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의 투쟁, 기억공간

[기억은 공간에 스민다]

등록 2024.04.02 11:07수정 2024.04.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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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공간을 통해 살아간다. 사회를 뒤흔든 비극적인 사건이나 참사가 일어난 곳에는 오랫동안 특정 기억이 강하게 남는다. 반복되는 참사를 겪으며 우리는 너무 많은 생명이 떠나는 모습을, 그리고 국가가 외면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사람들은 기억하기에 절실해졌고, 기억하길 욕망했다. 그들은 머리와 마음에 있던 기억을 밖으로 꺼내 형상화하고자 한다. 실재가 있어야 기억하려는 욕망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공간은 특정 기억을 형상화해 힘을 싣는다. 기념관, 박물관, 기억교실, 기억공원과 같이 안정된 기억공간이나 분향소, 천막과 같이 일시적인 기억공간은 모두 특정 장소에 특정 의미를 부여한다. 사건이 일어난 곳, 연관된 사연이 있는 곳에서 그 사건이 주는 의미와 가치가 살아난다.

추모나 기억은 과거에 대한 것 같지만, 실은 미래에도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현재의 문제이다. 그래서 기억과 공간의 결합은 다양한 현재 행위자들의 일이다. 일어난 일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 같이 공감하려는 사람들, 이야기를 묻고 지나가고 싶은 사람들, 이야기를 막고 싶은 사람들의 만남이다. 만남은 곧잘 치열해진다. 이야기를 통해 마련되는 공간이 곧 자기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기억하려는 이들과 밀어내려는 이들의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적 참사 역시 잊지 않기 위해 필연적으로 기억공간으로 만들어지는 ‘기억의 영토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분명히 갈등이 발생하고, 기억이 소멸할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사회적 참사에 대한 기억은 소멸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기억과 공간의 관계, 기억공간의 조건들을 되짚어야 한다.

기억 감수성과 기억공간 출현의 조건

기억공간이 주목받은 이유는 기억이 역사를 대체하는 탈식민주의postcolonialsim 흐름에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과거 시대 물건을 전시한 공간을 주로 기념공간이라고 불렀다. 국가가 역사를 기리거나 먼 옛날 사람들이 쓰던 식기, 옷, 바늘, 장신구 등을 전시한 각종 박물관이나 기념관이 대표적이다. 기념공간은 공동체의 표준과 같은 ‘공식’ 역사를 의미했다.

2차 세계대전 후 떠오른 탈식민주의 시각은 이를 비판했다. 서구, 백인, 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 등의 기준에서 표준적이고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뜻하는 듯한 ‘역사’보다 개인의 경험과 해석을 존중하는 ‘기억’이란 용어를 쓰게 됐다.

한국 사회에서 기억 감수성과 기억공간의 출현은 특히 독특하다. 탈식민지 경험을 가졌지만 한반도 분단으로 이어지면서 군사정권은 국가의 정당성을 강화시킬 박물관이나 전쟁과 적을 강조하는 기념일을 만들었다. 급속하게 이루어진 경제성장, 도시개발 속에서 국가의 발전과 연관되지 않는 기억과 유물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식민지와 전쟁의 역사 속에서 경관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지만 감수성은 달랐다. 감수성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기대, 상식, 감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쟁 후 근대식 군사적 발전주의 속에서 한국 사람들은 과거는 빨리 잊고 미래를 위해 나아갔다. 미래는 과거보다 나을 것이란 확신 속에서 과거를 오래 붙잡고 있을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경제성장을 어느 정도 이룬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왜 과거의 유산이나 기억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덮어버리고 부수는지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오랜 문화유산을 그대로 간직한 선진국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추억과 기억의 집합이듯이 도시와 골목에도 기억이 켜켜이 쌓여 그 도시의 모습이 되고 있었다. 도시의 작은 골목에도 유명한 인물이 살았던 집, 학자들이 토론했던 커피숍이 남아있다. 잘 보존된 과거의 경험과 이야기들은 현재에 울림을 주고, 교육적인 효과도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경제발전이 정체된 것이기도 했다.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는 한편 경제성장은 둔화했다.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앞을 향해서만 전진하던 우리의 발걸음도 느려졌다. 개인의 아픔, 인권, 정체성, 기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유가 생겨난 것이다. 국가의 폭력이었고 국가가 지우려고 했던 제주 4.3, 광주 5.18민주화운동 등이 재조명됐다. 아픈 역사를 과거 국가 기념관처럼 획일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기억공간으로 구성해 희생자 개인의 사연과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기억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나마 국가가 책임지는 몸짓으로 여겨졌고 기억공간의 주체도 다양해졌다.

기억공간 형성, 기억의 끊임없는 영토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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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 새겨진 현판 ⓒ 권은비

 
기억공간의 주체가 다양해지는 만큼 기억공간의 형성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곳에는 피해자의 아픔과 절규가 있고, 피해자를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희망이 있으며, 기억공간 주변에서 살아가는 주민과 상인 등의 이해관계가 있다. 또한 정책과 예산을 결정하는 결정자들의 가치, 정치단체나 이익단체의 주장 등이 첨예하게 얽혀있다. 정치적으로 기억을 지우려는 정부이거나 그에 동조하는 시민들이 있으면 그 과정은 더 복잡하고 지난해진다. 정쟁이 비교적 적었던 대구 지하철 참사도 피해자 단체 사이의 갈등 때문에 기억공간 만드는 데 12년이 걸렸고, 적이 외부에 있던 미국 9.11 참사 추모박물관 건립도 10년이 걸렸다.

기억공간 형성 과정은 기억의 영토화 과정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간적 경계를 허물고 다시 다른 곳, 다른 방법으로 공간을 점유한다. 다른 영토와 만나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기억공간을 둘러싸고 애도, 기억, 치유, 기념화 활동, 망각, 일상 회귀, 공감 피로를 포함한 다양한 욕망도 존재한다. 그 욕망은 문화적 욕구, 정치적 지향, 경제적 이익과 얽혀 있다.

기억의 영토화를 거쳐 집단의 기억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지식, 이해, 접근이 만나고 충돌하고 협상하며 진화해 간다. 누구는 죽음의 장소를 그대로 보존하여 드러내고 싶어 하고, 누구는 고인을 빈 의자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권력관계가 투영되고, 강화되고, 바뀌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국가와 민간의 예산이 많으면 전문성이 높아져 희생자, 유족, 생존자들은 밀려나기도 한다.

기억과 망각의 영토 싸움은 기억공간의 조성 여부를 두고 치열하게 대립한다. 공간은 기본적으로 한정된 자원이다. 부동산 가격이 높은 곳에 의미를 잘 전달하는 효과적인 기억공간을 만들려면 예산은 높아지고 이해관계자들은 늘어난다. 한정적인 공간과 예산은 기억 간 경합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 사건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고 직접 경험한 세대가 사라지면 그 기억의 중요성도 사라지곤 한다. 따라서 기억은 어쩔 수 없이 경쟁하게 된다. 기억과 장소는 둘 다 계속 변화하고 조작도 가능하기에 더욱 어렵다.

죽음이 발생한 장소는 기억공간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장소의 개연성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세월호 참사는 바다 한 가운데서 일어났기에 희생자들이 살았던 지역과 학교, 목적지였던 제주 등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광주, 제주, 세월호 기억공간 참여자들은 각 사례에 대한 기억공간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방문, 파트너십을 통해 공통의 정치적 경험과 문화적 서사, 상징을 만들어냈다.

기억공간이 기억하는 우리

기억공간은 나와 이 사회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어떻게 대화하는가를 보여준다. 기억공간 형성 과정에서 주체 간 갈등은 걸림돌이라기보다는 기억의 영토화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누구나 그 영토화에 나름의 방식으로 참여한다. 기억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기금이나 후원금 모금으로, 기억공간에 방문해 추모하고 묵념하는 것으로, 때론 외면하는 것으로, 조용히 혼자 기억하는 것으로, 적극적이고 끈질기게 방해하는 것으로 영토화의 부분을 만든다. 심지어 기억공간을 반대, 조롱하는 활동이 오히려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정치공세와 싸우며 참사를 기억하려는 이들은 더 연대하고, 더 많이 찾아오고, 더 다양한 논쟁을 하기 때문이다.

기억공간에 얽힌 여러 가치와 욕망은 과거의 것만이 아니다.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는 현재와 미래의 우리 모습이다. 그리하여 기억공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우리다.
덧붙이는 글 덧붙이는 글 | 글 신혜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4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기억공간 #사회적참사 #기억의영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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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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