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6 11:00최종 업데이트 23.09.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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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를 하다가 택배 기사를 하니, "아저씨"라는 호칭이 거슬렸다. ⓒ envatoelements

 
목사가 택배기사로 일한다는 게 처음부터 익숙했던 건 아니었다. 나는 1993년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바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당시 서경석 사무총장) 간사 일로부터 최근까지 목회 일 외에도 시민단체 실무자 일을 해 왔다. 이러한 경험은 교회 밖의 경험을 별로 할 기회가 없는 일반 목회자에 비해 사회에 대해 더 유연한 인식과 자세를 갖게 해 준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목회를 하면서도 교인 외에 주변 이웃과도 큰 어려움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우리 교회는 행사 물건이나 사은품, 선물 같은 게 생기면 같은 상가와 주변 이웃들과 나누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막상 택배를 시작하니 내가 얼마나 거품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일단 호칭이 거슬렸다. 지금은 그렇게 부르는 분이 없이만 처음 일을 시작했던 2015년 무렵에는 "아저씨!"라고 부르는 고객이 적지 않았다. '아저씨', 이상할 게 없다. 나도 누군가를 많이 불렀던 호칭이니까. 그동안 '목사님', '○○님'으로 불려 왔던 내가 '아저씨'라고 불리니 괜히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빴다. 목사가 무슨 벼슬도 아닌데, 스스로 목에 힘주고 살았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물론 호칭만큼이나 함부로 대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돈을 받으니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느껴졌다. 초보라 열심히 헤매는 중인데 조금 늦어지면, 몇 시까지 온다고 문자 왔던데 왜 안 오냐며 전화통에 불이 난다. 원하는 위치에 놓지 않았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잔소리를 한다.

이때 부르는 호칭이 모두 '아저씨'다. 그럴 때는 나도 심사가 뒤틀려 처음에는 제법 다투기도 했다. 물론 돌아서면 한없이 후회한다. 아니, 목사랍시고 여기저기서 좋은 설교를 해댔던 내 실체를 고발당한 것 같아 누가 뭐라지 않아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주 가는 큰 교회가 있었다. 큰 교회이니만큼 물량도 많고 부피도 늘 컸다. 수신처가 교회 내 어느 기관이거나 누구로 되어 있지만 그걸 우리가 일일이 찾아 주는 건 아니고(택배는 宅配다), 분실 염려도 없기 때문에 보통은 사무실 앞 큰 로비에 놓고 간다. 그런데 가끔은 누군가 다시 부르며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한다. '이 많은 걸 다시 옮기라니!' 그럴 때는 은근슬쩍 내가 목사라는 걸 밝히면 여기 직원들이 얼마나 놀라고 미안해할까 유치한 생각까지 했다.

딸의 한 마디, 잊지 못할 교훈이 되다
 

"'목사라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라는 딸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 rawpixel

 
누구나 직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퇴근 후에는 다 잊고 쉬고 싶다. 직장에서 있었던 일과 기분을 집에까지 가지고 오고 싶지 않다. 택배기사는 더욱 그렇다. 어느 날 퇴근 후 씻고 쉬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퇴근 후 울리는 낯선 번호의 전화는 십중팔구 고객 문의(항의) 전화다. 받기 전부터 신경이 날카롭다.

가족이 없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받는다. 배송한 물건이 없단다. 미안하지만 벌써 집에 들어왔으니 내일 거기를 다시 가서 찾고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못 찾으면 손해 없이 재주문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그런데도 오가는 대화에서 짜증이 섞였나 보다. 전화를 끊은 후 마루로 다시 나오니 20대 딸이 한마디 한다.

"아빠는 택배 일하면서도 목사라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지금은 택배기사라는 걸 인정하고 일하면 좋겠어. 나는 아빠가 택배기사로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위해 필요한 돈을 버는 게 자랑스러워."

딸이 아니라 헛된 자만심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다. 나중에는 고마웠지만, 처음 딸에게 그런 소릴 들었을 때는 차마 부끄러워 뭐라 뭐라 변명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이었다.

이참에 호칭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야겠다. 실제 호칭은 별 것 아닌 게 아니라 매우 중요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이름을 부르지 않고 호칭으로 자신과 상대를 평가하는 사회에서 호칭은 실제 태도로 나타난다. 그런 모습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장사하는 곳이고, 특히 음식점이다.

20년 전만 해도 주인을 '어이' '이봐'로 부르는 손님이 적지 않았다. '아저씨' '아줌마'를 거쳐 이제는 '사장님' '이모' '삼촌'이 일반적이다. 호칭을 바꾼다는 건 태도가 달라졌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렇다. 지금은 보통 강심장의 갑질 전문 손님이 아니고는 주인에게 하대하며 반말 조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손님을 거의 보기 힘들다. '기사님', '사장님'이라고 부르면서는 말투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전화 전문상담원의 어려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직접 얼굴을 볼 수 없고 대개 여성이기 때문이다. 반말, 폭언, 욕설은 물론 성희롱도 예사로 듣는다고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상담원과의 통화에 앞서 이런 멘트가 나온다. "여러분과 통화할 상담원은 누군가의 소중한 딸, 엄마입니다." 어떨 때는 "상담원은 소중한 우리 엄마예요."라는 아이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참 좋은 생각이다. 그 목소리를 듣고도 함부로 할 철면피는 거의 없을 것이다. 갑을의 위치는 고정된 게 아니라 항상 바뀐다. 값을 지불했다는 말이 갑질을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시 기사들 얘기다. 우리는 서로 민증까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비슷한 또래처럼 보이면 무조건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게 편했다. 그중 제법 큰 사업을 하다가 다 망하고, 그때 이빨도 많이 빠진, 택배한 지 20년이 넘은 서너 살 위 동료가 있었다. 같은 기독교인이었다. 그분은 아침마다 나를 보면 와락 안고 "목사님, 사랑해요"라고 속삭이며 진한 포옹을 했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목사가 자기들 가까이에서 자신과 같은 일을 한다는 게 힘이 된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은 힘들어도 그들에게만은 가능한대로 잘 웃고 격려가 되는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한 게 지난번에 쓴 커피 나눔이었다. (관련 기사: 택배 일하며 경험한 지하 세계의 기쁨 중 하나https://omn.kr/25dxb)

목사와 교회를 싫어한다? 천만에
 

서울 한 지역에 밀집해 있는 교회 십자가 첨탑. ⓒ 권우성

 
그러나 나는 사실 동료들의 도움을 더 많이 받는다. 그들은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택배 도사들이다. 10년은 보통이고, 20년, 30년 한 분들도 적지 않다. 그런 분들 앞에서 신출내기 초짜가 얼마나 어설프고 모르는 게 많았을까? 가장 중요한 앱의 사용법, 물품 분실과 파손 등 사고처리법, 민원 대처법 등 잘 모르는 게 있을 때마다 물었고, 그들은 최선을 다해 가르쳐주고 시간 내어 일일이 보여주었다. 덕분에 나도 빠르게 익힐 수 있었고, 또 다른 후배 기사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새롭게 깨우친 게 있다. 사람들이 목사와 교회를 싫어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꼭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들 가까이에서 자신들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는 목사와 문턱 낮은 교회를 보고 싶은 것 같다. 2021년 기사 일을 그만두었을 때 가까이 지냈던 기사에게서 어느 날 느닷없이 문자가 왔다.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언제 교회에 한 번 가겠다고, 헌금을 하려 하니 계좌번호 알려달라고.

지금은 또 일을 멈추고 있지만, 나는 가까운 몇몇 동료 기사들에게는 가끔 응원 문자를 보낸다. 특히 비나 눈이 많이 오거나 덥거나 추울 때 더욱 그렇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같은 현장의 동료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들 덕분에 나는 교회에서만 알던 범위를 넘어선 산 지식을 많이 배운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리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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