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8 09:55최종 업데이트 23.08.0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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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n > 2020년 봄호에 실린 한림수직 기사 ⓒ 재주상회

 
58년생, 개띠, 77학번, 스페이스 예나르 갤러리 관장, 양재심. 그는 제주 무근성에서 태어나 현재 건입동에 사는 토박이다. 현재 아흔 가까이 된 그의 어머니는 명주 수의 장인인데, 지금도 알아주는 '무근성 멋쟁이 엄마'다.

양재심 관장에게는 2벌의 한림수직 스웨터가 있다. 각각 어머니와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 그가 기억하는 한림수직 옷 2벌은 '두 어머니 모두 곱게 단장하고 절에 가는 날, 좋은 곳에 갈 때' 입던 외출복이다.


"친정어머니 것은 50년이 넘은 건데, 워낙 멋쟁이인 데다 옷 관리를 잘하는 분이에요. 지금 봐도 새 옷이나 다름없죠. 시어머니 것은 유품이고요. 그분은 절에서 큰 보살이었어요. 당시에 시아버지 월급으로 옷을 샀더라면 월급의 1/3은 써야 했을 거예요. 짐작하건데 시어머니는 아마 계를 들어서 옷을 장만한 것 같아요. 라벨을 바느질로 기운 흔적이 있어요.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다는 의미 아니겠어요."

양재심 관장의 세월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그가 방학마다 제주 시내로 외출을 나가면 칼호텔 부티크에서 보았던, 너무 고가라 감히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매장 밖에서 아이쇼핑으로 만족해야 했던 옷이 바로 한림수직의 그것이다. 예쁜 것을 알아보는 눈은 그리 다르지 않았을 터. 당시 제주 여성들 사이에 스웨터 한 벌을 갖기 위해 계를 드는 부녀 모임이 있었는가 하면, 2030세대 여성들에겐 "한림수직에서 혼수했다 더라"하면 부잣집에 시집갔다는 의미로 통용됐다.

한림수직은 서울 반도 조선 아케이드와 한림수직 직매장을 두고, 1980-1990년대 제주와 서울의 내로라하는 고위층 '패피'들이 하나쯤 갖고 있던 브랜드다. 1954년 한림공소에 부임한 맥그린치 신부는 1957년 양 35마리를 들여왔으며, 1958년 아일랜드에서 공수한 물레로 양모를 생산했다. 1959년 3월 한림읍에 직조 강습소가 문을 연 후 '한림수직'으로 이름을 바꿨다.

같은 해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아일랜드인 수녀들이 한림수직에 왔고, 마을 여성들에게 수직 기술을 가르쳤으며, 양모를 이용해 스웨터와 담요 등 상품을 제작했다. 기술을 가르치고, 배운 이들이 노동을 하고, 노동의 대가로 급여를 받고, 만든 상품을 상점에 유통하고, 판매와 판촉을 하기까지. 한림수직은 그 자체로 제주에서 전에 보지 못한 산업구조였으며, 엄연히 로컬 브랜드였다. - "1959-2005 한림수직을 아시나요", 최정순, < iiin > 2020년 봄호

< iiin > 2020년 봄호에 실린 '한림수직' 이야기다. < iiin >은 제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지역 잡지이자 우리나라에서 첫손에 꼽히는 로컬 미디어다. 콘텐츠그룹 '재주상회'(대표 고선영)가 벌써 10년째 만들어 오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계절마다 1만 부 안팎을 찍어 전국으로 유통한다. 어느 면으로 보나 독보적이다.

기사가 나가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한림수직의 마지막 니트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전해졌다. 그래서 그것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그러자 정말 전국 곳곳에서 사연이 담긴 니트들이 제주로 날아들었다. 고선영 재주상회 대표는 그때 비로소 마주하게 된 한림수직 니트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SNS에 광고를 냈더니, 그동안 니트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분들이 보내오기 시작했어요.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건데 잘 써달라는 분도 있었죠. 벌써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너무 멋졌어요. 당장 내놓고 팔아도 좋을 만큼. 레트로라기보단 클래식이라고 부를 만했죠."
 

한림수직 전시회 모습 ⓒ 재주상회

 
그해 여름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고 대표는 한림수직이란 로컬 브랜드를 다시 살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여러 고민 끝에 하반기에 상표권을 얻어 본격적으로 한림수직 재생에 나섰고, 이듬해인 2021년 정말로 한림수직 니트스웨터와 가방을 만들어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다시 1년 뒤엔 한림수직에서 일했던 장인이 4명의 청년 니터를 길러내기도 했다.
 

되살려낸 한림수직 니트 ⓒ 재주상회


이 모든 일은 < iiin >의 기사에서 출발했다. 대체 어떤 잡지이길래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독보적 지역 잡지 < iiin >은 어떻게 탄생했나
 

< iiin > 2022년 겨울호 소개 ⓒ 재주상회

 
< iiin >을 창간한 건 고선영 대표다. 서울에서 여행잡지 기자로 오래 일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2011년 서귀포의 작은 바닷가 마을인 대평리로 이사를 왔다. 제주 고씨이긴 하지만 제주에 살아본 적도, 오래 살려는 생각도 없었다.

그는 해외에 갈 때면 어느 도시에나 있는 지방 잡지들에 눈길이 갔다고 한다. 해마다 제주를 찾는 이들이 1000만 명에 달하던 무렵, 그는 오래 가는 제주만의 잡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잘될 거란 생각으로 뛰어든 일은 아니었다. 한때 그가 서울에서 몸 담았던 대형 잡지사의 여행 잡지도 적자를 못 이겨 폐간한 일이 있었는데, 지방 잡지라니. 

"다들 망할 거라고 했죠.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광고 없이도 지속가능한, 자생력 있는 잡지를 만들어 보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제가 글을 쓰고 남편이 사진을 찍고 친구가 디자인을 하면, 인쇄비 500만 원씩 1년에 네 번을 만드니까 2000만 원이면 해볼 수 있겠단 생각을 했죠."
 

한림수직을 다룬 < iiin > 2020년 봄호 ⓒ 재주상회

 
그렇게 2014년 4월 첫 호가 세상에 나왔다. 제주 곳곳에 막 생기기 시작한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다니면서 책을 팔아달라고 부탁했다. 배달도 직접 했다. 그렇게 첫 호 1만 부가 모조리 팔려나갔고, 1년이 지나자 제주에만 < iiin >을 파는 곳이 100곳 넘게 늘었다.

우리가 재밌어하는 걸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도록 만든다

최근 몇 년 사이 지역 잡지를 내세운 매체들이 여럿 생겼다. 하지만 대부분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모아 비정기적으로 발행하거나 지역의 울타리를 넘지 못한다. 전국으로 유통되는 정기 간행물을 만들기란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 iiin >엔 어떤 이야기가 담기고, 또 어떤 사람들이 찾아 읽을까.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잡지를 보는지 알지만 대상 독자를 고려하고 책을 만들진 않아요. < iiin >의 가치는 사람들이 몰랐던 이야기를 알려 줌으로써 그게 얼마나 흥미롭고 가치 있는지를 발견하도록 하는 데 있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의 잡지 기획 방식과는 전혀 달라요. 독자들이 뭘 궁금해할까를 생각하면서 만든 적은 없으니까요. 우린 말하고 싶은 걸 말하는 잡지에요. 

다행히 저와 편집부 성원들이 대중성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흥미로워하는 이야기는 다른 이들, 독자들도 흥미로워할 거란 믿음이 있어요. 그 믿음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왔고, 지금까진 독자들이 좋아해 주셨죠."

 

< iiin >은 10년째 꾸준히 발행되고 있다 ⓒ 재주상회

 
그는 "독자들이 제주에 대해 뭘 궁금해할지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고도 했는데, 흥미로운 소재를 매력적인 콘텐츠로 만들어 낼 자신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얘기다. 그는 그것을 "재주상회의 스타일"이라고 했다. 재미있는 것을 설득할 자신감. 

"가치 있는 소재는 너무 많아요. 중요한 건 그 가치 있는 소재를 잘 가공해서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시대의 언어로 가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늘 강조해요.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이 흥미로워할 방식으로 가공을 하자는 거죠. 이야기로 독자를 홀리고 싶은 욕망이 늘 있어요."

가공 방식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이 공감할 만한 가치를 지녔는가도 중요하다. 그가 한림수직에 흥미를 느낀 것도 그 때문이다. 

"맥그린치 신부님은 이 척박한 땅을 떠날 수도 없던 여성과 청년들에게 먹고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고 한림수직을 만들었어요. 그게 한림수직의 존재의미였던 거죠. 한때 1300명의 여성들이 일했던 한림수직은 그 쓸모가 다 하자 문을 닫았어요. 중국에서 밀려든 값싼 니트 때문에 경쟁력을 잃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림수직을 잘 아는 이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한림수직이 쓸모를 다 했기 때문에, 시대의 쓰임새가 끝났기 때문에 사라졌다고들 해요.

그런데 지금은 다시 시대가 바뀌어서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려는 멋진 청년들이 많아요. 개성과 취향이 업이 되고 브랜드가 되는 시대가 왔어요. 이런 시대라면 다시 한림수직이 쓰임새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로컬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살아나 제주 청년들과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다시 살려보기로 한 거죠."

 

1960-70년대 한림수직에서 니트를 만들던 제주 여성들과 성직자들 ⓒ 재주상회

 

전국에서 모인 한림수직의 옷들 ⓒ 재주상회

   
그렇다고 한림수직의 성장과 확장에 재주상회가 계속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재주상회의 본질은 콘텐츠 회사고, 콘텐츠를 발굴하고 초기 브랜드를 만드는 것까지를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회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니까 브랜드를 더 크게 성장시키는 건 또 다른 전문가의 몫이고, 재주상회는 또 다른 한림수직을 찾아내는 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로컬 미디어가 살아야 로컬이 산다

10년 가까이 제주 이야기를 발굴하고도 아직 남은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했지만, 그는 소재 고갈을 걱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지금도 너무 궁금한 게 많고, 해야 할 이야기도 너무 많아요. 다만, 내년 봄호면 만 10년이 되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형식을 고민하고, 영문판도 준비하고 있어요. 지난 4월에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참여했는데, 한국(국가)을 거치지 않고도 제주(지역)의 이름으로 세계에 나갈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육지와 제주를 잇는 11종의 배들과 항로를 살펴본 < iiin > 2022년 여름호 ⓒ 재주상회

 

< iiin > 2023년 봄호 ⓒ 재주상회

   
< iiin > 한 호를 제작하는 데 대략 5000만 원이 들어가고 1권 가격은 6900원이다. 계절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많을 땐 1만 부를 찍고 이걸 다음 계절이 오기 전에 다 판다고 해도 제작비를 건질 수 없다. 그러니까 계절마다 손해를 보면서도 10년째 잡지를 찍어내고 있는 셈이다.

"재주상회가 하는 일은 흥미로운 무언가를 < iiin >에 잘 담아내고, 그 흥미로운 콘텐츠가 다시 오프라인으로 이어져 상품이 되고, 나아가 공간과 전시로 확장되도록 하는 거에요. 따라서 단지 < iiin >을 제작하는 단계까지만 따로 떼서 손익을 따지진 않아요.

처음부터 < iiin >을 비즈니스로 키우려고 했던 것도 아니에요. 그럼에도 여기에 투자를 하는 건 이게 재주상회의 심장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모든 일이 < iiin >에서 시작되니까요. 그래서 손해라고 보지도 않고, 지금까지 제작비를 줄이려고 노력해 본 적도 없어요. 물론 지금은 광고도 받고 있어요. 광고 영업을 따로 하진 않지만 제안이 들어오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재미있는 콘텐츠로 만들어 내죠."


그는 < iiin >이 1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아서라고 했다. 제주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던 때에 맞춰 창간을 했고, 제주가 아니었다면 기대하기 힘들 만큼 관심을 받았다는 것. 그렇다고 다른 곳에선 지역 잡지를 성공시킬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잡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에요. 창간하긴 쉽지만 2호를 내는 게 정말 어렵죠. 1호는 어찌어찌 만들어 내지만 그걸 다시 하라고 하면 머뭇거리게 돼요. 그럼에도 가능하다면 또 시도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재미있다고 계속 얘기를 해줘야 재밌는 줄 알거든요. 성실하게 콘텐츠를 발굴하고 쌓아 올리다 보면 우리 지역도 재밌는 곳이라는 걸 알아줄 때가 오리라 믿어요. 재미난 콘텐츠가 없는 동네는 없으니까요.

또 콘텐츠를 발굴하기에 잡지만큼 좋은 매체도 없어요. 한땀 한땀 실을 꿰어야 하는 일처럼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한 건 분명해요. 그래도 길은 다 있다고 믿어요. 228개 시군구에 적어도 하나씩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만든 잡지가 나오길 바라요. 1년에 한 권씩만 나와도 그 지역이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을 크게 높일 거라고 봐요."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는 재주상회
 

로컬브랜드포럼 홈페이지 ⓒ 로컬브랜드포럼

   
고 대표는 지난해 12월 창립한 로컬브랜드포럼(LBF)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로컬브랜드포럼은 지속가능한 로컬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로컬 기업과 소상공인, 창업가들이 모여 만든 커뮤니티다.

"지역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나 소통협력공간들이 조성되다 보니 로컬 창업자들이 정부 정책에 따라 모이고 움직여요. 이젠 자발적 모임도 만들어질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끼리 먼저 모여서 우리가 바라는 흐름을 만들어 가야 할 때라고요. 그래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대표들끼리 모여 결성하자고 했어요. 각자가 처한 현실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는 뜻이죠.

포럼엔 창업자, 투자자, 연구자, 공무원 등 다양한 이들이 모여있어요. 경계를 뛰어넘어 로컬의 성장을 위해 자유롭게 머리를 맞대나가려고 해요." 


고 대표는 새로운 일을 벌일 때마다 잘될 거란 확신으로 시작한 적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남들의 걱정스런 시선에 맞서 일을 벌여왔다. 그렇게 10년, 재주상회는 전국에서 찾는 콘텐츠 그룹으로 성장했고, < iiin >도 살아남아 이른바 로컬 콘텐츠의 가치와 가능성을 보기 좋게 입증해 보였다. 그의 바람처럼 지역에 뿌리를 둔 잡지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성장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 10년 뒤의 < iiin >은 어떤 모습일지도 무척 궁금하다.


리얼제주 매거진 인 iiin 2023.여름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지은이), 콘텐츠그룹 재주상회(잡지)(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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