증가, 남성 의사와 여성 의사의 근로시간 차이까지 집어넣어서 분석했다"라고 말했다. 남성 의사만큼 근로 시간이 길지 않은 여성 의사의 비율이 나날이 느는 것을 고려해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했다는 얘기였다. 이를 두고 여성 의사, 여대 의대 학생회 등의 반발이 빗발쳤다. 급기야는 7개 의대 여의사회와 동창회 등은 박 차관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박 차관의 발언은 그 자체로 여가부 존재의 당위를 증명한다. "애당초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인력으로 간주하지 않은 성차별적인 시각"(이화여대 의대 학생회)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의 그 발언은 남초 직업군에서 여성 종사자들이 마주하던 불합리한 폄훼의 시각을 그대로 갖는 한편, 사회 구조적으로 엄존하는 성차별을 지우는 말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해당 발언은 단순히 "수급추계 방법론에 대한 객관적 사실에 대한 설명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박 차관이 언급한 내용이 들어 있는 논문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에는 여성 의사 인력에 대해 '출산 및 양육 부담에 따라 일시적 또는 영구적 노동시장 이탈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으며, 노동시장 은퇴 시점 및 노동시장 참여율에서 남성 의사와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라고 했다. 또 다른 자료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 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추계 연구'에도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다. '여성 의사는 출산이나 육아 때문에 이직이 불가피하거나, 당직·야근이 어려운 상황이 많으므로 이에 대한 지원이 요구됨'.

박 차관의 발언은 이렇듯 여성 의사도 피할 수 없는 한국의 현실, '독박 육아'를 당연한 전제처럼 다룬다. 그는 보건의료 주무부처의 차관으로서 여성 의사가 처한 불평등한 현실을 타개하기보다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성 의사의 증가세를 감안해 의사를 증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사연의 보고서 등에서 여성 의사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시각이다. 이는 한국여성의사회의 성명처럼 "여성 의사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어려움과 도전을 외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별 간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적 노력에도 역행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숨 쉬듯 살아있는 여성혐오와 이를 조직하는 백래시

이러한 박 차관의 발언은 명백한 여성혐오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작 <백래시 정치>에서 여성혐오와 백래시를 구분해 설명한다. 그는 "여성혐오는 일상적으로 미묘하게, 표식 없는 규율 양식으로 작동하는 구조화된 위계이며, 백래시에 선행한다"고 썼다. 복지부가 말하는 추계 자료 같은 '객관적 사실'은 알고 보면 성차별적 시각에 입각해 있거나, 탈맥락화된 '부조리한 현실'이다. 공기처럼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특이할 것도 없는 여성혐오다.

한편 백래시는 '여성들이 일정 수준의 성취를 이뤘다는 자각에서부터 출발한' 이에 대한 반격이다. 여가부 폐지 주장이 전형적인 백래시에 속한다. 여권의 신장으로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여가부의 존재로 말미암아 남성이 역차별당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이를 없애자는 '반동'이다.

그러나 박 차관의 발언이 증명하듯, 여성혐오가 살아 숨 쉬는 한 여전히 여가부는 필요하다. 윤석열 정권이 만들겠다는 인구부처럼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 다루지 않고, '여성도 사람'이라는 원론적이면서도 급진적인 개념을 붙들 부처의 존재는 아직도 명확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일하고도 중차대한, '투표할 이유'
 

2022년 11월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 발족'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는 모습. ⓒ 이희훈

 
명확한 안티 페미니스트 백래시로서, 총선이 다가오자 여가부 폐지 문제가 다시 대두됐다. 윤 대통령을 위시한 국민의힘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서로 자신들이 '원조'라며 여가부 폐지에 관한 헤게모니를 쥐려고 애쓸 정도다. 반면 이에 대항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목소리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단, 윤 대통령이 장관을 지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전국여성위원회 이름으로 "총선을 앞두고 국민 갈라치기"라는 성명이 나온 정도다.

여성들도, 또는 여가부의 공무원들도, 2001년 여성부가 발족한 이래 계속해서 불거져 온 '여가부 흔들기'의 피해자다. 가뜩이나 예산도 인원도 적은 '초미니 부처' 여가부는, 오랜 세월 패배주의의 그림자로 공무원들이 사명을 가지고 할 일을 제대로 해내기 힘들었다. 그런 부처를, 이제는 수장마저 공석으로 두고 점령군을 보내 말라 죽이려 한다.

자기 스스로 여가부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정치권을 향해, 유권자들은 투표로 심판해야 한다. 식물을 넘어 고사 위기에 처한 여가부는 국내 유일의 '성평등 관점'을 지닌 부처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유일하고도, 중차대한 이번 총선 투표의 이유다.
덧붙이는 글 참고 문헌: 신경아, 2023, <백래시 정치>,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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