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초상화 작품에는 '여성에 대한 우정'이 있다

[미술관에 간 페미니즘] 여성 예술가들을 지지한 마그리트 제라르

등록 2024.04.03 15:46수정 2024.04.0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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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의 초상을 그리는 미술가. 1800 ⓒ 마그리트 제라르

 
마그리트 제라르(Marguerite Gérard)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소개하는 화가다. 그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로코코 시대를 대표하는 풍속화가이자, 초상화가이다. 7남매의 막내인 제라르는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결혼한 언니 마리 앤 프라고나르의 집에서 자랐다. 마리 앤 프라고나르는 미니어처 화가로 활동했고, 그의 남편은 오늘날 로코코 미술의 대표작가로 알려진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였다. 프랑스 혁명 전에 이 화가 부부는 루브르궁에 거주했고, 제라르도 이들과 함께 루브르에서 성장했다.

제라르는 14세에 형부인 프라고나르에게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림을 배우던 시절 프라고나르와 함께 작업한 판화들이 남아있는데, 이 중 몇 점은 제라르의 단독 작품이라고 미술사학자들은 판단한다. 여성 화가들의 작품 중에는 스승이었던 남성 화가들의 작품으로 귀속되거나 공동작품으로 알려진 경우가 종종 있다. 게다가 제라르가 프라고나르의 지도를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홍보가 이루어지면서, 제라르의 예술에서 프라고나르의 역할은 과대평가됐다. 하지만 제라르는 점차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그의 세계를 발전시켰다.


20대부터 풍속 화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제라르는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갈 정도의 실력을 인정받았으나, 여성 예술가 수를 4명으로 제한하는 규칙 때문에 회원 자격을 얻지 못했다. 당시 여성들은 미술학교에서 교육받을 수도, 제도적 경쟁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형부인 프라고나르에게도 비공식 제자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제약들에도 불구하고 제라르는 왕성하게 작업하여 전시에 참여한다.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에 살롱이 여성들에게 개방되면서 전시할 기회가 늘어났다. 부유한 수집가들이 제라르의 작품을 구입해 집에 전시했고, 상류층의 후원을 받기도 했다. 1806년 작 '나폴레옹1세'를 나폴레옹이 직접 구매하기도 했으니 당시 제라르의 화가로서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여성들의 우정 보여주기  

마그리트 제라르가 유명세를 얻은 데에는 당대의 이데올로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덕도 있다. 제라르는 초기에 온화한 모성과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주로 그렸다. 이 시기 여성 화가들은 수를 놓거나 육아 중인 여성의 현실을 그림에 많이 담았다. 그러나 당시 여성 화가들이 집안일을 하는 여성의 모습을 많이 그린 이유가 여성의 노동을 보여주려는 의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8세기 직업 여성 화가들이 등장하면서 여성은 아마추어, 남성은 전문가라는 구별짓기가 팽배했고, 여성 화가들은 자신들의 성장이 기존 질서를 너무 위협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주어 타협할 필요가 있었다. 귀족의 후원을 받거나, 시장에서 전문화가로 살아가기 위해 가정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강조해야 했다. '잘 자라, 내 아가'에서 한 여성은 아이를 재우기 위해 악기를 연주한다. 바구니 속의 아기는 눈을 감고 편하게 잠이 든 모습이다. 제라르는 친밀한 가정 생활 장면을 묘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집에서 기르는 귀여운 고양이와 강아지도 제라르 작품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부유한 중산층 집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상을 묘사한 제라르의 그림들은 편안하고 사랑스럽다. 혁명 이후 살롱에 여성의 자리가 조금 생겼다고는 하지만 여성 화가 작품의 주제가 진보하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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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라, 내 아가. 1788 ⓒ 마그리트 제라르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마그리트 제라르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여성들의 관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래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여성들이 자주 보인다. '실내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에는 여성들이 모여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담겼다. '음악회를 위한 전주곡'에서 여성은 악보를 펼쳐놓고 곡을 연습한다. 노래를 부르는 듯 한 여성의 발 아래 작은 개가 올려다본다. 소리에 민감한 개가 주인의 노래에 집중한 모양이다.


이는 당시 여성들이 미술만이 아니라 음악 교육을 받았고 취미로 악기를 다루는 이들이 늘어난 현실을 보여준다. 상류층 여성들은 음악회를 기획하거나 직접 연주에 참여하기도 했다. 미술에서 아마추어 화가와 전문가 화가의 구별짓기가 있었던 것처럼, 음악에서도 여성의 활동은 취미활동으로만 여겨지곤 했다. 제라르는 몇몇 작품을 통해 음악하는 여성에 대한 우정을 표현하고 여성 예술가들을 지지했다.

제라르의 수많은 작품 중 단연 대표작으로 꼽고 싶은 그림은 '음악가의 초상을 그리는 미술가'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여성 음악인을 여성 화가가 그리는 장면을 담아냈는데, 이는 여성 뮤즈와 남성 작가, 혹은 여성 모델과 남성 화가의 구도를 벗어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제라르는 형부이며 스승이었던 프라고나르의 죽음 이후에도 언니와 17년 동안 계속 함께 살았다. 제라르는 가정에서 아이를 기르는 아름다운 어머니 모습을 그림에 많이 담았지만, 자신은 결혼하지 않고 직업 화가로의 삶에 몰두했다. 그녀는 뛰어난 초상화가로 75세까지 살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여성을 전문가의 얼굴로 보여주며 이들 간의 우정까지 다룬 직업 화가로 살아간 제라르는 300점 이상의 풍속화, 80점의 초상화, 그리고 몇 점의 미니어처들, 많은 판화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남겼다.
   
덧붙이는 글 글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4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페미니즘 #미술관 #마그리트제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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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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