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0 05:46최종 업데이트 23.09.20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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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3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14화 "'중국인은 괜히 싫다'는 사람들에게... 제가 겪은 일입니다" ⓒ 오마이뉴스

 
지난주 연재('중국인은 괜히 싫다'는 사람들에게... 제가 겪은 일입니다 https://omn.kr/25lgr)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보고 정말 놀랐다. 지난 연재를 올리며 평소보다 훨씬 무덤덤한 반응을 예상했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내 글 대부분이 인종, 빈부, 종교 등 다양한 사례를 언급했음에도 댓글은 철저히 중국(인)에 대한 호불호에만 집중된 것이었다(물론 제목에 '중국인'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쓴 제목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중국인에 대한 관심은 정말 뜨겁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래서 다른 내용을 미루더라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번 더 하려고 한다. 우리의 맹목적 편견, 사회적 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악용되기 쉬운지 이번에는 외국이 아닌 우리의 아픈 이야기를 하겠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먼저 밝히자면, 나는 1966년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서 태어났고 지금껏 수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버지는 경기도 광주, 어머니는 경기도 수원 분이다.


청소년 시절이던 1980년대부터라고 기억한다. 어른들의 대화에서 심심치 않게 "전라도 사람들은"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런 식이다. "전라도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믿지 못한다", "전라도 사람들은 위험하고 간첩이 많다", "전라도 사람과 사업을 하거나 결혼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그런 전라도 사람들의 괴수가 김대중이라는 것을 몇 년 후 알았다. 어느 날 '김대중이 우리나라를 뒤엎으려고 내란을 획책한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신문 헤드라인을 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가 1980년 5월인 거다. 과장이 아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원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아무튼 그때부터 한동안 나도 사투리 구분도 하지 못하는 전라도 사람과 김대중을 위험하고 무서운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대학에 갔고 거기서 김대중과 전라도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을 듣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런 일도 있었다. 대학 1학년 때 단짝 친구가 자기 고향집 모내기 좀 도와달라고 해서 충북 어느 시골에 갔다. 그때만 해도 이앙기 같은 기계 없이 여러 사람이 길게 늘어서서 모를 심던 때였다.

일이 힘드니 주변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힘겨움을 이겨야 했다. 그런데 그중 예비군복을 입은 어느 30대로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유독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과 따돌림을 받았다. '전라도 사람'이었다.

그중 누군가는 자기가 '군대에서 독한 전라도 고참을 만나 죽도록 고생했다'며 '전라도 사람은 다 나쁜 놈'이라고 면전에 대고 이를 갈았다. 놀랍게도 주변 사람들이 그를 말리는 게 아니라 비슷한 사례를 꺼내 함께 비난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듣던 당사자가 구시렁대면서도 당연하게 여기더란 것이다. 내가 나서서 뭐라고 하지는 못했지만, 참으로 불의하다고 생각했다.

익명을 무기로 엄청난 적대감
 

1980년 7월 4일 자 <경향신문> 기사 "김대중 등 37명 내란음모 혐의". 1980년 신군부세력이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가들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내란음모를 계획하고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일으켰다는 혐의를 조작해 군사재판에 회부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은 2004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청년이 된 나는 김대중과 전라도 사람을 더는 청소년 때처럼 생각하지는 않게 됐다. 그리고 김대중과 호남에 대한 악착같은 저주가 오랜 군사정부의 기획이었음이 나중에 확인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습적 편견은 참 오래갔다. 특히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부활한 대통령 선거 때마다 기성세대의 입은 더욱 거칠어졌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다면 북한이 곧 쳐들어올 것이고 전라도 사람들은 만세를 부를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1997년 마침내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했고 이후 26년이 지나며 호남이 강세인 정당이 두 번 더 집권했지만, 북한은 쳐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세상에 수없이 많은 거짓말쟁이, 사기꾼, 못된 사람이 있어도 그들은 전라도만 기억한다는 것이다. 뭔가 피해를 준 사람이 서울, 부산, 충청도, 경상도 사람이라 해도 아무도 '내가 서울, 부산, 충청도, 경상도 사람에게 사기당했다'고 말하지 않고 '그놈 나쁜 놈'이라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전라도 사람이면 유독 '전라도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했다'고 지역을 말하는 것을 보았다. 한국 현대사의 지역 차별은 정확히 말하면 일반적 지역감정이 아니라 호남 왕따였다. 그리고 지금은 수도권만 벗어나면 모든 지방을 다 무시하는 철저한 지방소멸이다.

수십 년이 지나서 지금 또 다른 표적을 중국(인)에서 본다. 곱지 못한 눈에는 오직 중국(인)만 보이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인종, 국가, 종족이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텐데, 유독 중국인만 콕 집어 나쁘다는 것은 이미 차별의식에 깊이 물든 것은 아닐까. 노파심에서 다시 말하지만 나는 중국(인)과 아무런 연고가 없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두둔하려는 마음도 없다. 오히려 개신교 목사로서 시진핑의 종교탄압과 중국의 수많은 인권탄압 사례를 규탄하며 가슴 아파한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무엇이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1초 안에 확신을 갖고 판단을 끝내 버리는 자동번역기가 있는 것 같다. 보수 또는 진보와 연결된 이분법적 사고, 진영논리 말이다. 너무 살벌하다. 한 단어나 문장이 나오면 그 즉시 보수 또는 진보와 연결 지어 무조건 지지하거나 혐오하는 사고다.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는 식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경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갈수록 커지고 있다. 페이스북은 자신과 관계있거나 성향이 비슷한 사람과 '친구'를 맺게 되므로 우호적인 반응과 '좋아요'가 쌓여가는 것을 보며 생각이 강화된다. 반면 포털사이트는 불특정 다수의 익명이 가능하므로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말이 많다. 생전 만나지도 못한 사람에게도 익명을 무기로 엄청난 적대감을 쏟기도 한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역지사지'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일대에서 열린 '2023 신촌글로벌대학문화축제'에서 외국인 학생들이 국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그 결과로 무자비하고 비인격적인 사회가 염려된다. 살다 보면 내 맘에 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인격적인 사람과 인간미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 등 이런저런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에 대해 평가는 할 수 있겠지만, 인종이나 국가, 지역이나 성별 등을 싸잡아 평가하는 일은 삼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무서운 집단적 증오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유대인이라서, 빨갱이라서, 미제의 앞잡이라서, 베트콩이라서' 죽여도 된다는 것이다. 혹시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중국(인) 아닐까?

'다른 나라에 가서도 동화되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모인다, 자기들만 최고인 줄 안다, 다른 나라에 침투하여 토착문화를 파괴하려고 한다, 더럽다.' 이 글이 가리키는 대상이 누굴까? 밑도 끝도 없이 물었다면, 특정 지역 사람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아돌프 히틀러가 쿠데타에 실패해 투옥 중 이를 갈며 쓴 <나의 투쟁>에 나오는 유대인에 대한 평가다.

우리는 스스로 중국인, 일본인과 다른 우수한 한국인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다른 인종에게는 중국인을 포함해 우리는 모두 동양인이다. 내가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면 똑같은 일을 내가 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갈수록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게 역지사지(易地思之) 아닐까 생각한다.

한 번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내 생각(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자. 특히 사람에 대한 평가를 정말 조심하자. 택배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늘 느낀 것은 가난한 사람, 길거리 장사하는 사람, 타지인들은 정말 무시 받고 홀대당하기 딱 좋겠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비슷한 일이 많이 나온다. "너희는 어떻게 저런 놈들과 함께 밥을 먹나? 예수도 혹시 한패(중국인, 빨갱이, 유대인…) 아니냐?"(눅 5:30) 원래 흔하게 눈에 띄는 사람들일수록 부딪힐 일이 많고 그래서 서로 더 무시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누구도 처음부터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곧 나도 언젠가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더 조심하자. 잘난 사람들이 살벌하게 만든 세상을 우리 '을'들이라도 좀 더 이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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