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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기다리는데 일본도, 우리 대통령도 말이 없어요"

정신영 할머니 강제동원 위자료 소송...미쓰비시 소송 지연에 제소 4년 만인 내년 1월 1심 선고

등록 2023.11.09 18:01수정 2023.11.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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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정신영(93) 할머니가 9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증인 신문을 마치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3.11.9 ⓒ 연합뉴스


"우리 대통령이 말하면 다 해결될 것인데 말이 없어요. 미쓰비씨도 말이 없고, 잘못했다고 인사 하나 없어요. 한해 한해 이날 평생 기다리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정신영(93·전남 나주) 할머니는 9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변론기일을 맞아 광주 법원을 찾았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지원을 받아 광주지방법원에 나온 정 할머니는 오후 3시로 예정된 재판을 전후로 취재진 앞에 입을 열었다.

"(1944년 초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에 도착하니) 괜히 왔다고 생각했다. 공부 가르쳐준다는 말만 믿고, 일본 사람들 말만 믿고 왔는데 고생만 했다. 월급도 그 사람들은 줬다고 하는데 받은 것도 없고, 배만 고팠고 힘든 기억밖에 없다. 그동안 참고 살고 있다가도 열도 나고…"

정 할머니는 나주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44년 5월 양금덕(92) 할머니 등과 함께 일본 아이치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동원돼 약 17개월간 모진 강제노동을 겪었다.

안전 장비도 없이 어린 몸으로 매일 아침 7시부터 비행기 부속품 페인트 작업을 반복했다. 시너와 독한 약품을 취급하다 보니 눈이 따갑고 손끝도 매번 다쳤지만 치료는 받지 못했다.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남은 것이라고는 죽도록 일만 하고 굶주림에 괴로워했던 당시 기억뿐이었다.

1944년 12월 7일 발생한 도난카이 대지진 당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양금덕 할머니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도움을 받아 펴낸 책 '죽기 전에 듣고 싶은 한마디'에 따르면, 당시 지진으로 광주 출신 1명, 영암 1명, 목포 2명, 나주 2명 등 6명의 소녀가 숨졌다.


해방 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위안부로 오인받을까봐 일본에서의 사진을 모두 찢어 없애는 등 평생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왔다고 한다.

지난해 일본 연금기구가 후생연금 탈퇴수당 931원(99엔)을 정 할머니 농협 계좌로 보내와 파문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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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2020년 1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정신영(93) 할머니가 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전남 나주 집을 나서고 있다. 2023.11.9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정 할머니는 지난 2020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처음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국제 송달로 보낸 소송 서류를 일본 정부가 미쓰비시 측에 전달하지 않고 미쓰비시 측이 의도적으로 출석하지 않으면서 재판은 3년간 헛바퀴를 돌았다.

그러다 재판부가 궐석 재판을 시사하자 미쓰비시중공업 측은 태도를 바꿔 법률 대리인을 선임하고 뒤늦게 법정 공방에 돌입했다.

정 할머니는 이날 광주지법 민사 13부(재판장 임태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변론기일에 출석해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재판부는 정 할머니 증인 신문을 끝으로 원고 4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2억4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변론을 종결했다

재판부는 내년 1월 18일 판결을 선고하기로 했다.

한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2012년, 20313년, 2014년 제기한 세 차례의 근로정신대 소송 중 1건(양금덕·김성주·고 박해옥·고 이동련)은 대법원 승소 확정 판결이 났다. 나머지 2건은 1, 2심 승소 후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또 2019년(9건, 원고 54명), 2020년(6건, 원고 33명) 일본 11개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집단 소송은 원고 87명에 15건으로, 현재 광주지방법원에 계류 중이다.

소송 제기 후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소송 원고 87명 중 생존 피해 당사자는 3명(정신영, 주금용, 조동선)에 불과하다. 나머지 84명은 유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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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방법원, 광주지법 ⓒ 안현주


   
 
#강제동원 #미쓰비시 #손해배상 #정신영 #광주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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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라본부 상근기자. 제보 및 기사에 대한 의견은 ssal198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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