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07 19:46최종 업데이트 24.03.0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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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초저출산은 사회 격차에 따른 결과적 현상일 뿐이다. ⓒ 셔터스톡

 
한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지난해 5월 17일 발표한 보고서 '통계로 보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 현주소'에 따르면, 한국은 2023년도 G7 정상회담에 공식 초청될 정도로 경제, 혁신, 안보 분야에서 이미 G7 선진국이다. 경제력으로는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6위의 대국이며, 글로벌 혁신지수와 군사력지수 역시 세계 6위의 강국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또 다른 얼굴의 대한민국이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표한 '2023년 자살 예방 백서'에 따르면 20대 청년 자살률이 매년 급증하고 있다. 2016년 1097명에서 2021년 1579명으로, 5년간 증가율이 거의 50% 수준이다. 극단적인 선택의 이유로는 정신적 문제가 절반을 차지했고, 경제적 어려움도 5명 중에 1명을 차지할 정도로 심각하다. 특히 2030 세대 여성의 경우 다른 연령대보다 자살 사망자 비중이 높다.


물론 세계 어디에나 양지와 음지는 있다. 하지만 수치가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두 얼굴은 매우 모순적이다.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로 연간 2천만 명 이상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고급 외제차인 포르쉐 수입량이 세계 5위인 나라이지만 GDP 대비 세계 최고의 가계부채에 시달리고, 연간 1만 3천 명 이상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부모가 자식을 죽인 뒤 자살하는 가족살해 사건도 빈번하다.

이런 야누스적인 대한민국의 두 얼굴을 설명해 줄 단어는 하나뿐이다. 바로 '양극화'다. 양극화 체제란 사회의 모든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런 격차가 확대 재생산되도록 구조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다가 드디어 2023년도에 합계출산율 0.72명을 기록했다. 아마 올해는 0.6명대를 기록할 것이다. 이것은 여성 100명과 남성 100명이 있는 사회라면 두 세대 만에 자녀가 25명으로 준다는 의미다.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며 미국의 어느 교수가 머리를 부여잡을 정도로 극단적인 초저출산의 원인은 우리 모두가 예상하는 그대로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표한 제4차 기본계획보고서에 정확히 명시되어 있다. 바로 '격차'다.

청년층이 선호하는 안정된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20% 수준이다. 즉 청년 5명 중 4명이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임금에 시달린다는 말이다. 게다가 가구소득 상위 20%의 교육비 지출액은 하위 20%에 비해 20배 이상 높다. 즉 상류층이 자식에게 200만 원을 쓸 때 하층계급은 10만 원밖에 쓰지 못한다. 상위 10%나 1%로 높이면 교육비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성차별적인 노동시장도 원인이다. 일하는 여성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성별 임금 격차 역시 2022년 기준 31.1%로 OECD 최고 수준으로 벌어져 있다.

청년 자살 증가와 저출산 뿌리 같아
 

삶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뿌리에는 극단적인 이윤 추구의 경제체제에 있다. ⓒ 셔터스톡

 
그러나 이런 임금소득 격차도 지난 5년간 부동산 폭등에 따른 자산 불평등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물론 전체 자산 불평등도 금융자산 불평등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금융자산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66으로, 자산 불평등(0.61)과 소득 불평등(0.43)보다 더 높게 나온다. 지니계수는 클수록 불평등도가 높다. 여기에 갈수록 벌어지는 지방과 수도권 격차, 교육 격차, 건강 격차, 문화 격차까지 더하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극단적인 '쏠림'과 '대물림', '진입 장벽화'라는 세 가지 고질병에 시달리는 환자라고 할 수 있다.

초저출산은 이런 격차에 따른 결과적 현상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대책이랍시고 아무리 세계에서 제일 긴 남성 육아휴직 기간을 내놓아도 실제 사용률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정규직 비율을 가진 나라에서 54주에 달하는 육아휴직을 누가 마음대로 사용하겠는가? 한번 비정규직은 전 생애 동안 비정규직이 되고, 한번 나락으로 떨어지면 영원히 루저로 낙인찍히는 그런 사회 시스템 속에서 누군들 공포스럽지 않겠는가? 합계출산율 0.72는 바로 청년들이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공포지수인 셈이다. 이러니 청년들이 지금의 삶을 자기 대에서 끝내겠다고 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삶에 대한 이런 불안과 공포는 어디서 왔을까? 그 뿌리에는 미국 사회사상가 낸시 프레이저가 소위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라고 비판한 극단적인 이윤 추구의 경제체제가 있다. 인간이 다음 세대를 낳으며 같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돌봄, 교육, 주거, 먹거리, 환경 등이 그것이다. 이윤 주도의 경제체제가 상품화하는 데 제약을 둬야 할 것들까지 다 포식하려고 사회질서를 재편하고 있다고 프레이저는 비판했다.

경제가 잘 작동되게 하려면 경제를 떠받치는 사회적 재생산을 이뤄야 하고, 생태자연도 지속가능하게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자본주의는 마치 자기 꼬리를 물어 먹어 치우는 우로보로스 뱀처럼 자기를 먹어버린다. 자신이 자신을 재생산하고, 환경과 같은 자신의 기반도 더럽힌다. 자기계발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착취거나 자기약탈인 것이다. 오죽하면 청년들이 영혼을 끌어모으거나 영혼까지 갈아 넣어가며 돈벌기에 뛰어들겠는가.

청년층의 자살 증가와 초저출산은 언뜻 다른 현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가 자기 삶을 끊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다음 삶을 끊는 것이라는 점에서 둘의 뿌리는 같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경제대국은 결국 자기 꼬리인 미래세대와 자연환경을 갈아 넣어 만든 것이다. 청년들이 일찍이 헬조선, N포 세대, 엄친아, 흙수저라고 외칠 때 그들의 분노를 눈치챘어야 했다. 정권만 바뀌었지 식인 자본주의는 여전한 사회에서 이들의 분노는 두려움이 되고, 절망은 자포자기가 되어버렸다. 연애, 결혼, 출산이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특권이 되어버렸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정부가 저출산을 해결하겠다고 아무리 대책을 마련해도 이처럼 갈수록 벌어지는 격차사회를 줄이지 못한다면 조만간 청년들은 자신들의 결심이 얼마나 합리적인 생존방편인지 합계출산율 0.6, 0.5, 0.4로 답해줄 것이다. 이것이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중요한 이유다.
 

박혜영 / 인하대 영문과 교수 ⓒ 박혜영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박혜영 인하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낭만주의 영시를 전공했습니다. 생태정의, 기후위기, 탈성장 전환 등의 주제에 관심이 많으며, 생태 문제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다룬 저서로 <느낌의 0도: 다른 날을 여는 아홉 개의 상상력>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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