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06 07:03최종 업데이트 24.03.0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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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는 택시기사라면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 pixabay

 
불교에서 말하는 인생은 괴로움 즉, 고(苦)다. 성경에서 인생은 고난이라고 했다. 니체가 말하는 인생은 고통이다. 쇼펜하우어도 같은 말을 했다. 인생은 고통이다. 각자가 의미하는 고통의 속내는 다를지라도 신과 신 아닌 사람들도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니 인정할 수밖에. 그래, 인생은 고통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인생이라는 고통의 바다를 건너 요단강에 이를 그때까지 마구 헤엄칠 수 있는 건 짧지만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쾌감과 즐거움을 반복적으로 우리 뇌에 선사해 주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 때문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출처가 사랑과 우정 혹은 일의 성취나 돈 때문일 수도 있고 담배나 술 혹은 마약이나 성적 쾌락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인간은 이 모든 걸 다 콜라보하며 살지만.

택시를 한다고 말했을 때 지인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그런 힘든 일을...'이었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한 '...' 이 의미하는 바는 각각 달라도 그들 머릿속 택시라는 단어를 채우는 뼈대는 고통이라는 명사였다. 그 명사 안에는 물리적인 노동 강도와 천한 직업으로 취급받는 사회적 시선이 내포되어 있었다.

택시기사라는 말을 들은 상대방의 뇌가 즉각 반응해서 쏟아놓은 형용사가 결코 아름다울 리 없다는 것을 우리는 공통적으로 잘 인지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택시는 '불쾌하다'는 단어로 정의되고 있었다. 이는 내가 소비자였을 때의 정서였는데 입장이 바뀌어 공급자인 택시운전사로 살아보니 고통의 변수가 차원이 다른 세 가지로 표징 된다. 시간과 정체와 사람이 그것이다.

'기록적인 매출'을 오히려 걱정하는 동료 기사들
 

택시운전사는 한 평 좁은 공간에서 시간과 정체와 사람을 견뎌내야 한다. ⓒ pixabay

  
택시운전은 독립노동이다. 독립된 공간에서 독립되어 일을 한다. 생리에 맞지 않는 조직 생활이 싫어 아주 오래전부터 어디든 소속되지 않은 일을 해왔는데 택시는 그런 점에는 탁월하게 내 성향에 맞는 일이다. 대신 세상 이치가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이다.

내게 홀로 자유로울 권리를 준 개인택시라는 직업은 대신 시간과 정체와 사람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 견딤의 물성을 단단하게 하는 과정이 개인택시를 사는 순간 내 삶에 부여된 과제였다.

요금을 제공할 의사가 있는, 이동이 필요한 사람들은 24시간 거리 어디에나 있다. 택시는 이 사람들을 찾아 거리를 누빈다. 법인택시 기사의 급격한 감소로 지금은 일인 일차에 탄력근무를 하는 곳이 많아졌지만 법인택시는 전통적으로 12시간 맞교대를 하고 개인택시는 보통 10시간 정도를 일한다.

그러니까 거의 모든 택시기사들은 한 평 택시 안에서 10시간 이상을 보낸다. 좁은 공간 안에서 10시간 앉아있는 것 자체가 강도 높은 노동인데 택시 매출은 정확하게 시간과 비례한다. 시간당 매출 한계가 너무 뻔해서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시간을 늘리는 거 말고는 없다.

시간이 곧 돈이다 보니 자기절제가 안 되면 수면이나 휴식, 놀이와 여가시간을 줄이게 된다. 놀이와 여가는 개인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수면과 휴식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설명이 필요 없이 생존에 직결된다. 개인택시의 위험성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대목이다. 연약한 인간이 눈앞에 보이는 돈을 따라 휴식과 잠 시간을 줄이는 일이 다반사로 목격되고 그러면서 몸이 망가지고 목숨까지 잃는 경우도 발생한다.

만약 누가 기록적인 매출을 올렸다면 동료 기사들은 축하에 앞서 당장 그 사람 몸 걱정부터 한다. 그 기록이 잠과 휴식을 줄이고 자기 몸을 혹사한 결과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리하지 마세요'가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안녕하세요'와 같은 흔한 인사말로 쓰이는 이유다.  

거리 정체, 그리고 2할의 사람들
 

개인택시는 일 하는 시간이 각자가 다르다. 오전 반과 오후 반이 있고 야간에만 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 번 시간을 나누어 일하는 사람도 있다. ⓒ pixabay

 
또한, 서울에서의 택시운전은 정체와의 기 싸움이다. 왜 기 싸움이냐면 퇴근이 시작되는 오후 6시 역삼역에서 선릉역 사이 도곡동 방향 사거리 신호등에 손님을 태우고 줄을 선 경험이 있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거기서 신호 하나 받으려 빼곡한 자동차 숲에서 맥없이 기다려야 하는 30분 이상을 손님과 함께 '기 빨리지' 않는다면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다.

그런데 서울에서의 문제는 이런 비슷한 정체가 하루 종일 시내 곳곳에서 예고 없이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예고 없이 닥친 차량정체는 맥락도 없고 수습할 대책도 없다. 유일한 해결책이라곤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한 없는 기다림은 손님을 빨리 많이 태워야 하는 택시의 속성과 정확하게 대치되는 상황이다. 지루함과 무기력함이 증폭되고 얌체운전과 난폭운전의 유혹 속에 가슴 속에서는 여러 가지 마음들이 쟁투를 벌인다.

정체는 지루하고 괴롭고 고통스럽다. 내겐 이보다 정체에 맞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함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마음이다. 어떤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다는 사실 앞에 좌절하고 포기한다. 택시운전사는 운명적으로 그걸 수용해야 한다.

서울에서 운명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거리 정체를 대하는 택시기사들의 유형은 크게 둘로 갈린다. 가급적 정체를 피하거나 정면으로 부딪히거나다. 성격이 무던한 사람들은 정체의 시간을 담담하게 헤쳐나가는 반면 나처럼 무기력함을 견디지 못하는 비수용적 성향의 사람들은 정체가 일상적인 시간대를 적극 회피한다.

개인택시는 보통 10시간에서 12시간 정도의 노동 시간을 각자의 건강과 성향에 따라 스스로 정한다. 크게는 오전 반과 오후 반이 있다. 만국의 노동자와 같이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정규반이 있고 늦은 오후부터 심야시간까지 이어지는 야간반이 있다. 노동 시간을 여러 개로 쪼개는 사람도 있고 휴식 시간 없이 쭉 일하고 시간이 되면 칼퇴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시간이 아닌 매출에 맞춰 일하는 사람도 있다.

천차만별인 노동시간은 매출과 함께 전적으로 택시가 주는 고통을 대하는 택시기사의 자세에 기인한다. 시간과 정체와 더불어 또 한 가지는 사람이다. 사람은 곧 관계다. 관계는 사람이라면 예외없이 평생 안고 가는 가장 큰 숙제이자 딜레마다. 사람을 태워야 돈을 버는 택시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택시가 관계에서 가지는 강점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택시가 하루에 태우고 보내는 사람은 대략 15명에서 25명 사이다. 이 중 6할은 소리 없이 타고 내리는 사람이고 2할은 유쾌하고 밝게 타고 내리는 사람인데 문제는 남은 2할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말을 함부로 하거나 자기 말만 하거나 상식을 벗어난 이상 행동을 한다.

그 2할의 사람들이 낮에 벌이는 문제적 말과 행동은 그래도 수습이나 타협이 가능하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사람들의 뇌는 (범죄의 영역은 별도로)합리적 이성 영역 안에 있거나 있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벌건 낮에는 매의 눈을 가진 목격자들이 너무 많다.

문제는 결국 모든 허물을 드러내는 술이고 그런 허물을 감춰주는 밤 때문이다. 밤에 술 먹은 나쁜 사람은 택시기사에게 두려움과 공포다. 낮에 손님에게 겪었던 불편했던 짧은 관계는 금방 휘발되지만 밤에 겪는 만취자들의 악행은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 이성과 시민적 교양 따위 쓰레기로 만들어 처박아버린다(보편적 이성과 시민적 교양 따위 없는 택시기사는 별도 주제로 하자).

이런 사람을 대하는 택시기사들의 유형도 크게 두 가지 인데 당연히 피하거나 감수하거나다. 감수라는 표현을 한 이유는 낮보다 야간이 훨씬 돈이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일을 하면 그런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다는 걸 잘 알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내 노동의 주인은 나'라는 도파민
 

늦은 밤 도로정체는 풀리지만 빈차등을 켠 택시는 드물어진 손님을 찾아 도로를 질주한다. ⓒ 김지영

 
택시기사는 시간과 정체와 사람에 대한 각자의 해결 방식이 있다. 얼만큼 일하고 언제 일하는지를 알면 가정경제가 대충 암시되고, 택시 일을 하면서 맞닥뜨려야 하는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지를 대강이나마 알 수도 있다.

일하는 시간이 어떻게 되세요, 라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그 택시기사의 정체성을 조금은 엿볼 수 있는 셈이다.

택시를 사서 내 업으로 삼은 지 6개월이다. 짧았지만 과연 고난과 고통의 시간이다. 가족과 보상이라는 도파민은 내 생명수였다. 이미 직전 일 년 육 개월을 법인택시로 투잡을 하며 직접 체험을 했다. 하지만 같은 택시가 회사 소유일 때와 내가 주인일 때의 차이는 일하는 시간과 임하는 자세와 마음가짐 등 모든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수입의 절반 이상을 사납금으로 떼이지 않아도 되고, 일과 휴식을 내가 정한다. 그게 가장 큰 차이다. 돈과 일상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내 노동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존엄한 사실 이 도파민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시간을 견디고 정체를 견디고 사람을 견디는 일은 택시기사에게 숙명이다. 나는 그걸 이해하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수용하고 있다. 나는 고통의 시간은 수용하고 막연한 도로정체는 적극 회피한다. 그리고 밤에 술에 취한 나쁜 사람은 견딘다. 아직은 한참 가족을 부양해야 할 택시기사로 살아가는 지금의 내 정체성이다.

장차 바라는 바는 평일엔 새벽에 출근하고 오후에 퇴근하고 주말에는 쉬는 '저녁이 있는 삶'이다. 생각만으로도 도파민이 마구 분비되는 육십 대 중반의 내 모습이다. 훗날 그렇게 살지 못하게 되었다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이미 상상만으로 현실의 고통을 극복해야 할 의지를 주었고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결핍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라면 고통 역시 회피나 방어를 통해 인간을 적극적 삶으로 끌어들이는 질료다. 숙명적인 택시운전사의 고통을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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