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04 20:17최종 업데이트 24.01.0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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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의원 76명을 대표해 강민정, 김두관, 이형석, 이탄희, 김상희, 이용빈, 민형배, 이학영 의원은 지난12월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에 '위성정당 방지법 처리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 이탄희 의원실

 
제22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일이 100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선거제도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선거제도와 관련하여 여야 간 합의에 도달한 내용도 있다. 예를 들어 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하고, 지역구 253석을 소선거구-단순다수제로 선출하며, 비례의석을 47석으로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각 정당의 의석수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비례의석 배분 방식에서는 '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유권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병립형 비례대표제만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그 외 정당들은 위성정당 방지법 제정을 통해 사표를 최소화하고,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고, 정치 다양성을 증진할 수 있다는 이유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발언한 이후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즉,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총선 승리와 원내 제1당 유지를 위해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균형을 잡고 있던 무게 추가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기울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 소수정당 그리고 시민사회는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가 선거제도 개악이고, 정치개혁의 퇴행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국민이 바라는 선거제도가 무엇인지,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왜 개악인지, 그리고 선거제도 개편이 정치개혁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과 방안이 필요한지 다시금 생각해 보고자 한다.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는 선거제도는?
 

남인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이 바라는 선거제도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리하면 민심이 왜곡되지 않고 제대로 반영되는 선거제도이다. 국민은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되지 않고, 정당이 받은 득표율과 비례해서 의석이 배분되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들의 요구가 지지하는 정당을 통해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되며, 지역주의가 완화되길 바란다.

이런 점에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선거제도 개편 목표로 비례성과 대표성의 강화, 정치 다양성 증진, 지방소멸 위기 대응, 지역주의 정당구조 완화 그리고 국민이 수용가능한 선거제도 마련을 제시한 점은 바람직하다.

이러한 국민의 선거제도에 대한 바람은 지난해 5월 헌정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공론조사 결과에서 잘 드러난다. 즉, 공론조사 참여자들은 선거제도 변경 시 주요 고려 사항으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국민의 의견을 잘 반영하여 법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법과 정책에 책임을 잘 져야 한다는 원칙"이라고 응답했다(1차 조사 78%, 2차 조사 79%, 3차 조사 81%).

그리고 선거제도의 주요 내용과 관련해서도 지역구를 소선거구로 유지하고 전국 단위로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리고 비례대표 의석의 확대, 국회의원 정원 현상 유지 또는 확대를 선호했다. 이 같은 경향은 지난해 7~8월에 실시한 정치학자와 법학자를 대상으로 한 전문가 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론조사와 전문가 조사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사표 최소화, 비례성과 대표성 강화 그리고 정치 다양성 증진을 위해 소선거구 유지, 전국 단위의 비례대표 선출 그리고 비례대표 의석 확대 등이다. 그러나 현재 국회의 선거제도 개편 논의는 국민이 바라는 선거제도와 다른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논의의 축이 기울고 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가 개악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국민이 행사한 주권의 절반 가까이가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즉,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선거제도라 할 수 있다.  
 

국회의원 선거 사표율 변화 (17~21대) 제21대 총선의 사표율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가정하고 계산하였음. 비례대표 선거의 사표율은 비례의석을 획득한 정당의 비례득표수를 기준으로 계산함. ⓒ 김형철


둘째,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지 못하고 거대 정당의 과다대표와 군소 정당의 과소대표 현상을 강화한다(아래 표 참조). 그러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되었던 제21대 국회의원선거도 거대 정당의 과다대표 현상이 완화되지 않았다. 그 이유로 거대 정당의 위성정당 전략과 비례대표 의석의 과소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각 정당의 보너스율 (17~21대 국회의원선거, 단위 :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활용해 필자가 계산 ⓒ 김형철

   
셋째,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양당 독점화 경향을 강화한다. 선거제도 개편 목적인 정치 다양성 증진을 어렵게 하며, 양당이 의회를 독점한다. 제17대 국회의원선거 이후 거대 양당의 의석점유율은 평균 87.7%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위성정당이 없는 조건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거대 양당 의석점유율을 각각 계산했다.

그 결과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제21대 국회의 거대 양당 의석점유율과 같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거대 양당의 의석점유율이 86.7%로 낮아졌다. 이를 통해 정치 다양성 증진과 거대 양당의 독점을 약화하기 위한 선거제도는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아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거대 양당의 의석 점유율] (17~21대 국회의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활용해 필자가 계산 ⓒ 김형철

 
위성정당을 억제하려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근본적으로 위성정당을 막을 제도적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거대 정당의 위성정당 전략을 억제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현재 여야 간 합의된 내용인 지역구 의석 253석과 비례대표 의석 47석에 한정하여 위성정당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거대 양당의 이익 극대화 동기를 억제하는 것이다. 즉, 모든 정당은 선거에서 많은 의석을 획득하고자 하는 동기가 있다. 그러한 동기는 윤리적 또는 정치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정당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당한 또는 공정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유권자는 위성정당이라는 부당하고 공정하지 않은 편법을 동원한 정당에 책임을 묻는 투표를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위성정당 전략을 동원하는 정당에 대한 반대와 투표 거부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즉, 위성정당 전략을 반대하는 정당과 시민사회는 위성정당의 부당함과 불공정함을 공론화하고 투표 거부를 호소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둘째, 위성정당 방지법 제정을 통한 억제 방법이 있다. 지난해 다수의 의원이 위성정당 방지를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 지역구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은 의무적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추천 ▲ 지역구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명을 정당투표 용지에도 의무적으로 표시 ▲ 국가보조금 지급 및 삭감을 통한 억제 등이다. 최근 정개특위 제2소위원회에서 총선에 참여하는 정당은 반드시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 모두를 추천하도록 하고 위성정당에는 국가보조금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심사하고 있다.

셋째, 위성정당 또는 플랫폼 정당을 방지하기 위해 연합명부제(apparentement) 도입이 필요하다. 연합명부제는 연합을 형성한 정당이 자신들의 명부로 선거에 참여하고, 이 정당들의 표 중 의석 배분에 활용한 표를 제외한 남은 표를 합산하여 한 석이라도 추가로 획득할 가능성이 있는 연합을 선언한 정당에 이양해 주는 것이다.

이 제도를 도입한다면 굳이 위성정당이나 비례연합정당 등 플랫폼 정당 또는 가설 정당과 같은 새로운 정당을 선거에 임박하여 만들 필요가 없다. 그리고 선거 후에도 연합을 선언한 정당 간 정책연합이 지속됨으로써 연합정치를 제도화하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연합명부제를 통해 정당 간 정책연합으로 다수 의석 확보와 의회 운영이 가능해 거대 양당이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위한 위성정당이나 비례연합정당을 만들려는 동기를 억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위성정당 방지를 위한 방법으로 비례대표 선거에 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정당의 조건으로 선거일로부터 일정 기간 전(선거일 전 1년 또는 120일)에 창당하여 활동한 정당으로 한정하는 법 조항을 만들 필요가 있다.

위성정당이나 선거연합정당 그리고 신당 등은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다. 따라서 유권자는 그 정당이 지향하는 목표와 정책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를 모르고 몇몇 인지도 있는 인물만 보고 선택하게 된다. 그 결과 선거는 정책보다는 인물 또는 연고 중심의 경쟁이 이루어지며, 밀실 협상을 통해 합당 또는 분당이 이루어진다. 이런 급조 정당을 막아야 국민에게 충분한 정보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정당의 책임정치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것인가?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과 정치개혁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의 권역별 병립형 선거제도 개악 시도를 규탄하며 연동형 비례제 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결론적으로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국민이 바라는 선거제도 개편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역행하는 선거제도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거대 양당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선거 승리라는 정당의 이익을 국민의 요구보다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위성정당의 딜레마를 피해 갈 방법이 필요한데 그것이 병립형 비례대표제라고 보고 있다. 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할 경우 과반 의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위성정당을 만들어야 하지만 그 경우 국민의 지탄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거대 양당은 국민의 지탄을 피하고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획득할 수 있는 선거제도로서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회의 선거제도 개편 논의는 국민의 기대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이해당사자인 정당들의 이익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혼란스럽고 지저분한 협상의 모습을 보인다. 이와 같은 선거제도 개편 과정을 계속해서 지켜봐야 하는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계속 맡겨야 하는가?

이제는 이해당사자인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 참여해서 선거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선거제도 개혁 기구에서 선거제도 안을 만들어 국회에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 안이 구속력을 갖기 위해서 두 가지 안을 만들고 국회는 두 가지 안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선거제도를 결정할 때 국민이 직접 참여하고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주권의 원리에 부합한다. 또한 선거제도 개편 논의의 주체를 국민이 참여하는 개혁 기구로 할 경우, 국민은 더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숙의를 통해 선거제도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확정된 선거제도라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형철 /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 ⓒ 김형철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형철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한국선거학회 회장 및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부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민주주의와 정치제도로서 민주주의 질적 심화에 영향을 주는 정치제도의 효과에 관한 것입니다. 특히 비교 연구의 관점에서 선거제도와 정부형태의 효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 <대한민국 민주화 30년의 평가>, <민주주의 강의 3 제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치적 효과>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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