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02 14:06최종 업데이트 22.08.0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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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7월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대통령 업무보고 사전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만 6세에서 만 5세로 앞당기겠다는 7월 29일 교육 부총리 발표 후, 반대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총리 등이 조기 의무 교육을 실시하는 대표적 국가로 영국을 언급했다. 맞다. 영국의 공식 의무 교육은 만 5세, '사실상의' 의무 교육은 그보다 더 이른 만 4세에 시작한다.

하지만 영국의 조기 의무 교육은 한국과 큰 차이가 있다. 영국 초등학교 1학년생의 교육은 한국 초등학교 1학년 과정과 매우 다르다. 한국 교육부의 만 5-6세 아동에 대한 고민은 충분한 것일까.


경험에 의하면 영국의 4-6세 아동 교육의 최우선은 정서적 안정이었다. 이 목표 하에 부드러운 전환이 강조되고, 이를 위해 교육 프로그램 곳곳에 연속성이 섬세하게 설계돼 있다. 공간적으로는 영유아 교육시설부터 초등학교까지 연속 배치시킨다. 카펫 생활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책상 생활로 유도함으로써 인위적 훈육의 느낌을 최소화한다. "개방된 공간" 속에 신체 발달 과정에 맞춘 놀이터를 각각 제공하고 교과목 교육보다 통합교육을 실시한다. 이것은 잉글랜드 지역 대부분 초등학교 교육의 공통점이다. (관련기사 : 빈 가방의 영국 초등생, 그러다 세상 흔드는 천재들 http://omn.kr/1w4c5)

영국의 만 4세 조기 의무교육

현재의 영국 초등학교 시스템은 150년 경험의 축적물이다. 의무 교육 시작 연령인 '만 5세'는 1870년 초등 교육을 의무화할 때 정해졌다. 20세기 초반에 제기된 아동 복지 및 위생 문제, 1920-30년대의 인구 문제, 그리고 2차 대전 기 여성 노동력 필요에 따라 추가로 공교육이 확대되었다. 이런 다양한 시도의 결과가 현재 초등학교에 붙어 있는 0학년(Year Reception) 과정이다. 부모가 원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아도 되나 안 보내는 사람이 없고 1학년과 불가분한 관계이기 때문에 의무 교육은 '사실상' 만 네 살부터 진행된다. 

영국 케임브리지 남쪽 트럼핑턴에서 태어난 둘째 아이는 동네 프로그램을 따라 다니다가 1959년 설립한 인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소규모 교육을 표방하는 전형적 공립 초등학교로 한 학년이 한 학급이고 전교생이 200여 명 남짓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 주변의 주택 개발 사업으로 인구가 증가, 학년 당 두 학급으로 늘렸다.

대부분 동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이 초등학교를 맴돌며 자랐다. 시작은 학교 식당이었다. 이것은 이 학교의 고유한 특성으로, 학교는 동네 엄마들이 놀이모임(play group)을 할 수 있도록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반에서 11시 반까지 식당 건물을 빌려줬다. 식당 건물 안에 작은 방도 하나 내주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오랜 기간 하나둘씩 기부했을 장난감과 책이 가득하다. 꺼내서 가지고 놀다가 깨끗이 청소해 놓고 떠나면 된다. 1년 단위로 역할을 나눠서 참가하다가 떠날 때가 되면 뒷사람에게 열쇠 넘기는 구조다.

아이는 만 3살이 되면서 학교 식당에서 초등학교에 딸린 어린이집(nursery)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부가 매주 15시간 보조하며, 태어난 달에  따라 1년에서 1년 반까지 다니게 된다. 그 다음으로 가는 곳이 아래 사진에 보이는 0학년 (만 4세) 전용 공간이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초등학교 건물로 들어간다.
 

영국의 4~5세에 해당하는 0학년 2개 반, 60명이 지내는 곳이다. 사진에서 보이지 않지만 사진 오른쪽에 만 3~4세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있다. 둘은 5미터 남짓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사진 왼쪽 너머에는 초등학교 본 건물이 있다. ⓒ 권신영

  
식당-> 어린이집-> 0학년-> 초등학교. 모두 분리되어 있으나 또 붙어 있다. 위 사진은 4-5세에 해당하는 0학년(Reception) 2개 반, 60명이 지내는 곳이다. 사진에서 보이지 않지만 사진 오른쪽에 만 3-4세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있다. 둘은 5미터 남짓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사진 왼쪽 너머에는 초등학교 본 건물이 있다.    

어린이집과 0학년의 공간은 "열린 공간"을 추구했던 20세기 전반기 교육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1914년 기독교 사회주의자인 마거릿 맥밀런(Margaret McMillan, 1880-1931)은 당시 최악의 도시 위생으로 전염병이 끊이지 않았던 런던 빈민가에서 바깥 활동을 최대치로 늘리고 놀이 위주로 교육을 실시했다. 실내 감염을 줄이겠다는 실용적 목표와 아동이 땅, 햇빛, 공기를 가까이 해야 신체적 정서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교육 철학의 결과물이었다. 이를 구현한 곳이 18개월-7세 아동을 대상으로 세워진 런던 뎃퍼드(Deptford) "열린 공간" 어린이집이었고 이후 영국 어린이집과 0학년 공간의 주 모델이 되었다.    
    
놀이모임부터 초등학교 입학 과정까지 아이는 공간적 이질감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열려 있고 연속적으로 설계된 공간 구조에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다. 0학년이 되면 교복을 입는다고 흥분했고, 0학년만 쓸 수 있는 난이도 높은 놀이터에 가보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정식 초등 1학년생이 된다는 것은 '드디어 나도 큰 정문으로 등교한다'는 오랜 기간의 부러움을 해소할 기회였다.   
      
카펫과 혼합 학년

0학년 교실에는 책상이 없다. 대신 큼지막한 카펫(carpet)이 정중앙에 있었다. 나름의 질서가 있다. 카펫 위에는 공책만한 화이트보드 30개가 6줄로 정리되어 놓여 있고, 아이들은 선생님이 지정해 주었을 자기 자리에 앉는다. 화이트보드에 낙서도 하고 알파벳도 쓰면서 친구들이 다 올 때까지 기다린다.

 카펫 생활은 책상 생활로 가기 위한 전단계로 '가만히 앉아 있는' 첫 연습이다. 카펫에 앉아 있는 시간도 길지 않다. 영국 초등학교는 '1교시=몇 분'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때그때 아이들 상황을 보아 가며 탄력적으로 운영했다.

만 다섯.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는 카펫과 책상이 공존한다. 비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자원 봉사할 때 본 바로는 책상 생활이 길지 않았다. 출석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첫 일과를 카펫에서 시작한다. 필기할 필요가 없을 때는 카펫에서 수업을 진행한다. 쓰거나 계산할 때 책상에 앉아서 조금 공부하다가 또 "카펫 타임"을 갖는다. 이것이 끝나면 밖에서 노는 시간으로 이어지고 카펫으로 돌아와 간식 먹고 책상에 앉아 공부를 조금 한다. 그러다 보면 점심 먹으러 식당에 갈 시간이라며 줄을 서라고 한다. 산만하다 싶을 만큼 아이들을 계속 움직이게 했다.

카펫은 초등학교 끝까지 간다. 큰 아이 경험에 따르면, 졸업할 때까지 아침 출석 확인은 카펫에서 했다고 한다. 이때가 되면 앉아 있는 게 힘들어서 라기 보다는 우애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만 4-6세 (0학년-2학년) 아동에 대한 신중함은 혼합 학년 (mixed year) 제도에서도 나타난다. 혼합 학년이란 0학년과 1학년 사이 0/1학년, 1학년과 2학년 사이 1/2학년을 뜻한다. 이 연령대에서는 생일이 앞선 아이와 늦은 아이의 발달 차가 크다는 사실을 주목한 것이다. 실시 여부는 학교장 재량이다. 각 해의 학생 인적 구성에 따라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고, 없다가도 생길 수 있다. 
 

2020년 3월 19일 영국 사우스런던 에드먼드 월러 학교의 수업 모습. 자료사진. ⓒ 연합뉴스

 
문제는 조기교육의 내용

0학년이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아침, 아이를 등교시키다 옆 반 엄마를 만났다.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반 선생님한테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반을 섞는대. 들은 거 없어?"
"그래? 아무 이야기도 못 들었어."

"아무렇지 않아? 새로 온 교장 선생님이 반을 섞고 싶어 한다잖아?"
"그게 왜?"


나로서는 흥분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반을 섞는다니까."

반대로 그녀는 나의 미지근한 반응이 어이없다는 눈치였다.
 
"한국은 매년 바꿔."
"뭐?"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반을 섞는 건 내게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영국에서 반을 섞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초등학교를 다녔던 큰 아이의 경우, 학년 당 반이 1개라 반을 바꾸고 말고 할 여지도 없이 그대로 쭉 같이 올라갔다.  

반을 섞는 게 대수인가 싶어 싫은 이유를 물었다. 요는 아이의 정서적 안정이었다. 1학년으로 가는 것은 카펫 바닥 생활에서 책상 생활로 전환되는 것으로, 초등학교 과정에서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인데 교우 관계까지 흔드는 것은 "재앙"이라는 것이었다. 영국에서 반 섞기는 중등학교부터 그것도 2-3년에 한 번씩 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했다.

그 날부터 학부모 사이에서 '반 섞기가 아동에게 미치는 정서적 영향'에 대해 격론이 벌어졌다. "두 반 섞어봤자 50퍼센트는 다시 같은 반이야" "6년 동안 같은 반이면 지루하지 않아?" "마음이 더 잘 맞는 친구를 만날 수도 있잖아" 라는 내 의견은 '그런 측면도 있겠네' 정도일 뿐이었다. 소문에는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라고 했다.  

이 논의를 한방에 잠재운 것은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었다. 얼마 후 교장 선생님은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며 이유로 자폐와 언어 발달 등 특별 도움(special need)이 필요한 아이들이 한 반에 치우쳐 있어 충분한 보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매년은 아니고 학생들 상황을 봐가며 2년에 한 번씩 반을 섞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정서적 안정 주장을 순식간에 잠재웠다. 2년이란 소리에 위안을 받으며  반 섞기가 가지고 올 긍정적인 요소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반 섞기가 대수롭지 않았던 나로서는 영국 교육의 핵심어,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딪쳤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것은 형식이다. 형식에 있어 절대적 우열은 없다. 문제는 내용이다. 만 4세의 영국이나 만 7세의 북유럽 모두 각자의 시스템을 원활히 운영할 수 있는 이유는 아동 교육에 대한 분명한 목표와 그 목표에 따른 구체적 내용이 내실 있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동의 발달 단계를 심도 있게 관찰하고 그것을 섬세하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과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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