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4 17:53최종 업데이트 23.06.1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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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만난 이재명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환담하고 있다. 이날 이 대표와 싱 대사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 마련 방안, 양국 간 경제협력 및 공공외교 강화 등에 대해 논의했다. ⓒ 국회사진취재단

 
지난 8일 있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싱하이밍 중국 대사의 공개 회동의 파장이 그치지 않고 있다. 싱하이밍 중국 대사는 중국 대사관저에서 있었던 회동에서 작심한 듯 메모를 꺼내어 약 15분간 읽었다. 그 내용에는 최근 한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인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자들은 반드시 후회한다"와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다음날인 9일부터 후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에만 유감을 표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도 '꼭두각시', '백댄서'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는 곧바로 싱하이밍 대사를 초치했다. 그러자 중국도 11일 정재호 주중한국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여기에 더해 13일 비공개로 진행된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싱 대사 발언에 우리 국민이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 "외교관으로서 상호 존중의 태도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확실히 싱하이밍 중국 대사의 발언은 도를 넘었다.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자들은 반드시 후회한다"라는 말은 이른바 미·중 대결 시대에 '중국의 승리' 혹은 '미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내 또래 젊은이들에게 익숙한 용어로는 지금 뭐가 '정배'이고 뭐가 '역배'인지 따지자는 것일까? ('정배'란 스포츠 도박 참여자들의 예측에서 승률이 높은 쪽에 베팅하는 것을, '역배'란 낮은 쪽에 베팅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정배'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역배'에서 승리할 시에 배당이 높아진다.)

이렇게 미·중 대결 시대를 양자 택일의 승패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물론 스포츠 도박에서조차 무승부의 확률은 존재하지만) 민주당 정부가 추진해 온 균형 외교 정신에도 저해된다. 말하자면 이재명 대표 측에선 '윤석열 정부의 베팅 외교가 잘못 됐지요? 균형 외교를 추구해야 맞는 거지요?'라는 반응을 기대하고 찾아갔는데 싱하이밍 대사는 '베팅을 다른 곳에 해야지'라고 외친 셈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중국 측에 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고, 오히려 최근 중국 측의 초조함이 생각보다 심한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대체 왜 갔나

주변의 2030들에게 이 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특이한 점은 평소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 중도파쯤으로 보였던 지인들도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을 혹독하게 비판했다는 것이다. 최대한 순화해 이런 반응이었다.

'도대체 왜 갔냐. 그들이 그딴 소리할 줄 모르고 간 거냐. 알고 갔으면 황당하고, 모르고 갔으면 한심하다. 만나도 당 대표실에서 만나야지 대사관저로 찾아가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대한민국 의전 서열 8위라는 제1야당 그것도 원내1당 대표가 중국 국장급 외교관에게 무슨 훈시 듣는 모습으로 있으면 어쩌자는 건가. 들으면서 표정만 구기고 있더라. 박차고 나오든지 아니면 뭐라고 반박이라도 했어야 할 게 아닌가.'

급기야 김기현 대표 등 국민의힘 인사들은 인터넷상에서 이재명 대표를 조롱하는 말로 사용된 '리짜이밍'이란 말까지 주워들어 비난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말을 만들어 낸 이들은 처음부터 민주당의 노선을 '중국몽'이나 '친중'으로 규정하는 이들이었을 테지만, 이 말로 조롱하는 이들을 모두 특정 성향 지지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민주당의 현실 인식이 대중의 눈높이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같은 노선을 말하더라도 좀 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윤석열 정부는 '가치 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여기다 대고 민주당이 '가치 외교는 안 된다. 외교라는 것은 실리와 국익이다' 혹은 '가치 외교는 안 되고 균형 외교다'라고 말하면 민주당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반대하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줄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6.10 민주항쟁 기념 행사에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측 인사들을 불참시킬 정도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역사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의회 의결 법안에 거부권을 남발한 것을 넘어 최근에는 대법원장 추천 대법관 후보에 대해 거부권을 시사할 만큼 6공화국 성립 이후 누적되어 온 합의제 민주주의의 전통도 훼손하고 있다.

이처럼 반민주주의적인 세력에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뺏기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라 볼 수 없다.

외교 역시 당연히 가치를 내세우면서 그 이면에선 국익과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니, 그들이 말하는 가치가 '텅 빈 가치'일 뿐이란 점을 부각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자꾸 일각에서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득 볼 게 없는 나라다"와 같은 발언을 하면 사람들은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의심하게 될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도 과거 이준석 당시 당 대표가 우크라이나를 다녀왔을 때 비슷한 결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민주당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러한 행보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에 감정 이입하는 수많은 청년 지지층과 동떨어진 것이며 이준석처럼 그 정서 일부를 대변하는 이들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주게 된다.
  

야당의 '괴담 선동' 탓하는 여당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은 회의실 벽면에 '괴담·선동=공공의 적' 문구를 내걸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확산되고 있는 국민적 불안을 야당의 '괴담 선동' 탓으로 돌린 셈이다. ⓒ 남소연

 
대일본 외교, 상식선에서 이해가 안돼
 

한편 정반대의 풍경도 있다. 일본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서 주변 2030들에게 물어보면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던 이들도 정부 방침을 성토한다. 어느 정도냐면 문재인 정부 시절 한일 갈등 및 한일 무역분쟁에 대해서 문재인 정부의 '잘못'이나 '실책'도 있었다고 생각하는 층들까지도 황당해한다.

그들의 말을 역시 순화해서 약간이라도 옮겨본다면 다음과 같다.

'오염수가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그걸 한국 정부가 기를 쓰고 입증하려고 하나. 한국 정부가 기자들을 향해 안전성을 홍보하는 보도자료를 뿌린다. 내가 낸 세금으로 지금 누구를 옹호하느냐. 한국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들은 이제 몇 년 동안 자리를 잡았는데 화이트 리스트 되찾는다면서 일본 업체 것을 수입하자고 하면 그게 대체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냐. 왜 한국 기업 민원을 들어주지 않고 일본 기업 민원을 들어주려고 하느냐. 이렇게 소신(?)이 강하니 그래도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이나 독도 포기까지는 하지 않겠지라는 기대도 안 생긴다. 도저히 상식선에서 예측이 안 되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이 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오염수 방류에 대해선 지금의 국민의힘도 야당 시절엔 반대했다. 지금의 민주당을 '묻지마 선동'이라고 할 거라면 그들 역시 과거에 '묻지마 선동'을 한 셈이다.

또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도 오염수 방류에 문제없다고 했다며 민주당이 입장을 바꾼 거라고 실제로 믿고 있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2021년 4월 보도된 해양수산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TF)팀이 발간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련 현황' 보고서에서 문제가 없다고 했던 것인데,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일부 전문가의 입장이 정부의 입장은 아니다'라면서 '오염수 해양 방출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정의용 당시 외교부 장관이 2021년 4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 답변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준에 따른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지금의 윤석열 정부 입장과 같은 것 아니냐는 항변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맥락을 살피면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와 정보를 공유할 것 ▲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할 것 ▲ IAEA 검증 과정에 한국 전문가 참여 보장이란 세 가지 조건을 내건 것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일본 정부가 이 세 가지 조건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염수 방류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문재인 정부도 그 반대 주장을 수용했다. 방송에서 '내로남불'을 논하는 국민의힘 측 패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면 더 이상 항변을 하지 못한다.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정치

답답한 점은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이 어렵고 신중한 접근이 요구될 때 양대 정치 진영이 유권자들이 불안해하는 가장 극단적인 두 편향으로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가치도 실현하고 이익도 실현해야 한다. 그러나 더 근본을 말한다면 그 가치도 이익도 국민을 위해야 한다. 먼저 대한민국 국민의 이익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고 사는 가치를 더 넓은 세상에 제시하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것을 누리고 사는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가치 외교'라야 한다.

지금은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 이익'에 무신경한 '가치 외교'를 추구할 만큼 한가한 시대가 아니다. 미·중 대결 시대라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량은 증가했다고 한다. 오히려 한국은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 폭이 큰 폭으로 증대한 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 칩과 과학법'을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협상이 필요한데 현 정부에선 이에 대한 대처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도 이 부분을 철저하게 물고 늘어져야 할 텐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정치, 적어도 그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필자 소개: 하헌기는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으로, 뉴미디어와 기성 언론을 넘나들며 정치 사회 의제에 대해 논의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공저로 <추월의 시대>를 썼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상근부대변인으로 활동했습니다. 사회 문제에 관한 변화된 시대에 걸맞은 논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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