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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축복'으로 교회에서 쫓겨난 목사, 그가 남긴 말

[인터뷰] 정직 이어 출교 선고받은 이동환 목사 "혐오와 차별에 불복... 결국 사랑이 이긴다"

등록 2023.12.11 13:05수정 2023.12.1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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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수원 영광제일교회에서 만난 이동환 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 수원 영광제일교회)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복건우

 
"출교가 선고되었습니다."

8일 오후 4시 27분, 페이스북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이동환 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 수원 영광제일교회)가 남긴 글이었다. 퀴어축제에서 성소수자에게 축복식을 했다는 이유로 그는 이날 교회에서 파문당했다.

글을 올리기 1시간 전 선고공판이 있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재판위원회(재판위)는 '교리와 장정 제3조 8항(동성애 찬성 및 동조)' 위반으로 그에게 출교 결정을 내렸다. 교회 모함과 인권단체(큐앤에이) 창립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성소수자 편에 섰다'는 사실만으로 교회 최고 수준 징계가 이뤄진 것이다.

목회자로서는 사실상의 사형 선고였다. 성소수자 축복을 이유로 교단 법정에 선 것도, 그로 인해 출교 선고가 내려진 것도 모두 감리회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이미 같은 이유로 2020년 종교재판에서 정직 2년을 처분받았으나, 이번엔 교회를 완전히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출교 선고가 나오자 동료들은 경기연회 사무실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 목사는 항소를 예고했다.

교단이 그를 추방하기로 한 다음 날, '추방당한' 교회 앞에서 그를 만났다. 수원 영광제일교회는 그가 2013년부터 담임목사로 일한 곳이다. 그는 항소와 징계 무효확인 소송을 진행할 각오를 밝혔다. 그를 따라 사태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니, 성소수자를 향한 한국 교회의 혐오와 차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직 이어 출교형... '성소수자 축복' 중징계

"예상은 했습니다. 저를 본보기로 삼아 성소수자와 앨라이(Ally·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사람)가 교회에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려는 목표가 있었을 거예요."


그는 선고 대부분을 멍한 상태로 들었다. 재판위원장이 주문과 양형 이유를 설명할 때도 '출교'를 실감하지 못했다. 4년 사이 두 차례나 재판에 회부됐지만, 그렇다고 교단에 냉소를 보내진 않았다. 오히려 감리회 재판법에 나와 있는 절차만이라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교단이 낸 기소장에는 이 목사의 구체적인 혐의가 적혀 있지 않았고, 대부분의 재판은 재판법과 달리 비공개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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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지하는 내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피어나라 퀴어나라 -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지난 7월 1일 서울 을지로 2가 일대에서 열렸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석자들이 을지로 2가를 출발해, 명동역, 한국은행앞, 서울광장, 종로를 지나는 도심행진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첫 종교재판은 2020년 8월에 있었다. 지난 2019년 8월 그가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을 집례한 것을 문제 삼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말자.' 경기연회 심사위원회(심사위)는 그가 성소수자에게 꽃잎을 뿌리고 축복기도를 올린 것이 '교리와 장정 제3조 8항' 위반에 해당한다고 봤다. 2020년 6월 심사위는 그를 재판위에 회부했다.

이 목사는 '정직 2년'을 선고받았다. 판결에 불복했으나 2심 판단 역시 같았다. 2020년 10월 총회 재판위는 그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2심제 최종심). 재판위에 회부된 순간부터 이 목사는 직무를 정지당했고, 2022년 10월에야 담임목사로 복직했다.

감리회 헌법 '교리와 장정 제3조 8항'은 '성소수자 차별법'으로 불린다.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했을 때 그를 정직·면직·출교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마약·도박 등 실정법 문제를 성적 지향 및 정체성과 동일선상에 올려놓았다. 이 목사는 이것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인식이 전제된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교단의 입장은 강경했다. '동성애는 죄냐 아니냐', '동성애에 찬성하냐 반대하냐'는 질문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마다 이 목사의 대답은 같았다. "동성애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정체성"이라고, "고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라 다양한 성적 지향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이 목사는 동성애를 '죄'로 여겼던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생각이 바뀌게 된 건 한 성소수자 교인의 커밍아웃을 접한 뒤부터였다. 국내외 신학의 다양한 의견을 찾아봤으나, 예수는 한 차례도 동성애를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사회·문화적 배경을 보지 않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예수 그리스도가 차별받는 사람들 곁에서 친구가 되어준 것처럼, 이 목사도 성소수자·장애인·여성 곁에 서야 한다고 믿었다.

"이번 재판 내내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차적인 문제가 많았어요. 감리회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어떤 기구도 존재하지 않아요. 울며 겨자먹기로 재판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6월 두 번째 종교재판이 시작됐다. 그러나 기소 단계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 고발인과 같은 지방회 목사가 심사위에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확인 없이 기소가 이뤄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심사위는 자체적으로 기소를 취하했으나, 이후 재기소를 결정했다. 이 목사는 "교단이 '기소는 취하해도 고발은 살아있다'며 같은 사건번호로 재판을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재판위는 지난 11월 30일 결심 공판에서 그에게 출교를 구형했고, 이는 곧 선고로 이어졌다.

한편 이 목사는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에 '정직 2년'에 대한 징계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종교재판을 받고 같은 사안으로 사회 법정에 소송을 냈다가 패소하면 교회법에 따라 추가 처벌(정직·면직·출교)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소송을 결심한 건 감리회 소속 목사와 장로들이 그를 다시 고발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그때 생각했다. '고발이 한 번에 그치지 않겠구나. 같은 일이 반복되기 전에 바로잡아야겠구나.' 그는 교회를 상대로 직을 건 싸움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세 번의 재판을 마쳤고, 오는 2024년 3월 20일 네 번째 변론기일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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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수원 영광제일교회에서 만난 이동환 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 수원 영광제일교회)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복건우

 
'교회판 국가보안법' 사랑으로 맞선다

이 목사의 출교는 '성소수자가 교회에 있으면 안 된다'는 신호를 주기에 충분했다. 인구의 약 10%가 성소수자라고 한다면, 이번 판결은 교인의 10%에게도 큰 박탈감과 좌절감을 줄 것이었다. 이 목사는 "교회가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않고 사실상 인권을 거부하는 메시지를 남기는 것 자체가 반복음적이고 반교리적인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헌법적 가치 안에서 종교의 자유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했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한 견해를 분리해서 보더라도 교단이 축복식 자체를 처벌하는 건 문제적이라고 봤다. 목회자로서 축제에 온 이들을 축복하는 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를 처벌하게 되면 "교회판 국가보안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교회가 성소수자들을 배제하고 죄인으로 낙인찍는 게 표현의 자유와 인권 측면에서 과연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혐오와 차별이 과연 어디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해요."

지난한 재판을 거치며 겪은 고통은 모두 이 목사의 몫이었다. 지난 4년간 숱한 혐오와 비난을 마주하며 생긴 공황장애와 안면장애의 후유증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사회적 관심이 떨어지면서 고립감과 상실감도 커졌다. 하지만 그는 곁을 지켜주는 동료들이 있어 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들과 함께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대신, 사랑을 포기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사랑은 성경에서 말하는 기독교의 근간이다.

대림절(성탄절 준비 기간)인 요즘 이 목사는 주변 사람들을 자주 떠올린다. 아내와 동료들, 그리고 재판을 지켜보는 성소수자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뜻을 내비쳤다. 앞서 제기한 징계 무효확인 소송도 계속 이어간다. 그의 싸움은 1심 패소 비용 700만 원과 항소를 위한 기탁금 700만 원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된다.

출교형을 비판하는 종교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감리회 안팎에 존재하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모욕했다"(성공회 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 "성소수자의 인권을 수호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가톨릭성소수자앨라이아르쿠스) 같은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동환 목사 재판 공동대책위원회'는 항소를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목표액은 1심 패소 비용인 700만 원으로, 모금 기간은 오는 20일까지다.

"교단이 저를 쫓아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가 함께 꾸는 이 꿈을 빼앗지는 못합니다.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사랑이 승리할 것입니다."

8일 오후 7시 59분, 페이스북에 글 하나가 더 올라왔다. 선고 직후 함께 분노하고 눈물을 흘린 이들을 생각하며 이 목사가 쓴 발언문이었다. 그의 발언문 일부를 함께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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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목사 재판 공동대책위원회'가 이 목사의 항소를 위해 1심 패소 비용 700만 원을 모으는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모금 기간은 오는 20일까지다. ⓒ 이동환 목사 재판 공동대책위원회

 
이미 예견된 결과였습니다.

심사위원회가 공소 취소를 했지만 고발은 살아있다는 해괴한 논리를 들이밀며 재판을 부활시켰을 때,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절차상의 하자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강행할 때, 이에 항의하자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여 판결을 내리겠으니 안심하고 양해해달라며 기만적인 태도로 회유할 때, 감리회 재판법에 나와 있는 절차만이라도 지켜달라는 호소에 교회 재판의 특수성을 운운하며 강압적인 태도를 보일 때, 재판부가 검찰 측인 심사위원장과 대놓고 함께 식사하고 회의하며 이미 한편임을 목격했을 때, 그리고 심지어 그런 심사위원장을 대신하여 재판의 절차를 고발인 측 대리인 변호사가 진행할 때, 이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었습니다. 이미 예단을 가지고 있었고, 재판은 요식행위였을 뿐입니다. 그야말로 조선시대 원님 재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중략) 저는 오늘 판결에 불복합니다. 그럼에도 말 걸기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경기연회가 끊었던 소통을 다시 이어내겠습니다. 편견과 혐오의 벽이 거대하나 예수께서 친히 막힌 담을 허무는 평화가 되셨으니 그 신앙의 소망을 품겠습니다. 대림절을 보내는 즈음, 예수의 탄생이 지독히도 무거운 시대의 어둠을 밝혔듯, 이 절기에 희망이 빛이 틔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항소 의지를 밝힙니다.

(중략) 우리는 함께 집을 지어갈 것입니다. 그 집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입니다. 이 집에서는 누구든 마음껏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차별과 혐오의 말을 들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한 평화로운 공간입니다. 따뜻한 환대와 다양함에 대한 존중이 있는 곳, 하나님의 사랑과 햇살이 아무런 제약도 굴절도 없이 오롯이 비추어지는 그러한 곳입니다. 저들이 죄인이라 낙인찍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우애로서 더 많은 연결을 만들어 낼 겁니다. 우리의 연결은 선이 되고 면이 되어 마침내 집으로 지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감리회를, 그런 한국 교회를 꿈꿉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사랑이 승리할 것입니다.
#이동환 #출교 #감리회 #성소수자 #영광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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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보고 듣고 쓰겠습니다. 오마이뉴스 복건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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