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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성 장애가 있는 재욱이...특수학교로 꼭 옮겨야 할까

일반고에서 만난 고2 제자... "대한민국 따따따", 이제 겨우 이 말을 이해했는데

등록 2023.12.08 07:13수정 2023.12.0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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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따따따!" 
"재욱! 너 그렇게 소리 내면 특수반 내려간다!"


올해 새롭게 근무하게 된 고등학교에서의 개학 첫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명랑한 목소리로 이상한 소리를 내는 재욱이에게 나머지 아이들은 아주 익숙한 듯 '시끄럽게 하면 특수반에 내려간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재욱이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둥근 초록 통을 꺼내더니 자일리톨 껌 두 개를 입으로 집어넣고 씹기 시작했다. 그리곤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시끄럽게 하면~ 1층 내려가야 돼요."

묻지도 않았는데 재욱이는 가만히 교탁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며 그런 말을 했다. 재욱이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통합반 학생이다. 특정 소리를 반복해서 내는 틱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개학 전 담임 협의회에서 통합 학급 담당 선생님은 재욱이가 기본적인 소통은 가능하지만, 장애 정도가 심한 편이라 수업 참여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틱이 심한 경우 이름을 불러주거나 주의를 주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해도 조절이 어려울 때는, 재욱이가 통합반 내려오는 것을 싫어하지만 다른 학생의 공부를 위해서 통합반에 내려보내도 된다고 하셨다. 개학 첫날 아이들 반응은, 그동안 선생님들이 재욱이에게 주의를 줄 때 사용한 말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올해 6월 학부모 상담 주간이 찾아오면서 대면 상담을 요청하고 직접 찾아오셨던 몇 안 되는 학부모님 중 재욱이 어머니가 있었다. 일 년에 한 번은 직접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 오셨다는 어머니는 차분해 보였다.

차를 타고 등하교하는 과정, 방과후 특수교육 프로그램, 체육을 좋아하는 성향을 고려한 수영과 축구 수업까지. 그 어떤 어머니보다 상세하게 자녀의 일상과 표정을 설명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모든 순간의 재욱이 뒤에는 어머니가 함께 서 있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고2가 마지막 같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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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재욱이와 재욱이와 현장체험학습 가서 찍은 사진. 현장체험학습에 갔던 날, 재욱이가 처음으로 사진을 찍자는 말을 해서 함께 찍게 되었습니다. ⓒ 민재식

 
어머니는 처음엔 재욱이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하셨다. 어떻게든 '치료'를 해보려고 좋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온갖 치료법을 써봤다고 했다. 하지만 병원에 병원을 연이어 다니던 어느 날, 차에서 재욱이 눈을 바라보다 문득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다. 그것은 문득은 아닐 것이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지난한 시간 속에서도 계속해서 재욱이를 바라보면서 쌓인 무언가가 어느 순간 그 지점에 어머니를 데려다준 건 아닐까.

가만가만 이야기를 내어놓는 어머니의 눈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그날 이후 재욱이를 '치료'해서 '정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행복하게 키워야 한다는 사실만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재욱이의 눈을 마주 봤던 날을 이야기할 때 어머니는 마치 꼭 그 당시 차 안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줄곧 차분하고 담담하던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저는 올해가 너무 소중해요. 학교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아까워요. 다른 아이들은 고3이다, 대학이 다가온다 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잖아요. 드디어 출발점에 선 기분을 느끼잖아요. 그런데 재욱이는 고2가 마지막 같아서요."

인문계에서 고등학교 3학년의 시간은, 대부분의 수업 외 활동은 거의 없고 오직 입시와 수능만을 향해 달리게 된다. 장애 학생이 비장애 학생과 함께 뭔가를 할 기회는 당연히 줄어들 것이었다. 아니, 사라지는 것에 가까웠다.

어머니는 통합 교육을 하려면 제대로 해줬으면 싶지만, 치열한 입시 상황을 생각하면 그건 재욱이 엄마로서 품는 이기심 같다고도 했다. 재욱이를 데리러 학교에 올 때마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가는 아이들을 보면, 재욱이가 고2인 지금이 또래 아이들과 만나고 배울 수 있는 마지막 같다고 했다.

어머니가 떠나고 상담실에 남아 창문을 타고 유난히 길게 들이치는 오후 햇살을 쳐다봤다. 하루하루가 마지막 같아 아깝고 소중하다던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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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메고 걷는 또래 아이들을 보면, 재욱이 어머니는 재욱이가 고2인 지금이 또래 아이들과 만나고 배울 수 있는 마지막 같다고 했다. 어깨동무를 한 친구들(자료사진). ⓒ 픽사베이

 
그 이후로도 1학기 내내 조종례 시간에 만나는 재욱이는 늘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대한민국 따따따"를 외쳤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로비에 서 있는 재욱이에게 "조회하러 가자, 재욱아"라고 부르면 못 들은 척을 하다 갑자기 내 뒤에서 뛰어와 교실로 들어갔다.

간혹 걸음이 맞아 같이 걸으며 "재욱아, 주말에 축구 교실 갔었어?"라고 물으면 아주 아주 가끔 "축구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대개는 나와 같이 걸으면서도 대답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딴소리를 했다.

재욱이는 교실에서 "대한민국 따따따"를 외치지 않을 때는 주변에 앉은 친구들의 이름을 이상하게 부르거나, 반을 바꿔 말했다. 준수를 '준오'라고 부르던가, 분명 우리는 6반인데 "4반 교실로 갑니다"라는 식이었다.

그나마 몇 마디의 대화가 가능할 때는 재욱이가 좋아하는 젤리를 줄 때였다. 자일리톨만 꺼내 먹는 게 마음이 쓰여서 사다 놓은 젤리를 재욱이는 좋아했다. 가끔 가만히 앉아 있던 재욱이가 "젤리 먹는다"라고 말하면, 나는 "젤리 몇 개 챙겨서 수업 들으러 갈래?"라고 물었다. 재욱이는 "교무실에 있는 게 맛있어요"라고 답했다. 큰 걸 가져가라고 빈츠를 내밀면 "빈츠 싫습니다"라고 또박또박 대답하기도 했다.

2학기가 되고 가을이 찾아오면서 재욱이가 내 말에 대답하는 빈도가 늘었다. 아침 일찍 로비에서 만나면 다가와 "민재식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일도 잦아졌고, 스킨십을 좋아한다던 재욱이는 꼭 내 손을 잡고 걸었다.

얼마 전 같은 학년 담임 선생님과 점심을 먹고 산책하다 재욱이가 자주 내는 소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재욱이가 제일 많이 내는 소리가 '대한민국 따따따'거든요. 재욱이가 역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대한민국을 왜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어요. 분명 뭔가 좋아하는 말을 하는 거 같은데 뒤에 붙은 '따따따'도 처음 들어보는 소린데 매번 같아요."
"재욱이가 역사 말고 좋아하는 건 없어요?"
"아, 축구! 대~한민국 따따따~ 따따!"


나는 다음날 다시 같은 소리를 내는 재욱이에게 말을 걸었다.

"재욱아, 월드컵 응원한 적 있어?"
"대한민국 따따따 했어요."


그 문장을 이해한 것이 어떤 시발점이 된 것일까. 그 후로 재욱이가 하던 이상한 말이 그냥 이상한 말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의미가 있음을 연이어 깨닫게 되었다. 자꾸만 이름을 바꿔 부르고, 다른 반 숫자를 대는 것은 친해졌다고 생각한 재욱이가 나에게 걸어오는 일종의 장난이었다.

"저는 2학년 4반 교실로 갑니다."
"재욱아, 너 장난치다가 헷갈려. 우리 같이 6반이잖아."
(웃으며) "선생님은 6반이고, 저는 5반입니다. 4반입니다. 3반입니다."


성큼 다가온 한 해의 끝 

요즘 아침저녁으로 '춥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벌써 가을을 지나 겨울로 훌쩍 접어들었다. 이제 겨우 한 문장을 이해했는데, 이제 겨우 재욱이라는 사람이 축구를 사랑하고 스킨십을 좋아하고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라는 감각을 조금 느끼고 있는데. 벌써 올해의 끝을 생각하는 시기가 왔다.

최근엔 학년 부장 선생님을 통해 재욱이 어머님이 특수 학교로 전학도 고려해보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3이 되는 내년은 학교나 고3인 주변 친구들에게도 너무 무리를 주는 것 같고, 사실상 통합 교육의 취지를 살리기 어려운 시기가 될 것 같다고. 장애 학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특수 학교 숫자를 고려하면 전학마저도 쉽진 않겠지만, 전학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계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2017년부터 교사로 지내온 7년 동안, 내가 지켜본 학교는 자꾸만 진로를 얼른 정하고 준비하라며 제도를 고친다. 그 변화에는 재욱이 같은 아이는 고려되지 않는다. 교사로 살면서 늘 속도를 늦추고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갈증을 느낀다. 올해는 유난히 학교의 속도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통합교육 #학교 #교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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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사랑을, 그런 사랑을 가꾸고 지키는 존재를 찾아다닙니다. 저를 통과한 존재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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