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8 15:21최종 업데이트 23.11.2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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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4일간의 임시휴전에 합의한 22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당한 가자지구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이날 양측에 억류된 인질과 수감자들을 맞교환하는 조건으로 일시 휴전에 들어갔다. ⓒ 연합뉴스


지난 21일 밤(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인질 교환을 위한 4일간의 '인도주의적 교전 중단'에 합의했다. 40일 넘게 이어진 전쟁에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이스라엘은 합의 기한 후 더욱 강도 높은 공격을 분명히 했다. 24일 아침 합의 이행 시작 직전까지 폭격도 지속했다.

고작 4일이지만,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멈추면 그나마 구호물품이 반입될 수 있다. 가자지구는 잇따른 폭격과 전기·상하수도 중단에 연료와 식량·식수마저 고갈된 지옥 같은 상황에 있다. 다치고 병들고 굶어서 죽어가던 230만 명 가자지구 사람들에게 숨통이 트일 거라는 안도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곧 다시 죽음의 구렁텅이로 떠밀 사람에게 잠깐 숨통을 트여주는 것을 우리는 인도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가자지구에서만 이미 1만 4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전체 사망자의 70%는 어린이와 여성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공격한다며 북부 주민에게 남부로 대피하라더니, 이제는 남부 주민에게도 집을 떠나 대피하라고 한다. 북부도 남부도 아니면 대체 어디로 떠나야 한단 말인가.

폐허가 된 북부에서 피난 온 주민까지 더해져 평소의 수 배 인구가 밀집한 남부 지역에도 이스라엘은 이미 폭격을 가하고 있다. 남부로 몰아넣은 전체 주민을 이집트로 내쫓은 뒤 가자지구를 점령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하마스 공격이라는 명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한 채 집중 공격을 퍼부으면서 역대 어느 전쟁에 비해서도 짧은 기간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 2007년부터 가자지구 육·해·공 봉쇄와 통제를 해 온 이스라엘 입장에서 전면 봉쇄는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미 지난 16년간 가자지구는 하나의 감옥과 마찬가지였다. 더욱 심각한 상황은 피해의 규모와 파급력이 어느 곳보다 클 수밖에 없는, 병원을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가자지구 북부 인도네시아 병원에서 대피한 팔레스타인 부상자가 20일(현지시간) 치료를 위해 남부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 도착하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이스라엘군이 베이트 라히아에 있는 인도네시아 병원을 공습해 1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10월 17일, 가자지구 내 유일한 암 병원인 알-아흘리 아랍 병원 폭발로 수백 명이 사망했다. 11월 11일에는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알-시파 병원을 포위한 채 수일간 폭격 후 급습했다. 탈출하려던 사람은 총에 맞아 죽었고, 생명유지 장치를 달고 있던 환자, 인큐베이터에 있던 조산아는 전기가 끊겨 사망했다. 11월 20일에는 가자지구 북부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환자를 치료하던 인도네시아 병원이 폭격 대상이 돼 환자와 보호자 등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폭격 전 알-시파 병원에는 1만 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자지구 내 대다수 병원 운영이 중단됐고 부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알-시파 병원에는 수용 규모 이상의 환자와 의료진은 물론, 병원이 그나마 안전할 거라 믿고 대피해 있던 피난민까지 모여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 그나마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병원을 떠나 다시 피난을 떠났다. 알-시파 병원에는 여전히 수백 명의 움직일 수 없는 환자와 의료진이 남아있다.

이스라엘군은 알-아흘리 아랍 병원 폭발을 두고 '팔레스타인의 로켓 오발 탓'이라고 주장했다. 알-시파 병원 공격에 대해서는 '하마스의 본거지'라는 핑계를 댔고, 인도네시아 병원에 대해서도 같은 구실을 반복하는 중이다. 인도네시아 병원의 설립과 운영을 지원해 온 인도네시아 민간단체 의료긴급구조위원회(MER-C)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스라엘은 이들 병원이 하마스에 의해 사용됐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더라도 병원 공격의 명분을 댈 수 있으면 그만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0월 7일 이후 11월 20일까지 6주 동안 가자지구에서 164건, 서안지구에서 171건을 포함해 팔레스타인에서 335건의 의료시설 공격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가자지구 36개 병원 중 10개 병원만이 운영 중이고, 병상 수는 3500개에서 절반 이하인 1400개로 감소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따르면 11월 20일 현재까지 구급차 60여 대가 공격을 받아 55대가 파손되거나 운행이 중단됐다.

그나마 운영 중인 병원들은 수용 능력을 훨씬 초과했고 병원으로서 제 기능을 할 수도 없는 상태다. 이미 몇 주 전부터 연료 고갈로 보조 발전기조차 작동을 멈췄고,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 기타 필수물품은 물론 물마저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성질환자를 관리할 일차의료기관 대다수는 아예 전혀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가자지구 의료체계는 완전히 붕괴 상태다.

왜 병원을 표적으로 삼는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일시 휴전 이틀째인 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다친 환자들이 가자지구 알시파 병원의 침대에 앉아 있다. 이스라엘군은 전날 휴전 발효를 앞두고 알시파 병원 지역의 땅굴과 갱도를 파괴했다며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 연합뉴스

 
충돌 당사국은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의무기관의 고정시설이나 이동 의무부대를 공격하여서는 아니 되며, 항상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여야 한다. (1949년 제네바 협약 제1협약 제19조)

부상자, 병자, 허약자 및 임산부를 간호하기 위하여 설립된 민간병원은 어떠한 경우에도 공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항시 충돌 당사국에 의하여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1949년 제네바 협약 제4협약 제18조)
 
국제인도법(제네바 협약)은 전쟁 및 무력충돌 상황에서도 부상자와 병자를 치료하기 위한 의료시설과 구급차, 의료진을 보호해야 한다는 최소선을 규정한다. 이스라엘군의 병원 공격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스라엘이 병원 공격의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도, 미국 정부가 '병원 공격은 이스라엘 단독 작전'이라며 선을 긋는 데도 이러한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제네바 협약 가입/비준국이다.

국제법 위반 여부를 다투기 전에, 폭격을 피해 단지 생존을 위해 모여 있던 사람들을 조준한 공격이란 차마 이보다 더 비인간적, 비인도적일 수 없다. 이스라엘군에게 어린이와 여성, 장애인과 환자를 포함한 민간인이 얼마나 죽고 다쳤다는 통계는 다만 숫자로도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측지 못했던 결과가 아니라, 철저히 계획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표적으로 삼는 이유가 뭘까.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하나는 그나마 마지막까지 안전할 거라 여겨지는 병원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 다른 하나는 다치고 병든 사람의 구호와 치료를 막음으로써 그 어떤 회복과 재기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 종합하면 팔레스타인 사람의 정신과 신체, 사회 정치 체계를 총체적으로 절멸시키려 한다는 해석이다. 말 그대로 인종학살(제노사이드)이다.
 

가자지구 북부를 떠나 피란하려는 팔레스타인인들이 26일(현지시간) 가자시티 자이툰 지역의 도로를 따라 걷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인질 석방을 조건으로 일시 휴전을 연장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휴전이 끝나면 가자지구에서 총력전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유엔총회는 적대 행위 중단으로 이어지는 즉각적이고 항구적이며 지속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한다. (10월 27일 유엔총회의 '휴전 촉구 결의안' 제1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인도법에 따라 충분한 기간 동안 가자지구 전역에서 긴급하고 연장된 인도주의적 교전 중단과 인도주의적 통로 확보를 촉구한다. (11월 1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교전 중단 촉구 결의안' 제2조)
 
지난 10월 27일, 유엔총회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휴전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앞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10월 16일 최초 논의부터 수차례 합의에 실패하자 총회가 나섰다. 총회 결의안 채택 후 2주가 훨씬 지난 11월 15일이 되어서야 안보리는 간신히 '교전 중단 촉구 결의안'에 합의했다. 총회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유엔 헌장에 따라 회원국은 안보리 결정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

소수 강대국이 주도하는 유엔 안보리가 '국제 평화와 안보 유지'라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가운데, 전 세계 193개 회원국이 참여한 유엔총회가 휴전 촉구에 합의한 점은 분명 희망을 보여줬다. 하지만 너무도 뒤늦게 채택된 안보리 결의안은 그나마도 '휴전'이 아닌 '일시적 교전 중단' 촉구에 합의하며 그 한계를 분명히 했다. 국제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스라엘에 면죄부를 준다는 우려도 나온다.

무엇보다 미국은 유엔총회 결의안에 끝까지 반대했고, 안보리 결의안에는 기권했다. 영국은 총회 결의안과 안보리 결의안에 모두 기권했다. 결의안이 채택됐다 해도, 이들 강대국의 반대와 기권이 이스라엘에 주는 신호는 명확하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법과 도덕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 팔레스타인 인구의 85%를 내쫓고 이스라엘이 건국한 때부터 지금까지, 미·영 양국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저질러 온 수십 년 폭력의 공범이다.

전쟁 지지하며 인도주의 말하는 위선
 

10월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사실상 지상전에 돌입한 가운데 이날 회의는 안보리 이사국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요청으로 긴급 소집됐다. ⓒ 연합뉴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국제사회를 대표해 전쟁을 억제하기는커녕, 초기부터 이스라엘의 자위권 운운하며 이 전쟁을 지지했다. 미국은 수십 년간 이스라엘에 국방 예산을 지원해 오고 있으며, 이번 전쟁을 위해 무기도 직접 공급했다. 이스라엘이 군인과 민간인, 병원과 군 시설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 전면전을 시작할 수 있었던 데는 우파정부 집권과 같은 국내정치를 넘어, 이들 국가의 묵인을 넘어선 방조라는 국제정치가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다.

스스로도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배의 전범인 이들 국가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나아가 제국주의 식민지배의 동맹국이다. 민간인 피해와 병원을 표적 삼은 공격이 늘어나며 국제사회의 비판이 고조되자, 짐짓 한 발 빼며 인도주의를 말하는 중이다. 제 체면 지킬 '마지노선'이 무너지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라며 발뺌하는 격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아니지만, 11년 만에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자축하던 한국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을 쫓아 유엔총회 결의안에 기권하면서, "하마스 규탄이 빠졌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한국의 대이스라엘 무기 수출액은 지난 10년간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10일 열린 제42회 국무회의에서 "무장단체 하마스"를 언급했을 뿐,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벌인 전쟁범죄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유엔총회 '휴전 촉구 결의안'에는 기권해 놓고, 10월 29일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민간인 보호를 위한 국제법 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내용만 홍보했다.

이 전쟁의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뿌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점령에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더 말해야 할까. 10월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한국 정부가 손쉽게 규정하는 것처럼 단순 테러조직이 아니다. 2006년 팔레스타인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며 압승했고 2007년부터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자치정부이자 정당이다.

이러한 맥락은 소거한 채, 이들 국가 정부는 하마스의 공격만 규탄하며 이스라엘의 반격을 한껏 옹호했다. 전쟁을 지지하며 인도주의를 말하는 위선은 둘째 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종학살에 이들 국가 모두가 책임이 있는 이유다.
 

전국민중행동 회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 대사관앞에서 ‘학살 중단! 팔레스티안에 자유를! 반인도적 전쟁을 끝내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활용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지난 11월 8일, 팔레스타인 인권단체들은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학살 등 전쟁범죄에 대해 이스라엘에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하는 법적 서류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출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아이작 헤르조그 대통령,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에 대한 체포 영장 발부를 청구했다.

13일에는 또 다른 인권단체들이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에 대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인종학살을 막지 못하고 이에 공모한 책임을 물어 연방 소송을 제기했다. 이스라엘 정부에 무조건적인 군사·외교적 지원을 지속하고, 군사 전략을 긴밀히 조율하고, 이스라엘의 전면 공격을 막으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전쟁범죄에 기여했다는 이유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군사·외교적 지원 중단 명령을 요청했다.

전 세계 시민사회는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을 비판하며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저항에 연대해왔다.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데 이스라엘의 이번 전면공격이 가진 불법성과 잔혹성이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지만, 팔레스타인 민중과 전 세계 시민사회의 지치지 않는 투쟁이 작은 희망을 만들어 냈다. 전 세계 시민사회는 각국 이스라엘 대사관, 미 대사관을 압박하는 시위도 지속하고 있다. 한국 시민사회도 이러한 전 세계적 운동의 일부다.

국제법에 따른 인도주의 최소선을 준수한 전쟁이라고 인도적일 수는 없다. 팔레스타인 민중과 전 세계 시민사회는 일시적 교전 중단이나 구호를 넘어, 완전한 휴전, 근본 원인인 군사점령을 끝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파렴치한 부정의를 종식하고 가해자에 책임을 묻는 것. 진정한 인도주의적 실천이자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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