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5 18:33최종 업데이트 24.05.1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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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택시 승강장에서 개인택시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과도한 사납금에 시달리는 법인택시 기사들의 가장 큰 희망인 개인택시는, 비싸다. 전국적으로 신규발급이 거의 중단된 지 오래인 개인택시 면허가격이 가장 싼 대구가 5천만 원이고 가장 비싼 세종은 2억이 넘는다. 십년 넘게 8천 만 원대였던 서울조차 작년부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해서 2024년 5월 현재 1억 2천을 넘어섰다.

수요와 공급원리로 작동되는 개인택시 시장이 이처럼 요동치는 이유는 법인택시 기사 외에 일반인에게도 문을 열어 준 택시자격 완화(2021년)와 더불어 인구밀집도가 높고 국민연금 보장액이 낮은 60-70년대 생의 은퇴 시기와도 맞물린 때문으로 짐작한다.

개인택시 면허 2억 시대, 기사들의 마지막 희망

택시회사가 연명해 온 고질적인 저임금 구조에서 근근이 살아 온 법인택시 기사들이 억대의 목돈을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런 사람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있다. 협동조합택시다.  


협동조합은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공동출자를 해서 만든 사업체다. 때문에 운영 상 민주적 원칙이 지켜져야 하고 동일선상의 경제적 참여가 이루어져야 하며 일반 회사와 달리 모든 조합원에게 경영관련 정보공개가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공정과 연대의 정신으로 뿌리 내린 모두의 이익을 위한 공공선에의 합목적성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18년 전 귀농했던 곳은 생태공동체를 지향하는 기획마을이었다. 기반시설도 마무리가 안된 마을에 시골과 공동체라는 이상향에 끌려 먼저 내려왔던 몇 가정이 사전 공부도 부족한 상태에서 순진한 마음으로 밥상공동체를 시도했다.

마을 식당에서 함께 밥을 짓고 나누며 따뜻한 연대의 기쁨을 나눌 줄로만 알았는데 며칠 만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니까 나는 김치찌개를 되게 좋아했고 다른 사람은 그걸 싫어했다. 대신 그는 나에게는 생소한 생선찌개를 좋아했다. 말하자면 서로 식성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서로가 며칠은 티를 안내고 꾸역꾸역 먹어주다가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말을 꺼냈다. 사람에게 먹는 일이 얼마나 귀한 즐거움인데 그걸 참아내기는 어려운 일이고 행복을 찾아 어렵게 내려 온 시골에서 굳이 그럴 이유도 없었다.

또 밥상공동체를 했던 이유가 사람 살리는 밥을 나누며 연대의 따뜻함을 알자는 거였지 밥상공동체 자체는 아니었기 때문에 시작하고 몇 주 만에 원만하게 각자의 밥상으로 돌아갔다. 이 경험으로 내가 깨달은 건 이념이나 이상이란 것이 겨우 김치찌개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까지 비교적 완전한 줄 알았던 인간의 연약함을 늦게라도 발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인간은 매우 이성적인 존재지만 결국은 가슴에서 수렴이 되어야 하는 감정의 동물이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대신 함께 하는 작은 연대를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는 그게 개인에 따라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공동체가 맞지 않는 성향의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그게 나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전국적으로 귀농 바람이 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들의 권위주의와 폭력으로 야만적인 교실을 경험했던 86세대의 공교육에 대한 공포가 자녀들에게 투사되어 나타난 현상이 대안학교 였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그 자녀들이 성장해서 떠난 대안교육 현장이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하고 쇠락해간다.  

아무튼 당시 나이 40대 전후의, 20-30대 나이에 이미 기존 질서를 무너뜨린 집단기억을 가진 86세대들 중에 삭막한 도시생활과 비정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귀농을 적극 선택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타났다. 그런 분위기를 일찌감치 감지한 동물적인 감각의 사업자들이 가만 있지 않았다.

인터넷에 귀농귀촌을 검색하면 관련된 수많은 정보들 중에 86세대들이 혹할 만한 생태, 대안교육, 경제공동체 등의 이념과 목적 등이 엄숙하고 진지하게 쓰인 홈페이지 아래 생태마을을 만든다며 멀쩡한 산을 깎아 만든 전원마을이 그림처럼 그려지곤 했었다.

그 사업자는 20대 시절 이념에 포획된 경험이 있는 86세대의 이성과 감성을 정확하게 포착했던 것이다. 그 중 일부는 엄숙하고 진지한 이념과 목적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대체로 엄숙하고 진지한 이념은 사업자의 이익을 위해 소비되는 도구에 불과했다.

협동조합은 비정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경제공동체다. 2011년 협동조합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불었던 협동조합 바람이 택시업계에도 일어났다. 2015년 박계동 전 국회의원이 서울에서 '한국택시협동조합' 이란 이름으로 첫 출범을 한 이후 2024년 현재 전국적으로 140여 개로 급증해 있다.

협동조합택시는 법인택시와 개인택시의 중간 층위에 위치해 있다. 탈퇴시 돌려 받을 수 있는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이 된 후 일정액의 월 회비를 내면 운행 수익은 개인이 가져가는 형태다. 대체로 서울 개인택시 면허가격의 절반이하인 출자금만 있으면 사납금이라는 족쇄를 풀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개인택시가 어려운 법인택시 기사들에게는 동굴 끝에 비치는 빛이다.

협동조합 택시의 양극단
 

2022년 1월 4일 서울시 마포구 한국택시협동조합에 운행이 불가능한 택시들이 방치돼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12월 30일 한국택시협동조합에 파산을 선고했다. 국내 첫 택시 협동조합인 이 조직은 택시 기사들이 직접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이 됐고, 사납금 제도 대신 수입 전체를 회사에 납부하고 월 단위로 정산하는 전액 관리제를 도입하면서 성공한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운영난을 겪다가 2020년 10월부터 법정관리 절차를 밟은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하지만 인터넷 검색창에 오르는 택시협동조합 관련 뉴스 기사를 보면 조합의 실체가 양극단을 오가는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검색창에 떠 있는 기사 제목 몇 개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법인택시 대안 아니었어요? 한순간에 박살 난 택시조합' KBS 2023.08.05
'출자금도 못 돌려줘' 협동조합택시 제도개선 시급' KBS 대구 2023.04.26
'취지는 택시 협동조합 운영은 사납금제 판박이' 중도일보 2023.08.07
'조합금 70억 원만 날리고 청산이라니…개인이 조합의 경영권을 독점한데서 시작' KBS 2023.08.05


제목만 읽어도 앞뒤 상황이 비디오처럼 보여진다. 이와는 상반된 기사들도 있다.

'안산 택시협동조합 "사납금 하나 없앴더니, 많은 게 달라졌다." 경향신문 2024.03.20

이 기사에서 이신택 이사장과 홍석표 이사는 출범 6개월 만에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택시협동조합으로 성장한 이유를 '상호간의 신뢰라는 협동조합 원칙을 지킨 결과'라고 말했다. 너부 뻔한 대답이지만 나는 이 말을 진지하게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 조합은 출자금이 5500만 원, 조합원이 매달 내는 관리비는 80만 원이었다. 울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사납금 걱정없는 '택시협동조합'업계 위기 돌파구 될까' 울산매일 2024.02.27

택시협동조합 '해오름교통' 한희창 이사장은 그 이유를 "매달 소정의 관리비를 제외한 모든 수익을 조합원들에게 배당하는 데다 사납금도 없어 가능한 부분"이라고 기사는 전한다. 법인택시 경험이 있고 개인택시를 하는 나는 사납금 대목에서 그 가능성을 십분 이해한다.

두 조합이 순항하는 이유는 법인택시의 고질병인 사납금을 없앤 것과 함께 협동조합 본래의 이념에 충실한 결과다. 그게 무너지는 순간 언제라도 순항은 멈춘다. 해서 경제공동체인 협동조합의 이념을 되새기는 기회를 정기적으로 가지는 한 편 조합운영진과 조합원 상호간 견제장치를 단단하게 하고 풀지 않아야 한다.

또한 조합원 모두의 경제공동체인 협동조합의 성패는 앞서 기술한 '공정과 연대의 정신으로 뿌리 내린 모두의 이익을 위한 공공선에의 합목적성'에 충실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경제공동체의 이익이 공정하게 배분되었는가 아니면 사적 이익으로 숨겨졌는가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지방에 있는 택시협동조합에 출자해서 운전대를 잡았던 선배에게 최근 들었던 생생한 사례가 있다. 법인 택시 상무를 했던 사람들 몇 명이 조합을 설립하고 조합원을 모집했다. 50명이 모였다. 차 한 대에 2인이 교대하는 경우는 2천만 원, 1인 1차는 4천만 원을 출자했다. 위 기사에서 언급한 안산택시협동조합에 비해 출자금이 적은 대신 이 조합은 월정액이 아닌 기준금으로 하루 12만 원을 받았다. 사실상 사납금이었다.

정관에는 협동조합의 정신과 이상을 아름답게 썼지만 실제 조합 운영은 오랫동안 택시회사에서 익힌 구태를 답습했다. 운영은 조합위원장과 그 수하들로 채워진 임원들이 속닥여서 했고 운영현황은 공개하지 않았다. 문제제기하는 조합원은 징계하고 해고했고 똑똑한 조합원은 조합비를 돌려주고 내쫓았다. 분쟁이 일어났고 각종 소송이 열 개가 넘게 걸렸다가 결국 위원장을 포함한 운영진은 법적으로 쫓겨났고 조합원 내에서 새로운 운영진이 선출됐다.

협동조합 정신에 공감하고 동의했고, 법인택시보다는 훨씬 나은 환경에서 경제공동체의 정신과 목적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동고동락하는 택시운전사이기를 기대했던 선배에게 닥친 건 내분과 알력과 소송이었다. 2년 동안 그 선배가 감당해야 했던 감정소모는 둘째치고 노동수탈적 법인택시 업계를 뒤집을 수 있는 택시협동조합의 아름다운 정신이 그런 식으로 소모되고 소비되는 현장을 목격하는 건 견디기 어려운 마음이었다고 고백했다. 

협동조합을 위장한 약탈적 사업자에게 똑똑한 조합원으로 분류되었던 선배는 다행 출자금을 전부 돌려 받고 택시협동조합을 탈퇴했다. 선배는 전국에 있는 140여개 조합 중에 제법 많은 수가 기존 택시 회사 임원 출신들임을 강조하면서 그 관성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 택시가 잘 굴러가기가 쉽지 않을 거라 우려했다. 김치찌개 하나 양보하지 못한 공동체 정신의 소유자인 나는 선배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도 법인택시에서는 탈출해야 겠고 개인택시를 사기엔 역부족인 사람들은 매우 절실하게 택시협동조합 문을 두드린다. 협동조합의 이념이나 목적성에 앞서 자금 부족이나 개인택시 면허가격의 불안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현실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은퇴 없는 행복한 일자리가 되려면
 

2015년 7월 1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한국 최초 협동조합택시 출범식'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내년 2025년이면 출범 10년이 되는 해다. 전국에 걸쳐 폭발적으로 늘어난 택시협동조합을 알리는 홈페이지에는 자율적이고 자발적이고, 수익을 증대 시킬 수 있고, 출자지분을 양도양수 할 수도 있고, 은퇴없는 행복한 일자리이며, 프랜차이즈를 통한 부가사업으로 추가 수익까지 올릴 수 있다는 아름다운 단어들의 향연이 펼쳐져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출자 조합원을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로 구분할 수 있는지, 협동조합에서 조합원과 합의된 계약으로 운영되는 일 기준금이 사실상 법에서 금지하는 사납금과 어떻게 다른지, 퇴사한 조합원에게 돌려주지 않는 출자금을 계속 사적 계약 문제로만 방치할 건지, 조합운영진의 공적 관리주체나 부실 택시조합 처리 문제 등 법으로 보완하고 공공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것과 상관없이 이제 법인택시에서 행해지는 '주 69시간 근무제'보다 더한 주 72시간 노동은 사라져야 한다. 아울러 택시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전근대적인 노동수탈 구조의 근간인 변종사납금제 역시 택시 현장에서 완전하게 치워져야 한다.

올해 8월 전국적으로 시행 예정인 주 40시간 완전월급제가 법인회사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가운데 올 여름 택시업계는 큰 폭풍이 예고되어 있다. 이런 와중에 택시업계 일부는 자연스럽게 택시협동조합으로의 변화도 모색 중에 있다는 소식이다.  

각자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찾고 있는 택시협동조합은 그러나 택시 이전에 모두의 이익을 위한 공정과 연대의 경제공동체로서의 협동조합 정신을 분명하게 천명하고 실천하려는 방법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계약서와 같은 방식으로 먼저 구체화되어야 한다.

오직 사적 이익에만 관심있는 사업자들이나 노동수탈에 익숙한 오랜 택시사업자들의 묵은 관행으로 운영되는 택시협동조합의 피해가 이미 많은 언론기사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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