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4 06:48최종 업데이트 23.09.1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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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에 한 시민이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연금법은 5년마다 한 번씩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실시하여 국민연금 보장성과 재정상태를 점검하고 바람직한 제도 개혁안을 제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현 정부가 국민연금을 중요한 개혁과제로 내걸었는데 마침 올해가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실시되는 해여서 그에 따라 재정추계가 이루어지고, 그에 바탕을 둔 개혁안이 논의되어 지난 1일 공청회를 통해 발표되었다. 

그런데 재정계산위원회는 보장성 강화는 전혀 없이 보험료만 현재의 9%에서 12%, 15%, 18% 중 하나로 올리고 여기에 더해 연금 수급개시연령을 68세로 올리자는 개혁안을 제출하였다. 이러한 개혁안을 도출한 것은 재정안정론자가 다수를 차지하도록 재정계산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주요 원인이지만, 개혁안 논의에 앞서 제출된 재정추계 결과가 너무나 어두운 미래 전망을 그린 것이 전체 분위기를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기금은 2055년에 고갈되고 기금이 고갈된 후 고령인구 부양을 위해 미래세대는 30~34%에 육박하는 보험료를 내야 한다.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전망을 내놓으니 누가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얼마나 믿을만한가?
  
초저출산이 70년간 지속된다는 가정은 문제
 

김용하 재정계산위원장이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재정 안정화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엄밀함을 추구하는 경제학자들일지라도 미래 전망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미래 경제성장률을 전망할 때 세 개의 성장요인, 즉, 인구, 자본량, 생산성 전망치를 조합한다. 그런데 각 요인들의 전망치는 엄밀하게, 과학적으로 추계된 것인가?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첫째, 재정추계는 통계청의 출산율과 인구 전망을 사용했는데, 통계청은 2030년 중반에 출산율이 1.2정도가 되고 이후 1.2 출산율이 이 세기가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전망치는 어떤 인과관계를 동원하여 도출한 결과는 아니다. 다른 국가들과 우리의 과거 출산율의 움직임에서 발견한 규칙성에 근거해서 도출한 것이다. 올해는 합계출산율이 0.6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정도로 현실의 출산율이 낮다 보니 1.2라는 수준도 희망에 불과할 정도로 높은 전망치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재정추계가 전망하는 것처럼 향후 70년 동안 만일 출산율이 1.2에 머문다면 그것은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소멸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러한 출산율 전망이라면 이번에 보험료율을 올린다고 해도 5년 후 다시 올리고 그 다음 5년 후 다시 올리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즉, 출산율 1.2의 지속 하에서는 기금을 지키겠다는 것은 끊임없는 보험료 인상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국가가 사라져가는데 기금이 무슨 소용인가? 

이것은 인구 전망 방법론의 엄밀함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이다. 개인의 결혼과 출산 결정이 사회시스템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을 생각해보면 국가 정책이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선진국 중 어떤 국가도 1.2라는 초저출산율이 70년간 지속되는 것을 그냥 지켜본 국가는 없다. 심지어 저출산·양극화로 경제의 활력을 잃었다고 얘기되는 일본도 출산율을 올리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1.2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심지어 프랑스는 1.8이라는 매우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2021년 기준). 어쩔 수 없다고? 일단 프랑스처럼 가족복지 예산으로 GDP의 3%는 써보고 이야기하자.  
  
고령화에도 불구, 많은 여성 노동력을 그냥 놀릴 것인가? 

둘째, 재정추계의 문제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과 비교해 여전히 낮은 수준인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경활율)이 고령화가 심화되는 미래에도 여전히 매우 느린 속도로 OECD 평균에 접근해 간다고 가정하고 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조만간 사회 전 영역에서 일할 사람이 턱없이 부족해질 것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아래 통계는 고령화가 심각한 일본에서 생산가능인구의 경활율이 매우 높은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일본의 15~64세 인구의 경활율은 1990년대에 OECD 평균을, 2010년대에 주요 7개국(G7) 평균을 상회하였고 최근에는 80%에 육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들과의 격차를 좁혀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재정추계에서는 이러한 격차가 줄어들지만 미래 100여 년에 걸쳐 서서히 해소된다고 줄어든다고 가정하고 있다(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2022년 9월 30일 제4차 회의 회의자료 노동투입 전망). 
 

주요 선진국 15~64세 경제활동참가율 ⓒ OECD Labor Statistics

 
우리나라의 경활율이 낮은 것은, 특히 여성의 경활율이 낮기 때문이다. 2019년에 30세~64세 남성의 경활률은 거의 90%에 육박하는데 여성은 60%대 전반에 머물러 있었다(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 여성의 경활율은 왜 이렇게 낮은가?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에서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원자료를 활용하여 연령, 학력, 가구주 여부, 혼인상태 등 개인 특성이 경활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였는데 추정 결과 기혼 상태일 때 여성의 경활률이 낮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러한 추정 결과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결혼, 출산,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는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일가정 양립하기 어려운 사회 시스템이 여성에게 일이냐 가정이냐를 선택하게 하고 그래서 출산율도 낮게 만들고 경활율도 낮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일할 사람이 부족해진다고 하는데 외국에서 이민을 받는 것을 고려하기보다 국내 여성들의 노동력 활용 방안을 먼저 찾아야 할 일이다. 가족복지 예산 확대와 더불어 양육과 일터에서 남녀평등이 강화되어야 할 일이다.  

로봇화에도 불구, 생산성과 자본축적은 크게 둔화할 것으로 가정

셋째, 인구와 함께 경제성장률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인 생산성과 자본축적에 대한 전망도 문제가 있다. 생산성 전망은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이루어졌는가? 그렇지 않다. 총요소생산성을 결정할 것으로 기대되는 요인들, 예를 들어 1인당 GDP, 무역자유도, 법제 및 재산권 보호, 금융, 노동, 기업활동 규제 등을 가지고 한국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을 설명하고자 회귀분석을 했을 때 유의미한 추정결과를 얻기 어려웠다(신석하·황수경·이준상·김성태(2013), <한국의 장기 거시경제변수 전망>, 한국개발연구원).

그래서 재정추계에서는 우리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었으므로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과거 실적치의 추세보다 낮은 수준을 보일 것이라는 직관에 의존하기로 결정했다.

직관적인 방법론을 쓰지만 그래도 뭔가 근거는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재정추계에서는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낮은 경향이 있으며,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2011~2019년에 OECD 국가 중 하위 32.2%에 해당하므로 기준시나리오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을 OECD 상위 25%와 50% 사이의 값인 1%로 가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로봇과 인공지능(AI) 기술이 향후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아세모글루와 레스트레포((Acemoglu and Restrepo, 2017)가 고령화가 빠를수록 자동화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져 1인당 GDP가 높다는 실증분석 결과를 제출하였는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 아무래도 로봇화 투자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럼 재정추계에서는 투자에 대해서 어떻게 가정하는가? 재정추계에서는 투자 이론에 기대어 미래의 자본 축적 경로를 전망하는데, 투자 이론에서 미래 노동공급의 감소와 총요소생산성 증가율 둔화가 자본 생산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본수요가 줄고 자본축적이 둔화된다고 가정한다. 결국 빠른 고령화 진행이 로봇화 투자를 요구할 것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가정으로부터 투자를 전망하고 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 엄밀하지 않아... 근본적 문제 해결 우선돼야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연금행동) 관계자들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재정계산위를 규탄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재정계산위원회는 이날 공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 관련 보고서를 공개했다. 복지부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정부 개혁안이 담긴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 연합뉴스


현재 국민연금 재정추계는 70년을 전망의 시간적 범위로 잡아서 인구 전망, 경제 전망, 국민연금 수입과 지출 전망, 보험료 전망 등을 하고 있지만 5년마다 한 번씩 하고 있는 전망이 매번 달라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엄밀한 '과학적인 전망'이 아니다.

그런데도 재정추계보고서가 70년 후 전망을 매우 확실한 것처럼 발표하고 국민연금을 유지하기 위해서 당장 보험료를 얼마나 올려야 하는가를 보고함으로써 개혁안 논의를 '기금의 고갈', '유지를 위한 보험료 인상률 선택'이라는 매우 좁은 틀에 갇히게 만들었다.

그러나 미래가 재정추계가 그리는 대로 진행된다면 기금을 쌓는 것이 무의미해질 것이다. 노후가 불안하므로 건물을 사서 노후대책을 하고자 하는데 미래에 건물을 임대해서 임대료를 내 줄 세입자가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미래를 결정하는 출산율, 경활률, 생산성, 투자 변수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갈 것인가이다.
  
따라서 고령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당장 9% 보험료를 18%로 올리는 것은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다. 만일 이러한 개혁안이 채택된다면 지금 생산가능인구인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들이 그 대상이 될텐데 보장성 개선 혜택은 하나도 없이 앞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대폭 오른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이는 미래세대, 즉 MZ세대의 자녀세대에게 부담을 덜 지우겠다는 이유로 MZ세대에게 큰 부담을 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어나지도 않은 MZ세대의 미래세대를 위한다며 MZ세대의 가처분소득을 크게 줄이는 것이다. 

현재도 사는 것이 팍팍해서 많은 MZ세대들이 결혼도 출산도 못하는데, 충분한 노후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면서 당장 두 배 더 높은 보험료를 내게 된다면 이들이 더욱 결혼과 출산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기금은 쌓이고 있으므로 기금이 당장 큰 위기인 것도 아니다. 당장 해야 할 일은 가족복지와 일자리 정책을 강화해 여성과 고령계층의 경활율과 생산성을 올리고 사회 시스템을 일·가정 양립, 일·가정에서 양성평등을 실현하여 출산율을 OECD 평균까지는 끌어올리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보장성을 올리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제이다. 모두가 노후에 대해 국가로부터 기본적인 보장을 받아야 안심하고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에는 현재보다 일하는 인구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국민연금 재원 마련을 반드시 소수의 미래세대에게만 부담시킬 일은 아니다. 소득과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은퇴 인구 중 여유있는 계층이 많아질 것을 생각하면 재원 마련의 부담을 나누어질 필요가 있다. 많은 국가들이 고령화 심화에 대응해 공적연금에 세수를 투입하고 있다. 보장성 강화 하나도 없이 보험료를 대폭 올리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 민간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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