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06 09:39최종 업데이트 24.02.0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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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좋소> 스틸컷 ⓒ 왓챠

 
한국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인력난에 시달린다. 지난해 5월 구직자 300명을 대상으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직장 선호도 결과에 따르면 1순위는 대기업(64%), 2순위는 공공부문(44%), 3순위는 중견기업(36%)이었다. 중소기업의 선호도는 15.7%였다.

청년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을 피하는 이유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비해 낮은 임금과 열악한 복지, 그리고 불안정한 고용환경 때문이다. 위의 조사에서 청년 구직자들은 중소기업을 피하는 이유로 업무량에 비해 낮은 처우(63.3%)나 미래 성장에 대한 불투명성(43.7%)을 꼽았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고용의 약 95% 이상을 담당한다. 높은 임금과 두터운 복지, 안정적 미래를 보장하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갈 수 있는 구직자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구직자의 대다수는 중소기업에서 일해야 하는 운명이다.

그런데 청년 구직자들은 중소기업에 가느니 그냥 쉬겠다고 한다. 통계청의 지난해 말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청년들 중 그냥 쉬었다는 비율은 40%를 넘어선다. 저임금에 미래가 불투명한 중소기업에 들어가느니 그냥 쉬거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좋좋소'가 보여주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애환

고령인구의 증가라는 인구구조의 변화까지 고려하면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앞으로 더 가중될 것이다. 노동현장의 사례들을 보면 중소기업 스스로가 후진적인 경영 관행으로 청년 구직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측면이 크다. 정당한 대가 없이 과도한 열정을 강요하거나 노동자를 조직의 부품 하나로 취급하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최근 몇 년간 직장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유튜브 채널 '이과장'이 만든 웹드라마 '좋좋소'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평균 조회수 200만 회 이상을 기록하며 직장인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다. '좋좋소'는 '좋소좋소좋소기업'의 줄인 말로, '좋소기업'은 중소기업을 비하하는 멸칭이다.

회사의 규정이나 시스템이 없이 사업주의 기분에 따라 이뤄지는 운영방식, 쥐꼬리만 한 저임금, 열악한 복리후생. 자기 직장에서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핍진한 이야기를 소재로 중소기업 직장인의 공감을 끌어냈다.

극 중에서 주인공 조충범은 백수로 지내다 중소기업 정승네트워크에 입사한다. 사장 정필돈은 대기업 삼전물산 출신의 사업주다. 그는 매일 아침 9시에 국민체조를 하는 것을 체계를 갖춘 회사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직원들은 겉으로는 동조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바보 같은 짓이라 비웃는다. 체계를 갖춘 회사라 자부하는 정 사장은 근로계약서를 써달라는 조충범의 요구에 "그런 건 서로 믿고 하는 거지"라며 자리를 피한다.

주인공의 이러한 사연은 노동 현장에서는 현실이 된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장시간 근로, 근로계약서 작성이나 연차휴가 부여와 같은 기초적 고용 질서 위반, 승급 체계 없이 이뤄지는 사업주에 의한 주먹구구식 채용이나 부당해고가 청년 구직자들을 중소기업에서 떠나가게 만드는 원인이다.

우리는 '순간접착제' 입니까?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을 '순간접착제'같은 처지라고 느끼고 있다. ⓒ unsplash

 
서울시 금천구의 가산디지털단지에 입주한 기업에서 일했던 경희원(가명)씨는 사업장 사정으로 사장님이 2달 동안은 15일씩만 일하라고 했다. 한 달에 15일씩을 쉬고 다시 업무에 복귀해도 법적으로 평균임금의 70%가 보장되어야 하는 휴업수당은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순간접착제 같은 거네요? 카페가 망하지 않게 최소한만 일을 시켜서 임시로 지탱하는 거잖아요?"

쓰고 버려지는 불안정 노동자의 현실을 잘 포착한 김의경의 소설 <순간접착제>에서 주인공인 예은은 스윗마카롱이라는 디저트 카페에서 일한다. 어느 날 예은에게 카페 사장 언니는 낮 열두 시부터 2시간, 저녁 일곱 시부터 아홉 시까지 2시간만 아르바이트를 쓰겠다고 했다. 코로나로 손님이 줄어든 탓에 사장 언니도 불가피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예은은 자신의 처지가 순간접착제 같다고 느낀다.

코로나 감염병 사태로 수요가 줄고 고객이 감소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밑창이 떨어진 운동화를 바꿀 돈이 없어 순간접착제로 붙여가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예은과 같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희생시켜, 사업주의 안정만 도모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일까?

중소기업 노동 환경 개선, 정부는 관심이 없다

정부는 시급하게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노동시장의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 50인 미만의 중소 영세 기업이나 5인 미만 소상공인의 자영업 사업장은 인사 노무 관리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 곳이 드물다. 채용 후에 근로조건을 열악하게 변경하거나, 근로계약 내용과 다른 업무를 강요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약 300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부당해고가 발생해도 행정적 구제를 받기 어려우며, 연차휴가도 사용하지 못한다. 또한 안전보건 체계 마련을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안전과 휴식의 권리를 차별받을 이유는 없다. 부당해고 구제제도와 근로기준법의 연차휴가 조항, 그리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

일터 안전에 대한 기업의 관심과 투자를 구조적으로 강제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올해 1월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적용된다. 그런데 유예기간 동안 중소기업을 지원하여 안전보건 체계를 마련하도록 독려해야 했던 윤석열 정부는 앞장서서 지금 시점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2년 더 미루자고 주장한다.

국회는 이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시점부터 시행을 1년 미루고,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은 2년을 유예해 총 3년의 준비시간을 줬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 유예법안 통과 촉구 집회에서 중소제조업체와 건설업체의 80% 이상이 준비가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1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 남소연

 
중소기업을 설득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 준비에 필요한 지원은 하되, 법이 시행된 뒤에는 산재예방 의무를 위반한 기업에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서 기준을 세우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기업단체의 목소리만 대변하며 법의 적용을 유예하자고 한다.

정부는 2년을 더 유예한다면, 유예기간 동안 산업안전보건청을 설립해 스스로 안전보건 체계 마련 역량이 부족한 5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그 정도의 지원은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에서도 하고 있는 일이다. 

지난 2년간 고용노동부와 지역의 노동단체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 대비하자고 호소했던 것이 무색할 지경이다. 1년에 800명 가까이 산재 사망사고로 죽어가고 그중 80%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인 현실에서, 정부·기업의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유예 주장은 다시금 노동자의 안전에 대해 손 놓고 기다리자는 무책임한 태도에 가깝다.

지금이라도 중소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시행을 받아들이고, 일터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점검하고 산재예방 체계를 수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미 국회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지방자치단체가 산업재해예방조례를 통해 지역 중소기업의 산업안전보건 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지역에서는 노사정이 모여서 산재 예방에 지혜를 모을 준비가 되어 있다.

더 나아가 기업규모와 관계 없이 채용정보 포털에 각 기업의 '산재 발생 이력'이 기재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구직자들이 채용지원 시 안전한 일터인지 여부를 확인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업주가 노동자를 회사 운영의 동반자로 존중하는 태도 없이 단기간에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취급한다면, 중소기업을 '좋소기업'이라 조롱하며 기피하는 구직자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라면 가뜩이나 열악한 근로조건에, 안전마저 위협받는 일터에 가고 싶겠는가?
덧붙이는 글 이동철 기자는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상담소에서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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