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되돌아간 교육

[주장] 억압이 일상화된 학교에서 교사의 자율성과 권리는 과연 가능할까?

등록 2023.10.03 18:24수정 2023.10.0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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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보도자료 추석 연휴 전날인 9월 27일 교육부는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위한 고시 해설서 학교에 제공한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아울러 해설서 내용도 덧붙였다. ⓒ 교육부

   
추석 연휴 전날인 9월 27일 교육부는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위한 고시 해설서 학교에 제공한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아울러 해설서 내용도 덧붙였다.

교육부는 고시 해설서를 "교원단체 소속 교사를 포함한 현장 교사와 교육전문가가 함께 공동 집필"했다고 강조했다. "이후에도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여" 해설서를 계속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교육부는 고시 해설서에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의 기준과 지도 방법을 이해하기 쉽도록 법적 체계 및 활용 유의 사항, 생활지도 지원 사항, 생활지도가 필요한 구체적 상황 및 지도요령, 묻고 답하기(Q&A), 필요 서식 등을 함께 담았다"라고 했다. '일시분리 지도대장', '학부모 확인서', '물품 보관 대장', '휴대전화 사용 요청서' 등을 필요 서식의 예로 들었다.

교육부 고시 해설서는 이화여자대학교 학교폭력예방연구소와 함께 만들었다. 13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으로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을 연상시킨다. 고시 내용에 담겨 있는 '조언', '상담', '주의', '훈육', '훈계', '보상'의 의미와 내용, 세부 절차까지 자세하게 적혀있다.

상세한 설명과 매뉴얼이 언제나 실제 학교 현장에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학교폭력 사안 처리 과정을 통해 이미 넘치게 경험한 바 있다.

학교장의 역할은 모호하지만, 교사들이 당장 할 일은 분명해 보인다. 학교 규칙을 개정하고, '일시 분리 지도 대장', '학부모 확인서', '휴대전화 사용 요청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의 조언이나 상담이 교육부 고시 내용 어디에 해당하는지, 절차에는 맞는지, '고시 해설서'를 열심히 익혀야 할 것이다. 관련 내용을 학생에게 알리는 몫도 교사들이 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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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고시 해설서 차례와 조언 절차 교육부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위한 고시 해설서'는 고시 내용에 담겨 있는 ‘조언’, ‘상담’, ‘주의’, ‘훈육’, ‘훈계’, ‘보상’의 의미와 내용, 세부 절차까지 자세하게 적혀있다. 사진 아래쪽은 '조언 절차'이다. ⓒ 교육부

   
행복한 학교생활을 원한다고 외친 교사들에게 교육부는 '업무 폭탄'을 추석 선물로 보냈다. 교권이 추락한 중요한 한 축은 교사를 '교육 서비스 자판기'로 만든 신자유주의 교육 확산이다. 그 주역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고 있는 이가 이주호 장관이다.

이제 교사들은 스스로 판단해서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는 존재가 아닌 '매뉴얼에 적힌 대로 학생들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공무원' 처지가 됐다. '조언'에 절차가 있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떤 교육전문가와 교사가 했을까?
 
"규율을 근간으로 하는 권력의 성공은 아마도 단순한 수단을 사용한 점에 기인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 수단이란 위계질서적인 감시의 눈빛, 규범화된 상벌제도, 그리고 이들을 이러한 권력의 특유한 방식인 시험을 통하여 결합시키는 방식 등이다."
(푸코, 1975, 오생근 옮김, 2003,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감시와 처벌로 이루어진 18~19세기 학교를 보여줬다. 들뢰즈는 1990년 쓴 <통제와 생성 그리고 통제사회 후기>라는 짧은 글에서 푸코의 '규율사회'는 '통제사회'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통제사회에서 학교는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모든 수준의 교육에서 기업을 도입"하는 제도로 변할 것이라고 했다. 학교생활기록부와 '에듀테크'가 대표적 사례이다.


'인공지능'을 말하고 있는 요즘, 들뢰즈가 이미 30여 년 전 벗어났다고 말한 '아날로그식 규율사회'가 한국에 다시 등장했다.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위한 고시'와 '고시 해설서'를 보며 든 생각이다. 아무리 유행은 돌고 돈다지만, 학생의 신체를 감금하고 행위 하나 하나를 억압하는 역할을 다시 교사가 맡으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억압이 일상화된 학교에서 과연 교사의 자율성과 권리는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교육부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위한 고시' #고시 해설서 #규율사회 #억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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