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1 07:07최종 업데이트 23.11.01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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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가짜뉴스의 조직적 유통을 단호히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 연합뉴스


"가짜뉴스를 지속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유통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가 단호한 의지로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 한 말일까? 거의 모든 대통령이 유사한 발언을 했다. 용어와 대응 태도는 달랐지만. 어떤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했다. 어느 정부는 해명과 홍보로 대응했다. 어떤 때에는 감내했다. 정답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권에 들어온 이래 가짜뉴스에 시달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공인이나 유명인이 치러야 하는 업보 같은 것이다. 무명씨가 가짜뉴스로 고통받을 일은 드무니까.

가짜뉴스는 사실이 아닌 뉴스다. 오보(誤報)와 겉모습은 같다. 오보는 잘못된 취재나 취재원의 거짓말에 기반한 뉴스다. 언론이 존재한 이래로 늘 있었다. 오보임이 드러나면 기자나 언론사는 이를 수정 혹은 삭제한다.

오보와 가짜뉴스는 분리돼야 한다. 가짜뉴스는 말 그대로 가짜로 짜낸 뉴스다. 가짜임을 알고, 혹은 가짜일 수 있다는 개연성이 있음에도 만들어 유통한다. 오보임을 알고도 뉴스라고 계속 주장하면, 그땐 가짜뉴스 영역으로 넘어가는 셈이다.

가짜뉴스를 대처하는 제일 좋은 방안은 시장의 선택이다. 가짜뉴스 생산자와 매체를 소비자와 수용자가 외면하면 된다. 어찌 됐든 표현, 언론의 자유 영역이기 때문이다.

세상일이 꼭 그렇지 않다. 착한 생산자·소비자가 있지만 나쁜 생산자·소비자도 있다. 가짜뉴스로 나쁜 생산자·소비자가 당장의 이익을 가로챈다. 착해서 손해를 보고, 악해서 이익을 얻으면 안 된다. 정부의 절제된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200톤의 비트코인' 가짜뉴스까지

문재인 정부에서 가짜뉴스 대응은 주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과제였다. 가짜뉴스가 나도는 공간이 방통위 담당인 디지털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일부 극우 유튜버, 팟캐스터, 블로거 등 콘텐츠 생산자들이 기승을 부렸다. 돈과 명성을 노리고 근거 없는 가짜뉴스를 생산·유통했다. 선의의 혹은 무지한 소비자들은 재미로만 보고 듣는다. 당하는 사람에게 가짜뉴스는 한번 빠지면 몸을 뽑아내기 힘든 진창이다.

뉴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뉴스 앞에 '진짜'라는 수식어를 써야 한다면 그만큼 오염이 심해졌다는 뜻이다.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위험할 지경이다.

가짜뉴스가 발생했을 때 우습게 보기 십상이다. '멀쩡한 사람이 그 말을 믿겠느냐?' 아니다. 믿는 혹은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초기 대응이 조금만 늦어도 막기 힘들어진다.

대표적인 예가 가상화폐 가짜뉴스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첫해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았다. 미래 기술이며 새로운 먹거리로 일컬어졌다. 우려도 나왔다. '봉이 김선달의 대동강물 팔아먹기 같으니 규제해야 한다'라는 목소리다.

청와대 내에 소규모 태스크포스(TF)팀이 꾸려졌다. 하루는 TF 회의에 "문 대통령이 200톤의 비트코인을 보유 중인데, 값어치가 떨어질까 고민한다는 내용이 유포됐다"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참석자들은 피식피식 웃었다. 가상화폐에 무게가 있다는 말 자체가 황당했다. 나중에 보니 이를 사실로 믿는 혹은 믿고 싶어하는 이들이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200톤 보유설은 문 대통령의 금괴 200톤 보유설에서 유래한 듯했다. 앞서 연재 '문재인의 말과 글' 3화 ( "내가 금괴 200톤..." 문 대통령 말에 터진 폭https://omn.kr/25t3t) 에서 언급한 바 있다. 2012년 대선 때 문 대통령이 금괴 1000톤을 갖고 있다는 가짜뉴스가 나왔다. 얼마 있다가 보유량이 200톤이라는 새로운 가짜뉴스가 나왔다. 뉴스 생산자조차 1000톤은 너무 많았다고 생각했나 보다.

200톤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 보유량보다 많다. 한국은행은 2023년 6월 2일 '한국은행 보유금 관리현황 및 향후 금 운용 방향' 자료에서 "금 보유량은 2013년 이후 104.4톤"이라고 밝혔다. 금 200톤 가격은 2023년 11월 현재 17조 원이 넘는다. 진짜 가졌다면 한국 1위 부자다.
 

2016년 1월 27일 더불어민주당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공개한 당시 문재인 대표의 퇴직선물. 금화 모양의 초콜릿을 한 상자 가득담아 '금괴 사건'을 패러디했다. ⓒ 더불어민주당


젊은이들은 문 대통령의 금, 비트코인 보유설을 유머 소재로 썼다. 2016년 1월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마쳤다. 당 디지털미디어국 젊은 직원들은 금화 모양 초콜릿을 퇴직금이라고 선물했다. 행사 장면을 소셜미디어에 게시하면서 "금괴는 댁에 많을 테니 금화를. 대표님 감사했습니다"라는 글귀를 올렸다.

그해 11월 대전지역 대학생들과 시국 대화 행사 때였다. 한 학생이 "금괴왕 진짜예요?"라고 물었다. 문 대통령은 "제가 금괴를 한 200톤 갖고 있죠"라고 말했다. 폭소가 터졌다. 문 대통령은 "그걸로 젊은 사람들 일자리 문제 다 해결해드릴게요"라고 덧붙였다. 환호가 터졌다.

미디어 리터러시(다양한 매체에서 유통되는 메시지를 이해·이용할 능력)가 떨어지는 이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문재인이 자백했다. 특검을 해야 한다"라는 주장도 나왔다. 비트코인 200톤 보유설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론 우습고, 한편으로 절망적이다. 거짓이 사실을 이기는 현실이라니. 작가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Clive Staples Lewis)는 1952년 소설 <나니아 연대기 – 새벽 출정호의 항해>에 이렇게 썼다.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가장 비겁한 행동은 사실에 대해 눈감아 버리는 것"이라고. 사실을 직시하는 일은 실은 용감한 행동이다.

'북풍'식, '카더라'식 가짜뉴스

북풍(北風)식 가짜뉴스도 잊을 만하면 나왔다.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 때다. 북측이 송이버섯 2톤을 선물했다. 남측은 화답의 의미로 제주 귤 200톤을 군 수송기로 보냈다. 제주 귤이 풍년이어서 가격이 내렸을 때다.

야당에서 "수송기로 북에 보냈다는 귤 상자 속에 귤만 들었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라는 주장이 나왔다. 정상회담 대가를 보내지 않았느냐는 의혹이다. 출처도, 증거도 없었다.

남북문제는 폭발력이 큰 데다 여진이 오래간다. 비공개로 진행되는 일이 많아 가짜뉴스가 끼어들 여지도 많다. 청와대는 즉각 기자단에 '달러 북송설'을 부인했다. 여당인 민주당도 공개적으로 부인하며 확산을 막았다. 야당은 이 주장을 오래 끌고 가지 않았다. 근거가 없으니까. 극우 유튜버들은 야당 주장을 근거로 정상회담 대가설을 계속 유통했다.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을 요구하고 '슈퍼챗과 별풍선' 등으로 금전적 이익을 취했다.

2018년 가을 쌀값이 뛰었다. 북한에 쌀을 몰래 보내 가격이 올랐다는 가짜뉴스가 나왔다. 가격 상승은 생산 감소와 소비 둔화, 정부의 방출 시기 지연 등이 이유였다.

정부양곡 창고에는 쌀 160만 톤이 보관돼 있었다. 쌀값이 뛸 만큼 반출하려면 몇백, 몇천 포대로는 어림도 없다. 몇 포대라면 몰라도 남의 눈을 피해 대량으로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가짜뉴스는 번졌다. 정부는 10월 전례 없이 정부 양곡창고를 언론에 공개했다.
 

지난 2월 20일 자 <중앙일보> 文정부 靑인사 "성남공항 통해 달러뭉치 北으로 나갔다" ⓒ 중앙일보


'카더라' 식 뉴스는 계속 나온다. 정권이 바뀌고 해를 넘긴 2023년 2월 20일 중앙일보에 칼럼이 실렸다. <文정부 靑인사 "성남공항 통해 달러뭉치 北으로 나갔다">는 제목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북 송금이 한 푼도 없었을까. 이와 관련, 필자는 주목할만한 말을 들었다. 2018년 세 차례 열렸던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공직자에 따르면 대통령 전용기 등 방북 항공편이 오갔던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북한으로 규정을 초과하는 거액의 달러 뭉치가 반출됐고, 돌아오는 비행기에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세습 정권 우상화와 공산주의 이념 서적이 가득 실려 왔다는 것이다. 당시 서울공항에는 출입국관리를 담당하는 법무부와 관세청 파견 공무원들이 있었지만, 신고 없이 반출할 수 있는 한도(1인당 1만 달러)를 넘긴 달러 뭉치가 아무런 제지 없이 북측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기자가 취재한 내용으로 기사를 쓰는 건 하등의 문제가 아니다. 취재한 내용이 자기와 친한 측에 불리하다고 안 쓰는 게 문제다. 권력에 맞서는 기사를 쓰기는 쉽지 않지만, 마냥 어렵지도 않다. 어떤 경우에도, 불리해도 진실만을 쓰기가 어렵다.

그 모든 경우를 감안해도 이 칼럼에는 결격 사유가 있다. 민감한 팩트를 다루는 기사는 '크로스 체크'가 기본이다. 서로 다른, 그러면서도 비슷한 급의 취재원이나 자료를 대조·검사해야 한다. 이 칼럼은 익명인 취재원 한 명이 내놓은 주장을 기반으로 썼다. 근거나 증거를 대지 않았다. 다른 취재원이나 당국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려고 노력했는지 드러나 있지 않다. 후속 보도도 없다.

두 번째, 반론이 없다. 논란이 예상되는 기사에는 반론을 달아줘야 한다. 상대방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하고 전화를 뚝 끊었다고 치자. 그러면 '문재인 전 대통령 측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라고 기사에 써야 한다. 여러 번 취재해도 응하지 않으면 '거듭된 취재에도 답하지 않았다'라고 쓴다. 이 칼럼에는 반론의 기회를 준 자취가 없다.

지금도 어떤 이들은 칼럼을 공유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이적성을 비난한다. 문재인 정부 능력을 지나치게 높게 봤다.

이유는 이렇다. 달러 뭉치와 이념 서적을 '비행기 가득' 실어 나르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전제가 있다. 관련된 이들 모두를 속여야 한다. 청와대 외교안보실과 비서실, 경호처, 출입기자단,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관세청, 서울공항, 행정안전부 의전실 등 소속이 제각각인 이들을. 아니면 모두 입을 닫게 하거나. 한국에 그런 정부는 있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2022년 7월 대통령 전용기에 수행원이 아닌 민간인이 탔던 사실도 탄로 나는 세상이다.

진짜냐, 가짜냐만 기준이어야

문 대통령은 악의적 가짜뉴스에 정부가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2019년 1월 8일 국무회의 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 정책을 부당하게 또는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고 폄훼하는 가짜뉴스 등의 허위 정보가 제기되었을 때는 초기부터 국민께 적극 설명해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가짜뉴스를 지속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유통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가 단호한 의지로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정보의 유통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특히 가짜뉴스 등 허위 조작 정보는 선정성 때문에 유통속도가 더욱 빠릅니다.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특히 유념해 주기 바랍니다. 효과적인 대응 방법과 홍보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별로 전문성 있는 소통·홍보 전담 창구를 마련해 주기 바랍니다."


지시 사항을 정리해 보면 '지속·조직적 유통에는 단호하게 초기에 대처'토록 했다. 그나마 수사나 압수수색보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정보 차단이나 삭제 등 제한적 조치였다. 외려 '국민께 설명, 소통·홍보 강화'에 방점이 찍혔다.

문 대통령은 모든 가짜뉴스를 정부가 강력하게 대처할 대상으로 꼽지 않았다. 문제로 짚은 가짜뉴스는 뭘까. '이낙연 총리의 북한 지도자 충성 맹세'처럼 전제 조건이 있다. '사실관계가 다툼의 여지 없이 확정됐을 것, 실질적 피해가 발생할 것, 고의로 퍼트릴 것' 등이다.

본인의 '금괴 200톤 보유설'은 스스로 터무니없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강력 대처 대상에 넣지 않았다. '내가 알기에 여지없는 가짜뉴스'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남들이 있다. 즉, 사실관계가 다툼의 여지 없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없는 걸 증명하기는 참 어렵다.

반면 '이낙연 총리의 충성 맹세'는 방명록이 근거다. 해당 문구를 북한 지도자가 아니라 베트남 전 지도자를 향해 썼다는 사실은 확정돼 있다.

당시 방통위는 요즘과 달리 가짜뉴스에 강하게 대처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가진 칼의 날카로움을 알기 때문이다. 필요한 부분보다 조금만 더 베도 '언론탄압'이라고 비난받게 된다. 초기 대응에서 손을 놓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일부 콘텐츠 생산자에게 '가짜뉴스를 돌려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인식을 심어 준 것 같다. 절제된, 그러나 명확한 대처로 일벌백계(一罰百戒)해야 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가짜뉴스는 근절해야 한다. 여야도, 진보·보수도, 전·현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냐, 가짜냐만 기준이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가짜뉴스는 가장 정쟁화된 단어가 됐다. 논쟁은 유불리 여부로 흘러간다. '우리에게 불리하면 가짜뉴스'라는 식이다.

가짜뉴스를 가리는 팩트 체크(Fact Check)는 상대 주장을 정치적으로 대응·반박하는 식이다. 언론도 자신 주장에 유리한 팩트 체크만 해서 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우려할 부분이다. 정부나 정당이 팩트 체크 역할을 자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정파성만 강화하기 때문이다. 팩트 체크할 근거를 제시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가짜뉴스를 점검할 때 참고할만한 곳이 있다. 국제 팩트 체킹 연맹(IFCN)이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인 'SNU팩트 체크센터' 등 팩트 체크 기관 연대체다. SNU팩트 체크센터가 어려움에 빠졌다. 팩트만 나열하면 이렇다. 2023년 1월 국민의힘이 SNU팩트 체크센터를 수 차례 비난했다. 2023년 8월 포털업체 네이버는 SNU팩트 체크센터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가짜뉴스를 정부가 판정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가짜뉴스의 정파성 문제가 노골화한 형국이다. 전직 기자, 청와대 비서관으로서가 아니라 시민의 한 사람으로 많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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