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6일간의 동남아 순방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영접 나온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 주장대로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국회에 욕설한 것이라면, 사과도 바뀐 대상을 향해야 마땅하다. 주호영 국민의 힘 원내대표도 "그 용어가 우리 국회의 야당을 의미한 것이라고 했더라도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정의당이 대통령에게 직접 "사과에는 시기가 따로 있지 않다. 사과하시라"고 요구했을 때,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과할 일을 하지 않았다"였다. 이 상식을 뛰어넘는 발언이 이해 가능한 조건은 하나뿐이다. 애초에 보도된 발언 내용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 자체가 누구보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에게 모욕적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라. 두 명이 길을 다니면서 그중 한 명이 행인의 발을 밟거나 길을 막는 등의 일을 벌일 때,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해명하고 사과한다면 어떨까? 이런 행동은 당사자가 판단능력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 본인은 물론, 주위 누구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대통령 욕설 논란에 '유감'을 언급하긴 했으나, 그것은 가정에 근거한 '잠재적 유감'이었다. 그는 앞의 발언에 앞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후 두 달 넘게 대통령실과 여당 그 누구도 '사실관계'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 기막힌 상황은 이후 이태원 참사 책임규명이 어떻게 흘러갈 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무책임의 카르텔' 중심에 대통령이 앉아 있다.
지난 14일, 국회에서는 독특한 장면이 펼쳐졌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이상민 장관을 향해 "본인의 소속과 직함을 말씀해 달라"고 요구할 때, 물끄러미 바라보며 침묵으로 일관한 것이다. 그는 "행정안전부 장관"이라는 직함 자체가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웅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정부 '행정안전부 열린장관실' 홈페이지에는 이상민 장관 사진 위에 대문짝만하게 쓰인 글귀가 있다.
"안전한 국민, 일 잘하는 정부. 행정안정부 장관 이상민"
이 표어는 부조리함을 넘어, 조롱으로 까지 들린다. 우리가 '무책임'의 대명사로 기억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조차 세월호 사태 이후 '최종 책임자'로서 눈물을 흘리며 대국민 사과를 했고, 재난안전 주무처인 안전행정부 수장이었던 강병규 장관을 취임 두 달 만에 경질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거부한 것은 물론, 순방에서 돌아온 뒤에는 마중 나온 이상민 행정안정부 장관에게 "고생 많았다"는 위로까지 건넸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대통령을 뽑은 것일까? 불과 10년도 안 된 비극에서 우리는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일까? 온 사회가 집단 기억상실에라도 걸렸던 것일까? 아니면 이준석 전 대표가 고백하듯, 여당과 대통령 측근이 '양머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속여 판 까닭에 유권자들이 속아 넘어간 것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는 앞으로 4년 반 동안 살아남아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책임한 대통령을 통제하는 것이다. 지난 6개월간 줄곧 '자유'를 외치던 대통령은, 스스로 언론 통제를 시작한 시점부터 슬그머니 '국익'과 '헌법수호'로 구호를 바꿨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큰 국익은 없으며, 헌법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닌 시민들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8년 전 전국 거리에서 수없이 외쳤건만, 이 헌법 첫 구절은 생경하게만 들린다. 헌법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우리사회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되돌아간 까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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