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6 05:30최종 업데이트 23.07.2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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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서울교육청앞에서 서울교사노조와 전국초등교사노조 조합원들이 ‘(서초구 S초등학교)신규 교사 사망 사건 추모 및 사실 확인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교사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비통하고 참담합니다. 젊디젊은 후배 교사의 갑작스러운 부고 앞에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교사로서의 기쁨과 보람보다 슬픔과 좌절만을 더 겪다 외로운 생을 마감했을 후배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속절없이 널뜁니다. 동료 교사들과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결국, "이렇게 좋은 게 많은데 못 누리고 가 버렸어"하며 이내 허탈해지고 맙니다.

고백하건대, 23년간 초등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1학년 담임교사를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습니다. 젊었을 땐 주로 고학년 담임과 담임교사들이 맡기 싫어하는 영어 전담 교사를 주로 맡았었고(요즘엔 영어 전담 교사는 경합입니다), 중견 교사가 된 이후로는 3~4학년과 2학년 담임교사를 오래 맡아왔습니다. 1학년을 언젠가 맡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학생 생활지도보다 학부모 민원을 더 상대하기 버거워하는 1학년 담임 선생님들을 자주 봐왔기 때문에 선뜻 자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20여 년 전, 저는 전교생이 100명도 안 되는 작은 시골 학교에서 20대 교직 생활을 보냈습니다. 인지상정이 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의 지도하에 배움이 이루어진다는, 학부모와 교사 간에 당연한 믿음과 신뢰가 있었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요. 초임 교사의 시행착오가 왜 없었겠습니까마는, 작은 실수는 아이들에게 쏟는 더 큰 애정과 열정으로 덮이곤 했었지요. 학부모들이 그런 제 마음을 알아주실 때, 더 기운 내어 신나게 아이들 교육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방에 녹음 장치까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지금은 어떤가요. 학교에서 일어난 상황을 아이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며 1학년 아이 가방에 녹음 장치까지 장착해 보내는 학부모까지 있었다는, 다른 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망연해집니다. 교사를 믿지 못하는 학부모와 이를 경계해야 하는 교사라니요. 교사가 온 마음을 다 쏟아도 한 반 30여 명 아이들의 마음을 다 들여다보기 힘든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올해 제 옆 반에 신규 여선생님이 담임을 맡고 계십니다. 젊은 후배 교사에게 오지랖 떠는 꼰대 교사로 비칠까 봐 많은 말을 건네진 않았지만, 학부모 총회, 학부모 상담, 학부모 공개수업 등 1학기 굵직한 학교 행사를 마칠 때마다 그녀가 얼마나 긴장하고 힘들었을지 표정만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녀가 퇴근 시간에 맞춰 제때 퇴근하는 날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담임으로서 모든 게 '처음'인 그녀에게 악성 학부모 민원은 없었을까요. 아이들 생활 지도 문제로 퇴근 후까지 학부모와 최선을 다해 상담을 하고서도 끊임없는 학부모의 요구에 허망해지는 일은 어쩌다 학교 현장에서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런 일이 그녀에게만 비껴갔을 까닭은 없을 것입니다.

더 강하게 분개했다면... 우리가 미안합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초등학교 때부터 가졌던 꿈이었고, 지금도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라는 직업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요즘엔 저 역시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라도 갑작스럽게 학교를 떠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면 좀 많이 서글퍼집니다. 아이들을 대하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의 사고 체계는 일반 직장인들과 같지 않습니다. 작고 여린 존재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과정은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다소 힘겹더라도 보람과 긍지로 여기기에 교직을 지속할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며칠 전, 동료 교사 한 분으로부터 교대를 진학한 옛 제자의 어머니가 젊은 교사의 비통한 소식을 듣고 펑펑 울며 전화를 했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20년 넘게 교직의 희로애락을 다 맛본 저 같은 사람이야 언제라도 떠난다 한들, 여한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젊은 교사들과 앞으로 교사가 되려는 꿈으로 교대와 사대에 진학한 예비 교사들의 마음은 지금 어떨지,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많은 헌신적이고 유능한 '선생님'을 교직에서 발길 돌리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직 경력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지금 모든 교사들은 비통하고 참담합니다. 훌륭한 후배 교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선배 교사들은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저 나 하나 참고 견디면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굳어진 교육 현장에서 후배 교사들이 더 힘든 교직 생활을 하고 있나 싶어 미안합니다.

학부모와 교육 당국의 부당한 처사에 더 강하게 분개했어야 했는데...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누려보지도 못한 채 사라져 간 젊은 꿈은 어디서 위로받을 수 있을까요. 먼저 간 젊은 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게 우리 어른들이 할 수 있는 다가 아니길, 간절히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함께 게시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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