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30 11:34최종 업데이트 23.06.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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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3일 국무회의가 열린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국무회의장 입구에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다. ⓒ 연합뉴스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은 누구일까? 우리나라에는 신뢰할 만한 조사 결과가 없다. 극단적인 이념 대립, 언론에 대한 불신 풍조,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 속에서 국민 다수가 존경하는 대통령이 존재할 수는 없다.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역대 대통령 인기 순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제의 출발지인 미국의 경우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존재할 뿐 아니라, 다수가 동의하는 역대 대통령 인기 순위도 존재한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은 단연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재임하였던 미국의 16번째 대통령이다. 미국인들은 왜 링컨을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을까?


남북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남부연합의 독립 의지를 무너뜨리고 미국을 하나의 나라로 유지시킨 공로 때문이다. 미국이 분단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된 계기를 마련한 것이 링컨이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최고의 대통령으로 존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분단 극복 이외에 링컨의 업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노예해방이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월 1일 전격적으로 선언한 흑인 노예의 해방이다. 남부에 밀집해 있던 흑인 노예를 해방시킴으로써 남부의 분열과 남부군의 이완이 시작되었고, 전세는 북군에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링컨에 의한 노예해방은 세계사 속에서 보면 대단한 결단은 아니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미 1830~40년대에 노예무역 금지에 이어 노예제를 폐지한 상태였다. 19세기 후반까지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던 곳은 흑인 노예 의존도가 높았던 미국의 남부 면화 재배지역과 브라질의 커피 생산지역뿐이었다.

흑인 인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에 의해 선택된 노예해방이 아니라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 행위로 선언된 노예해방이었기 때문에 링컨 이후에도 미국에서 흑인 인권은 1세기 이상 전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흑인 인권이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링컨에 의해서가 아니라 1960년대 흑인들 스스로 시작한 민권운동에 의해서였다.

흥미로운 것은 링컨의 인기는 반사이익이었다는 점이다. 링컨의 인기는 그의 재임 직전 대통령과 직후 대통령이 지닌 부정적 이미지로 인한 대비효과라는 측면이 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통령 1위는 1853년부터 1857년까지 재임한 프랭클린 피어스, 2위는 피어스를 이어 1857년에서 1861년까지 재임한 제임스 뷰캐넌이다.

최악의 피어스와 차악의 뷰캐넌에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이 링컨이었다. 재임 4년 동안 전쟁만 하였던 링컨이 암살당하자 부통령이었던 앤드류 존슨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그는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통령 3위다.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통령 1위와 2위, 그리고 3위 사이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하였던 인물이 링컨이었다.

링컨이 존경받는 배경 중 하나는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6일 후 암살당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미국인들 모두가 느끼는 연민의 정이다. 자신이 통일시킨 나라에서 불과 1주일도 살아보지 못한 것이 대통령 링컨이었다.

미국인들이 존경하는 대통령의 공통점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에 있는 대통령 조각상. (왼쪽부터)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 위키미디어 공용


이런 링컨이 커피마니아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남북전쟁 당시 미국에서 커피는 여전히 귀한 물품이었다. 커피는 해외에서 반입해야 하는 수입품이었고, 물류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1869년 미국 대륙횡단철도가 개설되기 이전까지 서부에서 동부로 물품을 이동시키는 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발생하였고, 커피는 이런 경로로 수송되어 식탁에 오르는 대표적 물품이었다.

따라서 커피에는 치커리 등 이물질을 섞어 마시는 것이 불가피한 시절이었는데, 링컨은 이런 이물질 커피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던 미각의 소유자였다. 완벽한 커피만을 마셨다.

링컨에 이어 미국인들이 존경하는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 프랭클린 루스벨트, 토머스 제퍼슨,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순이다. 링컨을 포함한 이들 다섯 명의 미국 대통령에게는 공통점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커피를 좋아했던 대통령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역대 46명의 미국 대통령 중에서 커피에 관한 많은 일화를 남겼고, 이로 인해 커피를 좋아한 대통령 상위 랭킹에 드는 인물들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이들 다섯 명 모두 대규모 전쟁을 주도했던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다. 링컨의 남북전쟁, 워싱턴과 제퍼슨의 독립전쟁, 루스벨트의 제2차 세계대전이다. 한국전쟁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대통령이었던 윌슨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모두 커피를 유난히 좋아한 전쟁 대통령들이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다섯 명은 모두 커피를 좋아하며 대규모 전쟁을 수행한 인물들이다. 커피를 좋아하면 흥분해서 전쟁을 하게 되는지, 전쟁을 하다 보면 커피를 통해 위안을 얻고자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쟁과 커피'를 함께 즐겼던 다섯 명의 대통령을 미국인들은 가장 존경한다.

커피 즐긴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대통령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식장에 참석한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 ⓒ 맥아더기념관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 커피를 즐긴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대통령은 이승만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던 당시 미국에서 살았던 시간이 우리 땅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길었던 인물이다. 이승만은 우드로 윌슨이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프린스턴대학교에서 1910년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조선 사람들에게 이 박사로 불렸다.

미국이 지지하던 이승만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 확실시되던 1948년 5월 10일 이승만은 미국의 UP통신사 기자와 사저인 이화장에서 기자회견을 하였다.

회견에 앞서 퍼더칼이저 기자는 이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 리가 만들어 준 "훌륭한 커피"를 대접받았다. 프란체스카는 커피의 나라 오스트리아의 빈 출신이었다. 커피를 앞에 놓고 이승만은 몇 가지 흥미로운 주장을 하였다.

자신이 취임하면 가장 먼저 할 것은 남조선국방군을 조직하는 일이고, 이어서 북조선인민군에게 소련인들을 물리치고 넘어오라고 명령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승만은 이들이 넘어올 것을 확신하였다. 미국 기자들은 그것이 전혀 확실하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하였지만 이승만은 거듭 확신을 표시하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승만은 흥미로운 주장 하나를 더 하였다. 정부가 수립되자마자 소련에 조선에서 물러가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미국에는 머물러 있을 것을 요청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 이유를 묻자 이승만은 "미국은 우리를 방호하며 우리 자신을 방호할 무기를 주는 까닭이다"라고 답하였다.

미국 기자는 놀란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이승만은 바로 직전까지 새로운 독립 국가가 세워지는데도 미군과 소련군이 즉시 철퇴하지 않는다고 시비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전의 주장을 갑자기 번복함으로써 미국 기자를 놀라게 한 것이었다.

1948년 5월 10일 최초로 열린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이승만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승만이 출마하였던 동대문구에서 경쟁자 최능진이 선거 3일 전에 갑자기 실격당하였기 때문이다.

제헌국회에서 이승만을 지지하는 한국민주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국회에서 실시된 간접 선거를 통해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정부 출범 직전인 1948년 6월 29일 미군은 군사고문단 500명을 남겨둔 채 갑자기 철수하였다.

커피를 좋아하였던 이승만이 대통령에 취임한 지 1년 10개월 후인 1950년 6월 25일 뜨거운 여름, 민족 최대의 비극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미군은 엄청난 양의 커피를 군수품으로 싣고 한반도에 상륙하였다. 400만 명 가까운 희생자를 만들며 3년간 지속되었던 전쟁이 정전이라는 이름으로 휴식기에 접어든 지 70년이 되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대통령이 나올까 두렵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동아일보>, 1948년 5월 11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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