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4 11:59최종 업데이트 23.07.1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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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고법 행정9-3부는 가수 유승준씨가 주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를 상대로 낸 여권·사증(비자) 발급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날 서울고법 앞에서 유씨의 변호인 류정선 변호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년 넘게 입국 길이 막혔던 유승준(미국명 스티브 승준 유), 그가 바라던 한국행은 현실이 될 것인가. 지금 상황으로선 가능성이 상당히 커졌다. 법대로 따지면 비자 발급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취지로, 법원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5년부터 시작된 재외동포 비자(F-4 비자) 발급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대한민국'과 승패를 주고받던 유씨는 결정적인 승소 판결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서울고법(제9-3행정부 재판장 조찬영)은 13일 유씨가 주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를 상대로 낸 소송(2심)에서 1심을 뒤집고 "발급 거부처분을 취소한다"며 유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1차 소송 5차례, 2차 소송 1심 판결에 이은 총 7번째 판결이다.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유씨는 병역의무 이행을 한 달 앞둔 2002년 1월, 해외 공연을 이유로 출국한 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그해 2월 법무부로부터 입국금지결정을 받은 그는 13년 뒤인 2015년 재외동포 자격으로 F-4 비자 발급신청을 했다가 다시 거절당했다.

이때부터 기나긴 행정소송이 시작됐다. 1차 소송에선 절차상 위법 등을 이유로 결과적으로 유씨의 승소가 확정됐다. 그러나 2020년 주 LA 총영사는 법무부 등의 의견을 토대로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다시 비자 발급을 불허했다.

이에 맞서 유씨는 2차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유씨에 대한 입국금지와 비자발급거부는 주권국가로서의 재량권 행사 범위 안에 있고, 공익적인 측면에서 유효하다'는 취지로 원고패소 판결했다. 여기까지가 이번 판결 이전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에선 왜 결론이 달라졌을까.

[쟁점①] 수차례 개정된 재외동포법, 유씨에게 적용된 법은

최근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외국국적을 취득하는 이들이 늘면서, 이와 관련된 제재를 확대하는 쪽으로 병역법, 재외동포법 등 관련 법률이 계속 바뀌고 있다. 특히 유씨가 신청한 F-4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근거가 된 재외동포법은 1999년 만들어진 뒤 20여 차례나 개정됐다.

그중에서 재판부는 2017년 10월 개정되기 전의 법(이하 '구법')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2017년 개정 법률에 '법 시행 후 최초로 국적을 상실한 사람부터 적용', '법 시행 전에 국적을 상실한 사람에게는 종전의 규정을 적용'한다는 부칙을 두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유씨가 국적을 상실한 시기가 2002년이므로 부칙에 따라 구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구법에서는 재외동포체류자격 부여금지 사유로 ① 병역기피 목적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 국적을 상실하여 외국인이 된 경우(편의상 '병역 사유'라고 한다) ②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외교관계 등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편의상 '국익 사유') 등을 두고 있다.

이 중에서 ② '국익 사유'는 법 개정 전후 조문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변동이 없다. 주목할 부분은 ① '병역 사유'다. 구법에는 만 38세(입영의무 면제연령)가 된 때에는 적용을 배제하는 단서 조항이 있다.

쉽게 말해, 구법에서는 병역을 기피하려고 국적을 상실한 사람에겐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38세가 넘게 되면 ② '국익 사유'에 해당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병역기피 목적으로 국적을 상실한 외국국적동포에 대해 체류자격 부여금지라는 행정적 제재를 부과하되, 병역의무의 최종적 종료연령을 넘긴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체류자격을 부여하라는 취지로 입법되었음을 추단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 단서는 2017년 개정에서는 나이가 만 41세로 변경되었다가, 2018년 개정에서는 나이는 유지하되 "법무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강화되었다. 현행법은 ① '병역사유'로 만 41세가 넘어도 법무부장관이 재량에 따라 체류자격을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구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쟁점②] 유씨의 비자발급신청 거부 사유는
 

미국시민권 취득에 따른 병역기피 시비로 내려졌던 입국 금지조치가 일시 해제된 가수 유승준씨가 2003년 6월 26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난감해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주 LA 총영사가 비자발급을 거부한 사유는 무엇이었을까. '병역 면탈'인가, '국익을 해칠 우려'인가. 2020년 당시 '사증발급거부 사유' 공문에는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할 시점에 국적을 변경함으로써 병역의무를 면탈한 사실이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외교관계 등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고 되어 있다.

재판부는 이 부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유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① '병역사유'와 ② '국익사유'는 별도의 사유이다. ② '국익사유'로 비자발급을 거부하려면 ① '병역사유'가 아닌 별도의 행위 또는 상황이 있어야 한다. (유씨처럼) 병역 기피 목적으로 국적을 상실한 행위는 ①에 해당하는데도 별도의 행위나 상황 없이 ②를 적용한 것은 위법하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유씨의 병역면탈이 장병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병역기피 풍조를 확산시켜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으므로 ②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폈으나 재판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현행 재외동포법으론 재량에 따라 행정적 제재가 가능하지만, 유씨에게 적용되는 구법으로는 국적변경을 통한 병역의무 면탈만으로는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체류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쟁점③] 비자 발급 신청 시점, 철저히 계산되었나

유씨가 한국 국적을 버린 뒤 F-4 비자 발급을 최초로 신청한 시점인 2015년 8월, 그의 나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법에 따르면 병역기피 목적으로 국적을 상실해도 입영 의무가 면제되는 나이인 38세가 넘으면 비자를 발급하도록 되어 있다.

신청 당시 그는 만 38세에서 8개월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철저한 계산이었을까. 어쨌거나 유씨의 '작전'은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재판부의 판단을 끌어냈다.

"병역기피 목적으로 외국국적을 취득한 외국동포로서 신청 당시 38세가 넘었던 원고(유씨)의 이 사건 (F-4 비자) 신청에 대해 피고(주 LA 총영사)가 '병역사유'가 아닌 '국익사유'를 들어 사증발급을 거부하려면 이 사건 처분일(2015년 9월) 기준으로 '병역사유' 가 예정․포섭하는 범위를 벗어난 별도의 행위 또는 상황이 있어야 한다."

재판부는 유씨가 유튜브 등을 통해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쏟아내는 사실을 의식한 듯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으나 결론에는 영향이 없었다. 재판부는 "(유씨의) 최근의 언동이나 이에 따른 사회적 반응 등의 사후적 사정들이 2002년 병역기피 목적의 외국국적 취득행위와 별도의 행위, 상황을 구성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또한 "행정처분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표준시기는 그 처분 당시이고, 재판시를 표준으로 할 수는 없으므로 원고의 최근 언동 등을 고려해 이 사건 처분의 적법여부를 판단할 수도 없다"고 일축했다.

유씨가 논란을 일으켰고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더라도 이것을 두고 사후에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병역기피에 제한을 가하는 방향으로 법이 수차례 개정됐지만, 그 이유만으로 "현행법을 유씨에게 적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도 재판부는 밝혔다.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다. 하지만 상황이 유씨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만은 확실하다. 법원은 '법대로'를 외치는데, 법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일이 종종 있다. 유씨의 재판 최종 결과는 어떨지 좀 더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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