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05 18:19최종 업데이트 23.05.0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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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마시는 커피 ⓒ 픽사베이


커피문화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혼자 즐기는 밥문화 '혼밥', 혼자 즐기는 술문화 '혼술'에 이어, 혼자 마시는 커피 '혼커' 문화가 등장하여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새로 생기는 카페마다 창문을 바라보거나 바리스타를 바라보며 혼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자리가 적지 않게 마련되고 있다. 커피의 본래 기능에서 보면 이색적인 풍습이다.

커피는 탄생 때부터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마시는 음료, 즉 사교 음료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아라비아에서 밤샘 기도를 중시하던 이슬람 분파인 수피교도들이 잠을 이기고 기도하기 위해 수도원 주변에 모여서 마시기 시작한 것이 초기 커피였다. 일종의 종교적 사교 음료로 출발한 것이 커피였던 것이다.


유럽에 커피가 유행하였던 17세기 후반에 도시마다 등장한 커피하우스는 혼자 커피를 즐기는 장소가 아니라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며 커피를 즐기는 곳이었다. 미국에서 독립전쟁을 준비하던 청교도들, 프랑스에서 시민 혁명을 꿈꾸던 계몽주의자들도 토론을 하며 함께 커피를 마셨다. 남북전쟁,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 중 군인들도 전쟁이 주는 공포나 추위를 이기려고 모여서 함께 커피를 마셨다.

20세기 들어 커피가 대중화되기 이전까지 커피를 혼자 마시는 풍습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직장에서든지 커피하우스에서든지 커피는 누군가와 함께 마시는 음료였다. 커피 원두 가격이 싸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에 적당한 커피 원두를 넣고, 많은 물을 채워 끓여서 함께 마시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타당한 방식이었다. 한번 사용한 원두를 다시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당연히 여러 사람이 있을 때 만들어야 하는 음료가 커피였다.

베이커리카페가 유행하였던 독일에서도 커피는 주부들이 제과점에 모여서 수다를 떨며 함께 마시는 음료로 소비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베이커리카페와 낮 시간에 이곳을 점령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은 이런 독일 커피문화를 닮았다.

혼자 커피 마시는 문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한 장면 ⓒ 리버 로드 엔터테인먼트


커피를 혼자 마시는 풍습이 생긴 것은 20세기 들어서였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서부 영화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혼자 커피를 끓여 마시는 모습이 가끔 보이지만 이것은 약간은 과장이다. 혼자 있을 때 비싼 커피를 끓여서, 찌꺼기를 거르고, 여유 있게 마시는 일은 꽤 사치스럽거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카우보이들도 보통은 여럿이 모였을 때 불을 피우고 커피를 끓여 나누어 마셨을 뿐 혼자 있을 때는 참는 것이 보통이었다.

혼자 커피를 마시는 풍습이 생긴 것은 이탈리아였다. 아주 빠른 속도로 진한 커피 에스프레소를 손쉽게 만드는 기계가 개발되면서 사람들은 출근길에 골목마다 등장한 바르(bar)에 들러 선 채로 빠르게 에스프레소를 한잔 마시고 일터로 향할 수가 있었다. 에스프레소용 커피 재료로 등장한 로부스타종 커피의 가격이 저렴했다는 것도 1인용 커피 소비를 가능하게 만든 배경이었다.

이어서 1930년대 들어 이탈리아에서 모카포트라고 하는 1인용 에스프레소 도구가 개발될 것은 집에서 혼자 커피를 손쉽게 마시는 문화를 만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홈카페 문화와 혼자 커피 마시는 문화가 이렇게 출발한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대중화된 커피포트도 당연히 다인용이었다. 커피포트 덕분에 집이든 직장이든 여럿이 모여 편리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노동자들이 힘겨운 노동을 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커피브레이크 시간에 마시는 커피도 다인용 커피포트로 만들었다.

음식은 조금 큰 용기에 많이 만들더라도 음식의 종류나 계절에 따라 여러 날 두고 먹는 것이 가능했고, 술은 많이 만들어서 오래 저장해 두고 마시는 것이 오히려 맛이나 향을 즐기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커피는 그렇지 못했다. 마시기 직전에 만들지 않으면 맛이나 향을 유지할 수 없었다. 따라서 혼자 생활하는 사람이 만들어 마시기가 쉽지 않은 음료가 커피였다.

퍼콜레이터라는 이름의 커피메이커가 처음 개발된 것은 19세기 초반이었고, 이것이 대중화된 것은 20세기 들어서였다. 당연히 다인용이었다. 공동체 생활이 기본이었던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커피메이커도 다인용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20세기 어느 시점부터 공동체 지향형 인간에 맞서는 개인 지향형 인간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혼자 사는 삶을 즐기는 인간, 공동체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 등을 위한 다양한 생활용품이 등장하였고, 어느 순간 1인용 커피포트도 나타났다.

소수에 대한 배려
 

1939년 6월 3일 자 <매일신보>에 실린 "신품, 커피 포트" ⓒ 국립중앙도서관


그렇다면 혼자 생활하는 사람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1인용 커피포트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서구에서 나온 커피 관련 기록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모든 커피포트나 커피메이커는 다인용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나라 옛 기록에 명확하게 "독신자용"이라고 표시된 커피포트가 보인다. 1939년 6월 3일 자 <매일신보>에 보면 "신품, 커피 포트"라는 제목의 기사가 등장한다. 사진과 함께 소개된 이 제품은 바로 독신자를 위한 1인용 커피포트다. 이미 이 신상품 소개 이전에 독신자용 커피포트가 있었으나 문제가 있어서 개선한 것이 이때 소개된 독신자용 커피포트였다.

이전에 나온 1인용 커피포트는 위에 뚫려 있는, 커피 가루 넣는 부분이 얕아서 "뜨거운 물에 채이는"(물에 커피가 적셔지는) 부분이 비교적 얼마 안 되는 것이 큰 결점이었다. 새로 나온 제품은 그런 결점을 보충한 것이었다. 즉, 커피 가루를 넣는 부분보다 물을 넣는 부분이 넓어진 제품이었다. 

이 제품은 당시 서구에서 주로 사용되던 방식인 철로 만든 커피포트가 아니라 도기로 된 커피포트였다. 이 기사에서 "창작" 발매케 되었다고 한 것이 그동안 없던 '독신자용'이라는 용도를 강조한 것인지, 철제가 아니라 '도기' 제품이라는 소재를 강조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두 가지 다 해당하는 나름 독창적인 커피포트였던 셈이다. 이 창작품을 개발한 것이 조선인이었는지 일본인이었는지, 조선인 회사였는지 일본인 회사였는지는 기록하지 않았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오래된 격언을 떠올린다면 이 제품 개발을 부추긴 것은 독신자의 불편함에 대한 배려였다. 기존의 커피포트가 너무 커서 독신자가 사용하는 데 불편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쟁 속에서도 새로운 창작품을 만드는 데는 열심이었다. 그 출발점은 다수의 필요성이 아니라 소수자의 불편함에 대한 배려였다. 소수에 대한 배려, 당시나 지금이나, 못살 때나 잘살 때나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할 덕목이다.

(유튜브 '커피히스토리' 운영자, 교육학교수)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푸른역사)
<매일신보> 1939년 6월 3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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